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 영본시대 김영수 장편소설 제 14회
천문 : 영본시대 김영수 장편소설 제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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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2-07 13:54
  • 승인 2010.12.07 13:54
  • 호수 867
  • 4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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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경천동지(驚天動地)
일러스트 : 나은진

국혼(國魂)을 불어넣을 때-2

염불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무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개국 열성조답게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큰 말에 수백의 군사를 끌고 나타나는 제왕에서부터 고급차량에 경호원들과 함께 나타난 대통령 영가까지 극장은 그야말로 시장터 같았다. 가장 골치 아픈 일은 좌석 배정이었다.
생전에 제왕이었던 습성들 때문에 자신이 가장 중요한 좌석에 앉아야 한다며 치열한 자리다툼까지 벌이는 게 아닌가. 차법사는 진땀을 흘리며 겨우 연대순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가무단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차법사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외국 국빈이 와도 나라가 들썩이는데 하물며 기라성 같은 13분의 왕조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했으니 여간 어려운 자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국조들의 심기가 편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의전에 소홀한 것은 없나 차법사는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그런데, 아뿔사! 차법사는 무릎을 쳤다. 그분들은 서로 상극중의 상극관계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국조들 간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고구려, 백제는 신라에 의해 멸망했고, 신라는 고려에, 고려는 조선에 의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세운 나라를 패망시킨 장본인들이 대면하고 있으니 마음이 선선할 리 없었다. 천하의 원수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형국이었다.

‘그렇게 까지 모질게 귀국을 막을 필요가 있었소?’

박정희 영가에게 이렇게 따진 건 이승만 대통령 영가였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사임하여 하와이에 망명한 이승만 대통령은 병환이 깊어지자 조국의 하늘 아래서 숨을 거두길 강력하게 희망했었다. 하지만 그 간곡한 청은 외면당하였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임종 후에야 입국할 수 있었는데, 지금 이를 탓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승만)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소!’

이번엔 고종황제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호통을 쳤다. 자신의 아들인 영친왕을 그렇게 불행하게 만든 이승만 대통령에게 쌓인 감정을 터뜨린 것이다. 차법사는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세 분의 중재에 나섰다.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인과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국혼을 살리고 국운의 상승을 위해서 올리는 구명시식인데, 해묵은 앙금 때문에 자칫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위기였다. 차법사는 영가들에게 정중히 과거를 회상시켰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체류하다가 8·15 광복 후 귀국하려 하였지만, 국내 정치 실세들의 반대로 귀국하지 못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 시절 강력하게 환국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국적을 잃은 채 일본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임시정부 헌법에는 분명 조선왕조를 우대한다고 되어있으나, 이승만은 이 약속을 어기고 조선황실을 배척했던 것이다.
영친왕은 1963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였고 56년 만에 가까스로 그리운 고국으로 환국을 할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한 많은 임종 후 환국은 영친왕에 대한 과보를 고스란히 되받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종 황제도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니었다. 아들 영친왕의 그런 고행을 하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인과(因果)가 있었다.
1898년 이승만은 대한제국 정부 전복을 획책하였다는 혐의로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투옥되었다. 그때 실권자가 고종황제였다. 이승만은 동지 한 사람과 탈옥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복역 중, 1904년 민영환의 주선으로 극적으로 7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승만 복역수 앞으로 3번이나 가마니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가마니는 시신을 덮기 위한 입관대용이었다. 다시 말해 이승만은 3번이나 죽었다고 할 정도로 감옥에서 혹독한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고종과 조선황실에 대해 이때 생긴 마음의 앙금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선대에 제왕들이었지만 여느 평민들과 마찬가지로 인과의 굴레에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렇게 반목이 이어지고 있으니 국가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이다.
차법사는 거의 울다시피 부탁했다.

‘그렇게 당신들이 아끼는 후손들의 나라를 위해 화해하시고, 후손들의 앞날을 밝혀주십시오.’

