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옛날 먼저 간 많은 전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노병은 ‘아직도 죽어야 할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를 더 많이 손가락으로 세며 다시 깊이 잠이 들었다.
구상원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영수가 신동협 선생을 찾아왔다. 신동협 선생은 한영수를 데리고 단골로 가는 가회식당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한영수는 구상원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옛 전우들의 소식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한영수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전우들의 소식은 물론 당시 그들과 연애하던 여자들의 뒤 소식까지 환하게 꿰뚫고 있었다.
한영수는 대구 북성로에서 동판장사를 하는데 본업은 뒷전이고 옛 전우들을 찾아다니는 게 주업인 것 같았다. 전국을 얼마나 누비고 다녔는지, 40년 전에 월남에서 같이 근무했던 전우들의 소식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강화도에 서버가 있는 월남전과 한국군 인터넷 카페에 회원 가입까지하며 활동을 한다고 했다.
몇 해 전에는 고엽제 문제로 시위를 하더니 근간에는 월남전 관계 모임의 지회장을 맡아 그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옛 전우들이 있는 곳에는 그가 반드시 있었다.
한영수도 개미허리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던 강혜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따금 보훈병원으로 가서 지금은 그곳에 입원을 해 있는 손무삼을 만난다고 했다. 강혜원이 손무삼을 돌봐 주고있어 그녀도 볼 수 있었다.
한영수의 이야기가 변을수 일병의 약혼자인 우지혜로 넘어갔다. 우지혜는 당시의 충격으로 교편생활을 그만 두고 서울로 상경하여 사회봉사 활동에 종사하였다. 특히 우지혜는 지체장애자들의 어려운 삶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불행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한 때 세인들은 우지혜가 봉사 활동에 쓰는 막대한 자금 출처에 대해 무척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그녀가 지체 장애자들을 위해 설립한 재단의 운영 자금은 이제는 재벌이 된 변을수 일병의 동생인 변세란의 출연금으로 밝혀졌다. 언젠가 우지혜의 희생적인 삶은 TV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우지혜는 친구 변세란의 중매로 치과의사와 결혼을 하였다. 우지혜는 결혼을 반대 하였으나 변세란의 적극적인 권유로 혼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2001년 우지혜는 남편인 치과의사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리고 2004년 그녀의 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잠시 귀국하였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고국에 체류를 했는데 장례식을 끝낸 후 혼자서 변을수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고 한다.
그녀는 변을수와 사랑을 속삭였던 한강변과 명수대, 동국대학교의 캠퍼스, 성균관대학교 후문 부근에 있었던 변을수의 생가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근무했던 울진군 기성면에 소재하고 있는 초등학교와 당시에 자취를 했던 집을 찾아갔었다.
그녀가 초임교사 시절에 자취를 했던 바닷가에 있는 방 2개의 빨간 슬레이트집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기거하던 방에서 마지막으로 변을수의 모습을 보았던 창문도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혼자서 울고 웃으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고 한다.
출국 당일 오전에 우지혜는 변을수의 발자취를 찾아 혼자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40년 전 변을수와 함께 알밤을 구어 먹었던 그 자리를 찾아갔었다. 국립묘지도 참 많이 변해 있었다. 당시에는 갈대와 잡초 밭이었던 곳이 지금은 조경이 아주 잘 되 있었다. 그녀는 변을수와 같이 다녔던 옛일을 회상하며 묘지 사이를 추억에 젖어 거닐었다. 두 사람이 알밤을 구어 먹으며 사랑을 속삭였던 그 자리는 이제는 병사들의 아담한 유택으로 변해 있었다.
상병 박xx 1968년 7월 29일 송카우에서 전사. 그녀는 병사들의 묘비를 읽으며 을수와 사랑을 속삭였던 그 장소로 가고 있었다. 바로 저기 군, 그녀가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아-! 그곳에…
우지혜는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린애처럼 목 놓아 울었다. 그곳에는 그녀가 사랑했던 변을수가 있었다. 어떻게 변을수가 그 자리에 있단 말인가?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묘비명을 읽어내려 갔다.
