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16회 천문 : 영본시대
김영수 장편소설 제 16회 천문 : 영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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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2-21 10:59
  • 승인 2010.12.21 10:59
  • 호수 869
  • 4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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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경천동지(驚天動地)
일러스트 : 나은진

국혼(國魂)을 불어넣을 때-4

“마스터 차, 당신이 그렇게 신통하다며? 그럼 염력으로 나를 한번 들어 올려보시지.”

순간 차법사는 오늘 일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가 흐르는 분위기가 그랬다. 말콤은 아무 말 하지 않는 차법사를 노려보며 윽박질렀다.

“그 정도도 못하면서 마스터라고 할 수 있어? 당신 사기꾼 아니야? 선량한 사람들 현혹시키는….”

차법사는 힘들게 말을 꺼냈다.
“공중부양을 말하는 모양인데, 공중부양은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만 할 수 있다. 당신처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부양이 되지 않는 법이야.”

공포스러운 힘에 눌려 이미 입술이 퍼렇게 질려 있던 조기자는 더듬더듬 차법사의 말을 통역했다. 말콤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부하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차법사의 눈에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아날로그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말콤, 대신 내가 다른 것을 보여주지, 저 벽시계를 보라구.”

차법사는 잠시 마음을 고르고 벽시계를 응시했다. 어디 선가 툭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시계가 거짓말처럼 멈춰서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목격자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말콤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시 법사가 기를 모았다. 이번엔 시계의 초침이 힘들게 위아래로 부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초침이 뒤로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더니 아예 멈춰 섰다. 이번엔 차법사가 말콤을 노려보았다.

“이번엔 시계가 아니라 당신 심장을 멈추게 하겠다!”

손가락으로 말콤의 심장을 가리키자 말콤은 통역을 하지 않았는데도 깜짝 놀라며 두 손을 내저어 흔들었다.

“오, 노! 오, 노!”

놀란 말콤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흔들며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물러섰다.
두 사람은 그렇게 무사히 말콤의 소굴을 빠져나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시내 중심에 이르자 구토가 몰려와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했다. 차법사는 허리춤이 덜렁거려서 보니 허리 벨트가 끊어져 있었다. 시계가 멈춰 설 때 툭 하고 났던 소리는 벨트가 끊어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차법사의 이날 일은 헛되지 않았다. 며칠 뒤 말콤에게 정중한 초대장이 왔다. 그 자리에서 차법사는 말콤에게 한인들을 괴롭히지 않고 각별하게 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에도 차법사가 이탈리아 갱단 두목을 제압하여 교포들의 카지노 도박을 막고, LA 흑인 폭동 때 앞장서서 한인의 가게를 지킨 현장에 늘 조기자가 함께 있었다. 미국에서 차법사의 행적은 조기자의 정보망 안에 있었다.


변화의 도수(度數) 100-1

“조기자,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차법사는 오랜 친구를 반기듯 특유의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며 조기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이고 형님! 이게 몇 년 만이요!”
“글쎄 20년이 다 되어가나? 벌써 그렇게 됐네.”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땅이 넓은 것 같소.”
“왜?”
“미국에 계실 때는 늘 제 레이더 망 안에 계셨는디, 한국에 같이 있으면서 강산이 한 번 변할 때까지 눈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으니 말이오. 일부러 서로 피하려고 해도 그러기 힘들지라.”

조기자의 남도 사투리가 군데군데 묻어났다.

“허허허, 듣고 보니 그러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그동안 조기자가 뭔가 열중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조기자는 뜨끔했다. 역시 차법사다웠다. 사실 조기자는 그동안 정치판을 기웃거리다가 보기 좋게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터였다. 조기자 입가에 쓴웃음이 살짝 스쳤다. 조기자도 질 수 없다는 듯 날이 선 질문을 던졌다.

“사진을 보니 그동안 엄청난 일들을 하셨는데, 어찌 사업규모는 별로 늘질 않으셨소?”

그는 선원의 크기와 신도의 수를 말하고 있었다.

“나야 늘 구멍가게지, 뭐. 부증불감(不增不減). 매일 구조조정해.”
“구조조정이요?”
“하하하. 그렇네. 나를 믿는 자는 남고, 내 말만 믿는 자는 떠나는 거지. 그렇게 해서 쉴 새 없이 구조조정해왔어. 그래서 나를 구조조정의 명수라고들 하더구먼.”
“나를 믿는 거와 내 말을 믿는 거와 뭐가 다르요? 그게 그거이 같은디.”
“천지차이지. 자기 마음을 믿느냐, 외부의 지식과 논리를 믿느냐 하는 차이.”
“말은 다 알아들었는데 도통 이해가 가질 않소.”
“머리가 이해한다 해도 마음이 편치 못하고 찜찜하면 헛거야.”
“그래도 신도 느는 맛이 있어야 신이 나지 않것소?”
“하긴 잠실 송파에서 대학로에 이사 와서 연극 극장 세 개나 붙였으니 가게가 늘긴 는 셈이지.”
“그래도 겨우 연극 극단 사장 명함 하나 더 넣은 거잖소. 법사님 같은 그릇은 적어도 50층 빌딩 하나쯤은 교단으로 가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종교도 사업인데 교세를 늘이셔야지요?”
“허허허. 교주는 근엄해야지 않은가. 나는 웃음이 많아서 안 돼. 조기자도 잘 알잖아. 같이 장난 치고 웃길 좋아하는데 어떻게 교주가 될 수 있겠어.”
“그건 사업하기 나름이죠. 정 나서시기가 꺼려지시면 얼굴 마담을 내세우고 뒤에서 섭정을 해도 되구요. 스타 뒤에는 스타를 조종하는 숨은 브레인이 늘 있는 겁니다. 그라믄 형님, 얼굴 마담으로 저는 어떻습니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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