서로의 인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영단은 조용해졌다. 근대 통치자들은 일단 봉합이 되었지만, 고대 선왕들의 인과는 더욱 복잡하기에 산 너머 산이 아닐 수 없었다.
무대 좌측에 대형 스크린이 올라갔다. 동참자들의 빛바랜 조상의 사진이 스크린에 한 장씩 올라왔다. 13열성 개국조들과 개인 조상의 제를 동시에 올리는 기묘한 광경이었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무용, 음악, 영상, 소리, 예불, 조상의 영가가 함께 하는 새로운 시도의 구명시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차법사는 무엇에 끌린 듯 영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국에서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이름 없는 영가 신위’

누군가 붙여 놓은 영가의 위패에서 눈이 멈추었다. 순간 위패에서 하얀 그림자가 스스륵 걸어 나왔다. 이번엔 흰 소복을 입은 여인 영가였다.
그녀 주위에는 올망졸망한 아이 세 명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염력을 통한 영가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법사님, 이렇게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찌 무주고혼을 떠돌게 되었습니까?’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 곳을 응시했다. 차법사는 그녀의 투명한 눈물이 고인 눈망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만주의 누런 흙먼지는 대낮의 태양마저 희뿌옇게 흐렸다. 여인은 젖먹이를 들쳐 업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뒤에는 4살, 6살 남매가 뒤따르고 있었다. 끼니를 거른 지 오래 된 듯 수척하고 옷은 남루했다. 계집애는 언니랍시고 동생 손을 꼭 잡고 돌보며 이끌었다.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았다. 귀 뒤에는 검은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지만 어깨에선 움직일 때마다 검붉은 선열이 베어났다. 갑자기 통증이 밀려왔다. 여인은 생각난 듯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젖먹이는 마른 젖꼭지를 힘없이 물었지만 굶주린 어머니가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입 속에 황토 흙바람만 들어가 으직거릴 뿐이었다.
부러운 듯 젖먹이를 바라보는 남매의 퀭한 눈을 본 여인은 포대기에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근방을 둘러보다가 찔레꽃 쪽으로 갔다. 찔레의 여린 순을 꺾어 껍질을 벗겼다. 한 움큼 모은 찔레 순을 남매에게 내밀었다.

“요 산만 넘어가면 아버지가 계시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라.”
남편은 항일무장 독립군이었다. 한 달 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에게 대승을 거둔 남편소식을 들었다. 며칠 거리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곧 만주에서 일제를 몰아내고 용정에 이주를 할 수 있으리란 내용이었다. 남편은 막내의 출생을 보지 못하고 떠났었다.
초승달이 뜨던 어느 날 말굽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돌아왔을까.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과 총소리가 들렸다. 일본군들이었다. 말을 탄 일본군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총질을 해댔다. 독립군들의 뒤를 봐주었다며 보복을 개시한 것이었다.
온 마을은 화염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소름끼쳤다.
여인은 얼른 젖먹이를 들쳐 업고 남매를 깨웠다. 뒷방의 낮은 창문을 빠져나온 여인과 아이들은 무조건 달렸다. 따끔하더니 귓전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여인은 아이를 양 손에 이끌고 정신없이 어디론가 달렸다. 독립군이 있다는 일송정을 향해 일주일을 그렇게 북으로 북으로 걸었다.
여인은 물에 적신 옷고름을 젖먹이의 마른 입술에 갖다 댔다. 젖먹이는 희미하게 기척을 했다. 다시 아이를 들쳐 업었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순간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작열하는 황토색 태양이 머리를 짓눌렀다. 눈앞에 아지랑이가 일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여인은 스스륵 의식을 잃어갔다. 젖먹이를 꼭 끌어안은 채.
얼마나 흘렀을까. 여인이 눈을 떴다. 저녁놀이 어스름했다. 사방을 둘러보던 여인이 소리 쳤다.

“영희야, 정수야!”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엄마 여기 있다! 어디 있는 거니!”

아이를 업은 여인은 미친 듯 아이들을 부르며 들판을 헤맸다.

“엄마.”

큰아이의 목소리였다. 여인은 달려오는 두 아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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