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1회

1장. 예언자
불타는 숭례문
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 국보 1호 숭례문 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봉화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대문 4거리에 붉은 색 소방차들이 구겨진 성냥갑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다.
서울의 밤하늘을 찢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마치 앙칼진 암고양이 같다. 휘휘 돌아가며 플래시를 터뜨리는 전광등은 흡사 고양이 눈처럼 번뜩였다.
소방차가 뿌린 물로 흥건한 푸른 잔디 광장은 자동차바퀴와 신발자국이 짓이겨져 곤죽이 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소방차들은 갈 곳을 몰라 아우성이었다.
뿌연 연기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1층 누각 위에서는 검은 방독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소방대원들이 짙은 연기를 헤치고 있다. 흰색 포말이 흘러 나무바닥은 시궁창처럼 질퍽거렸다.
메케한 불냄새, 밤하늘에 너울대는 하얀 그을음이 원귀처럼 떠돌았다.
“계단이 어디 있는 거야?”
숭례문의 내부 구조를 모르는 소방대원은 급한 마음에 입이 더욱 타들어갔다. 현대식 건물이라면 복도나 비상계단쯤은 눈 감고도 찾았을 테지만 600년 전에 지어진 목조건물은 고대 피라미드의 미로처럼 낯설기만 했다.
“2층 누각에 도착했다, 이상!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 화재진압은 거의 완료됐고 잔불처리만 하면 될 것 같다. 이상!”
“수고했다. 이상!”
지휘차 근처에 있던 소방대원들은 모자를 벗으며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쓸어내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숭례문 주변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지붕 위로 시뻘건 불꽃이 치솟은 것이다.
“앗! 저게 뭐야?”
잔불정리 준비를 하던 소방대원들은 일순간 멍하니 숭례문의 지붕만 응시했다. 마치 누군가 풀무질하듯 지붕 틈새 곳곳에서 용접 같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불이 진압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다시 소방호수의 물이 분수처럼 숭례문 지붕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기와지붕은 든든하게 방수처리가 되어 기와 속으로는 물 한 방울도 미치지 못했다.
방수 지붕 아래서 불씨를 충분히 달군 화마(火魔)는 거세게 풀무질하며 보란 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순식간에 2층 누각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누각의 전 대원은 속히 철수하라. 이상! 빨리 나와라! 무너지고 있다. 빨리!”
무전기의 칙칙거리는 잡음마저 화마의 배경 효과음으로 동조해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이제 연기마저 벌겋게 달구어져 치솟았다. 한 소방대원이 황급히 숭례문 현판을 갈고리로 끌어내렸다. 2층 누각은 고사하고 현판이라도 구하자는 판단이었다. 현판은 투신하듯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조각났다.
소방호수의 집중 포화에도 불구하고 혹시 휘발유를 퍼붓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불길은 더욱 위세 좋게 무자년 정월 밤하늘에 봉화(烽火)를 올렸다.
“콰르르릉.”
지붕은 검은 연기를 토하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달나라를 오가는 시대에 불타는 국보 1호 앞에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불구경뿐이라니! 지켜보던 시민들과 소방대원들은 무기력감과 자괴감에 고개를 숙였다.
다음날 아침 여명(黎明)에 드러난 남대문 사거리는 처참했다. 밤새 포화를 맞은 전장처럼 잔불 연기가 여기저기 솟아오르고 있었다. 비릿한 불냄새가 매슥거렸다. 한 건장한 사내가 그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예(禮)를 숭상한다(崇)'는 의미의 ‘숭례문(崇禮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풍수지리상 한양 남쪽 관악산의 드센 화기를 막기 위해 세웠고 명칭부터 관악산의 화기를 고려했다.
그 어떤 전쟁에서도 불사조처럼 꿋꿋하게 600년간 서울을 지킨 숭례문은 대한민국의 상징이며 서울의 수호신 아닌가. 그런 숭례문이 무자년 정초부터 전소됐다는 사실은 더욱 불길하게 느껴졌다.
기도를 마친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서울의 운이 다했단 말인가….”
예언자를 찾아라
2008년 7월 11일 새벽 5시 10분 북한군 초소가 멀리 보이는 금강산 해변 모래사장. 동 트기 직전 어스름한 모래사장엔 한줄기 을씨년스런 바람이 스쳤다.
남측의 한 여성 관광객이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여자는 엉성한 남북 철조망을 넘어 해안 북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장진항이 바라다 보이는 호텔에 묵은 남측 관광객들은 일출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탕, 탕-’
날카로운 두 발의 총성이 고요한 새벽을 찢었다. 관광객들은 일제히 총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날 총성이 남북한 극렬한 대립을 알리는 신호탄이란 징조로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광화문에 위치한 주한 미국대사관. 대사관 북쪽으로 신록 푸르른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청와대 파란 기와지붕이 한눈에 보인다. 최초의 여성 주한 미국대사인 신임 캐슬린 스티븐스는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남자비서는 최근 남북관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금강산 피격사건 직후 남북 분위기는 냉랭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오후에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북 포용적인 내용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던 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10년간의 햇볕정책이 저물 것을 우려하여 발 빠르게 화해 분위기를 연장시키려 했다. 플루토늄 생산량 등을 적시한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2008년 6월 27일에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송출했다. 미국은 대북 테러 지원국 지정 해제절차에 착수하면서 이에 화답했다.
대북 강경기조를 선언하려던 이명박 정권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화해 무드에 발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멈췄던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하고 남북 정상회담도 은밀히 타진을 하면서 정식적인 대북 외교방향을 천명하려는 직전이었던 터에 금강산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럼 긴장국면을 조장하기 위한 북측의 고의적인 사건인가요?”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우발적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의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대통령을 지지했던 수구언론들은 해빙 무드의 연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물을 만난 고기처럼 금강산 피격사건을 ‘정면도전’이라고 몰아붙였다.
남북 언론들은 서로를 겨냥해 입에 가시 돋친 논조를 쏟아냈다. 남한의 극우 반북세력들은 김정일 정권타도 궐기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왔다. 10년간 해빙 무드였던 한반도는 다시 급랭했다. 대북 강경론자들의 득세에 남북한은 물론이고 공들였던 미국과 동북아 외교 라인은 망연자실했다.
금강산 관광은 즉시 중단되었다. 이어 북 외무성 대변인은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중’이라는 강경 성명을 냈다. 연이어 장거리 로켓을 동해안에 발사한 북한은 기어코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말았다. 핵시설 원상복구 방침을 천명하고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반도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우발 쪽으로 예측한다구요? 총성이 울리고 사람이 죽은 사건인데 예측이라뇨? 예스입니까, 노입니까?”
“그게….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집단이라 진상규명이 쉽지 않습니다.”
북한은 남한 관광객이 군사 경계지역을 침범하였다고 주장했고, 남한은 북한이 발표한 시간과 사거리에 이의를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남북공동 조사단을 꾸리자고 요구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사건의 실체는 미궁에 빠진 상태였다.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미국이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죄송합니다. 하늘에서 첩보인공위성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지만 피격 동기까지는….”
“음… 기계의 한계군요. 그럼 우발이란 근거는 뭡니까?”
“북한 김정일은 새로이 선출된 이명박 정권과 해빙 무드를 연장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는 조치를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대통령이 대북 긴장완화 방안을 발표하는 날 마침 금강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서로 모순됩니다.”
“동기가 없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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