3장. 경천동지(驚天動地)

변화의 도수(度數) 100-3
“새 정권 시작하고 숭례문 화재 있을 때 서울에 전화(戰火)가 있을 거라 했고, 보도에 보니까 연초에 큰 별이 두 개 떨어진다고 예언하셨습디다. 예언대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이 떠났는데, 또 다른 별이 떨어집니까?”
“…….”
“혹시 북쪽에서?”
“너무 앞서가지는 말게. 나도 단군을 비롯해 13분의 개국 열성조를 모시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3일전이네.”
“3일이요? 오랫동안 기획하신 게 아니고라?”
“내가 작년에 잠실 선원을 떠나면서 구명시식이 힘들어졌어. 구명시식에 나타난 영가들이 ‘차법사, 나라가 흔들리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요.’ 아 이렇게 꾸짖는 게야. 나라에 큰 격변이 생길 텐데, 여전히 자녀를 대학에 붙게 해 달라, 집을 팔게 해 달라, 병을 낫게 해달라고 소원 들어주는 데 매달리고 있냐는 게지. 얼마 전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모처에서 기도를 마치고 오는데 마른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면서 ‘13분의 창업주를 모시라’는 음성이 내 귀에 또렷이 들리더라고.”
조기자는 메모하던 펜을 멈추었다. 그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 이야기는 기사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창업주라고 해서, 대기업 창업총수를 말하는가 하고 어리둥절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라를 세운 창업주들이더라고.”
“어쨌거나 누르하치를 우리 국조로 넣은 것은 정말 탁월한 혜안이요. 제가 요즘 누르하치 책을 출간하려고 공부하고 있거든요. 그 분도 분명 우리 민족이고 조상입니다.”
“잘 아는군. 그 분 성이 본래 경주 김씨거든. 백두산에서 대동제를 지낼 때 천지에 나타난 누르하치가 분명히 그랬어. 후금을 세우고 나서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애신각라(愛新覺羅)란 성씨를 붙였지. 분명 문헌에도 그렇게 되어 있어.”
“그런데 왜 이승만을 넣었소?”
“논란이 많다는 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아버지가 맘에 안 든다고 아버지를 바꿀 수가 있는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네.”
“100일 구명시식의 목적이 뭡니까?”
“목적이라…. ‘추탁동시(?琢同時)’라고 혹시 들어봤나?”
차법사는 수수께끼 내듯 천진하게 조기자를 쳐다보았다.
“추탁동시요? 글씨? 한자가 어떻게 되요?”
“병아리가 21일째 부화가 되기 위해선 알 속의 병아리와 알 밖의 어미가 서로 신호를 보내 동시에 쪼아야 비로소 생명이 탄생한다는 말일세. 하늘의 때만 기다리지 말고 인간도 그에 부응해서 원을 세워야 비로소 새로운 역사가 탄생한다는 뜻이지.”
“아, 이제야 감이 잡히네.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위한 장장 100일간의 구명시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쪼고 계시는 게 대체 뭡니까?”
“무엇을 쪼느냐 하면….”
차법사가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조기자는 펜으로 수첩을 톡톡 치면서 조바심을 드러냈다.
“내가 조기자에게 특종을 줌세.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유일하게 달려온 기자인데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특종이란 말에 조기자의 눈빛이 매처럼 번뜩였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1
“8월 중순경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터질 걸세.”
“경천동지라 하면….”
“하늘이 울리고 땅이 울린다는 뜻이지.”
“하늘이 울리고 땅이 울릴 만한 사건이라…. 자세히 좀 설명해주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기자였지만 이번만은 조기자도 조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차법사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2012년이 되면 남북통일이 시작될 거야.”
조기자는 수첩에 ‘2012년’이라고 적고는 몇 번이나 밑줄을 쳤다.
“통일의 계기가 8월 중순에 발생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큰 지진 전에 잔 지진이 길을 닦는 것처럼 앞으로 계속 요동칠 테지만.”
“시방 계속이라고 혔소?”
“영계에서는 이미 통일이 되었지만, 현상계의 통일은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지. 분단 반세기는 짧은 기간이 아닐세. 부모자식도 서로 못 보면 서먹한데, 하물며 남북이 으르렁대다가 하루아침에 어깨동무할 수는 없지.”
“어떤 사건이다요?”
“그것보다는 어떤 통일이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조기자는 슬그머니 피해가려는 차법사의 말 길목을 가로 막았다.
“혹시 전쟁이라도 터집니까? 핵미사일이 발사된다거나 하는….”
“나뭇잎 한 잎이 눈앞을 가려서 태산을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야. 통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처럼 38선 철책 붕괴 통일만을 통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건 아니지. 내가 왜 고조선, 고구려, 거기다 청나라 국조까지 모시겠나?”
조기자는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럴 때 기자는 가장 난감하다. 답답한 조기자의 심정을 꿰뚫은 듯 차법사가 조근 조근 설명을 붙였다.
“굳이 영능력이 아니더라도 자세히 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 수 있지. 도(道)가 무어라고 생각하나, 조기자는?”
“도요? 글씨요, 길거리 가다가 ‘도를 아시나요’라고 접근하는 사람은 몇 번 만나보았습니다만….”
조기자는 종교철학을 전공한 기자였다. 수많은 종교를 비교연구하고, 한때는 기자생활을 접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강단에 섰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더욱 냉철했다.
그에게 종교나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매우 인간적인 그리고 사회 집단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신과 종교는 객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신학도에서 보이는 것만 믿는 기자로 다시 되돌아왔는지도 모른다.
불가사의한 세계는 존재하지만 현실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것이며, 인간 상상력이 만들어낸 미신에 불과하다는 가치관으로 무장한 그에게 차법사는 까다로운 취재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차법사의 예언에 솔깃해 달려온 자신의 심사를 스스로 어찌 해명할 수 없었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찾자면 차법사 예언의 적중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차법사는 기(氣)에 대해 설명했다. 차법사가 이렇게 이론적으로 자세한 설명은 늘어놓은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다. 다분히 조기자의 성향을 고려한 배려였다.
“기는 1초에도 수천, 수만 번 변하네. 기를 간단하게 우주에 가득 찬 에너지 파장이라고 생각해도 되네. 수많은 변화는 흐름을 낳지. 그 기의 흐르는 길이 바로 도일세. 다시 말해 우주가 음(陰)과 양(陽)으로 운동하는 길을 도라 할 수 있지.”
조기자는 여전히 펜을 멈추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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