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 영본시대 김영수 장편소설 제 8회
천문 : 영본시대 김영수 장편소설 제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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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0-26 10:53
  • 승인 2010.10.26 10:53
  • 호수 861
  • 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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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천지 도수(天地 度數)

인류 최초로 원한 맺혀 죽은 영혼, 단주(丹朱)-2

“그럼 미륵탄생공사서는….”

문홍은 용화의 말을 가로막았다.

“네, 바로 단주가 미륵이지요.”

점입가경이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제님께선 미륵으로 현생케 하여 단주의 원한을 푸는 공사를 하신 겁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천하의 대중화국(大中華國)이 되므로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일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문홍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두 장의 유서를 해석해 내려갔다.
이미 술병은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얼큰한 취기도 모두 가신 상태였다. 용화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천문에도 있지만 미륵은 특정 종교를 말하지 않고 있어요. 유불선을 고루 섭렵하는 중용의 자세지요. 미륵이란 말 자체가 모든 것을 융합한다는 뜻이지요. 상제님을 특정 종교로 가두는 건 자칫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처음부터 종교의 눈으로 본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거지요.”
“…….”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천손민족(天孫民族)으로 알려져 왔어요. 말하자면 하느님의 직계자손이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상제님도 우리 민족의 신분으로 우리나라 땅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살펴보면 환인(桓因), 환웅(桓雄)을 거쳐 단군(檀君)으로 이어진 역사상 계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요? 여기에서 말한 환인은 곧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이겠어요?”
“…….”
“상제님이 미륵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렇게 해서 증명이 끝났지요?”

문홍은 환인, 하느님, 증산을 같은 인물로 단정하고 있었다. 유불선을 넘어 단군까지 명쾌하게 일맥으로 관통한 문홍은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용화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천지공사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일들은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주어도 믿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지요.”
“…….”
“증산상제께서 9년여 동안 천지공사를 보신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 겁니다. 그 중의 일부가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혜성이 지구충돌을 하게 된 것을 미연에 방지하여 지구가 파괴되어 인류가 절멸하게 될 운수를 사전에 막는 공사가 있지요?”
“정말 그런 공사가 있었나요?”
“그럼요. 인류 파멸을 막는 공사이지요.”

용화의 두 눈이 놀라서 왕방울만 해졌다. 용화는 익히 증산의 천지공사를 책에서 익혔다. 하지만 문홍이 언급한 내용은 처음이었다. 용화는 공부를 모자라게 한 자신을 자책했다.
문홍은 이번엔 다른 책을 펼치더니 어느 부분을 용화에게 보여 주었다. 용화는 책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 보았다. 술신년(戊申: 1908년) 5월 하지(夏至)날 구릿골(銅谷)에서 수제자인 형렬에게 명하여 태인공사를 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문홍은 용화가 다 잃기도 전에 이야기를 해석을 놓았다.

“그날이 바로 1908년(戊申年) 하지날인데 양력으로는 6월 22일이고, 음력으로는 5월 24일이지요. 그로부터 7일 후에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막았지요. 1908년 6월 30일 새벽에 시베리아 퉁구스 지방에 큰 불덩이가 충돌했는데, 지구는 박살나지 않고 직경 몇 천 킬로에 달하는 지역에 화재가 일어나서 지상에 있는 모든 수목이 불에 탔다고 하지요. 그러나 인명피해는 안 나도록 그 불덩이가 인적이 드문 시베리아 지역에 충돌하도록 조치하신 것이지요. 만약 대도시 지역에 혜성이 떨어졌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겠지요.”
시베리아 폭발은 실제사건이었다. 놀라운 사실에 용화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놀랄 필요 없어요. 알고 보면 모두 상제님께서 이미 하신 일이니까요. 문제는 미래지요.”

용화는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랬다. 모두 지나간 과거사일 뿐, 그야말로 다가올 앞날이 진짜 문제가 아닌가.

“천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이 기록되어 있나요?”

용화의 채근에 문홍은 지금까지 분위기와 달리 입을 굳게 닫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매우 중대한 사안임이 틀림없었다. 문홍의 표정이 하도 근엄하여 용화는 감히 더 이상 재촉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작심한 듯 문홍이 입을 열었다.

“이 두 장의 천문에는 앞으로 탄생할 미륵을 명시하고 있어요. 상제께서 미륵탄생공사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미륵탄생공사라뇨?”

용화가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보았다.

“상제께서는 장차 우리나라에 미륵을 파견하여 지상선경세계를 건설하도록 공사를 보신 기록이 있습니다. 장차 오실 미륵의 생년월일도 상제님께서 친히 기록하셨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요?”

용화는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궁금증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번엔 용화가 문홍의 기분도 아랑곳 않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언제 탄생하시나요?”
“…….”
“혹시 이미 현생에 계시나요?”

한참을 뜸들이던 문홍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에는 태어난 일시까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요.”
“언제입니까?”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공부를 깊이 하여야만 되요. 어설프게 공부해서는 믿기지도 않고 확신도 안 들지요.”
문홍은 상체를 곧게 펴며 자리를 정리했다.

“자, 이제 그만합시다. 더 이상은 천기누설입니다.”

문홍은 처음 만났던 단호한 자세로 돌아가 있었다. 용화는 뒷간 갔다가 처리 못하고 나온 사람처럼 아쉬움으로 안절부절 이었다.

“혼자 공부해서 터득해야 해요.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용화는 문홍의 냉엄한 어조에 아무리 졸라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구릿골 동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 하얀 서설(瑞雪)이 내려 있었다. 눈꽃으로 수놓은 온 산천은 마치 설국에 온 기분이었다. 기분이 상쾌하고 공기도 청량하였다.
삼신산과 구성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은 아직 얼어붙지 않고 졸졸졸 노래했다. 그 맑기가 수정처럼 투명하여 언제든 지나가는 나그네의 목을 축일 수 있게 했다.
용화는 걸으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려 안간힘을 썼다. 너무도 어마어마한 일들을 하룻밤 새 경험한 까닭이었다. 간밤의 일이 꿈결같이 아득하기만 했다. 혹시 꿈을 꾼 건 아닐까 싶었다. 그는 손에 들려 있는 묵직한 서류봉투를 열어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봉투 안에는 문홍 선생이 건네준 천문 두 장의 복사본이 가지런히 접혀 들어 있었다. 용화는 천문을 가슴에 꼭 품고는 정읍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제령봉(帝令峰)에
서기(瑞氣)가 내리고-1

용화는 대흥리 제령봉 앞에 서 있었다. 고도는 높지 않지만 주변 산을 지휘하듯 이끌고 앉아 있는 형상이었다. 하얀 서설까지 머리에 이고 있는 제령봉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용화가 이곳에 온 것은 문홍의 언질 때문이었다.

‘다가올 후천 선경세계의 수도는 대흥리에 있지요. 대흥리의 제령봉. 상제님께서 명령을 내린다 해서 제령(帝令)이 되었지요.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사는 제자 차경석의 집에서 천지공사를 본 기록이 책에 있어요. <제령봉의 흙을 13척 깎아내려 그곳에 장차 천하의 교당을 세울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지요. 그곳에 미륵국가인 ‘대시국(大時國)’이 세워지고 3천 개의 국가로 나눠진 천하의 3천 명의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 지구촌의 일을 보는 세계의 수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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