‘일병 변을수, 1967년 11월 킬러밸리에서 전사하다.’
드디어 그녀는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다.
비록 유명을 달리 하였지만 변을수는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장소에서 고단한 육신을 영원히 쉬고 있었다.
오후 3시 김포공항에는 변세란이 먼저 나와 우지혜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서로를 포웅 했다.
“기집애, 너 어디 갔다왔니? 얼마나 찾았는데."
세란이가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애인 만나로…”
“애인?”
변세란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한 번도 을수의 묘지에 관해서는 말 한 적이 없었다. 우지혜가 변세란을 왈칵 끌어안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세란아, 여름 한낮의 짧은 꿈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가도 가슴속에 남아 있단다. 비록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이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그녀는 변세란에게 묘한 말을 남기고는 비행기 트랩에 올라갔다. 그리고 저 먼 나라로 떠나 가버렸다.
임태호 상병과 사귀었던 춘자라고 불리었던 여인의 행적은 알 수가 없었다. 한영수는 그녀에게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으나 편지는 반송이 되어 돌아왔다. 반송된 사유는 수취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수취불가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지난가을 권영준 병장의 유복자인 권세호는 태백산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그곳 단위 농협에 다니는 아가씨라고 했다. 신부 측 혼주가 딸을 신랑에게 인도한 후 유복자를 혼자서 키운 신랑의 어머니에게 다가 가 위로를 하자 많은 하객들이 크게 감동을 하며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리고 손자의 속눈썹이 얼마나 긴 지 성냥개비를 얹혀 두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온 마을에 자랑하고 다녔던 신랑의 조모인 권영준 병장의 어머니는 이미 타계하고 없었다.
한영수가 전한 소식 중에서 가장 비참한 소식은 남호구 병장에 관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호구 병장의 시신은 집 앞의 논 뜰에 서 있던 시멘트 전주 앞에서 발견되었다. 시신의 두개골은 박살이 나 있었다.
주변은 시뻘건 선혈이 낭자하여 남호구 병장의 처참한 죽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남호구 병장은 시멘트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을 한 것이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을 죽였다. 남호구 병장은 결코 과거에서 벗어날 수 가 없었다.
남호구 병장은 귀국하여 두 딸을 슬하에 두었으나 모두 선천적인 불구자로 태어났다. 큰딸은 피부에 붉은 반점을 가진 기형아였다. 둘째 딸은 사지가 뒤틀린 정박아로 태어났다. 그리고 남호구 병장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월남에서 귀국한 남호구 병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앞에 전봇대가 서 있는 상답 세 마지기를 사들인 것이다. 마을에서는 새로운 부자가 탄생하였다며 큰 잔치를 열기도 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황소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살림이 불어나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청상과부의 아들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그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딸애가 태어나자 집에는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딸이 선천성 불구자로 태어난데 남호구 병장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사지는 뒤틀리고 피부는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결혼 생활이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병원비 때문에 부채는 자꾸만 늘어났다. 농토는 채무로 날아가고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행복은 잠깐이었고 불행은 가까이에 와 있었다.
그는 고엽제에 중독되었으나 본인은 죽을 때까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남호구 병장은 앙케패스에서 작전 중 중독되었거나 아니면 사계 청소 중에 약품에 접촉이 되었을 것이다.
병사들은 사계 청소용으로 배부된 분말을 헝겊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 속에 담아 가슴에 달고 다녔다. 그리고 팬티만 걸친 벌거벗은 몸으로 약을 맨손으로 외곽의 진지에 뿌리고 다녔다. 초소 외곽에 무성하던 잡초들이 앙상하게 말라죽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남호구 병장도 그렇게 이 주머니를 목걸이처럼 가슴에 달고 다녔다.
오랜 세월을 병마에 시달린 남호구 병장은 약값으로 모든 농토를 날려 버렸다. 삶의 희망은 점점 더 멀어지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아주 은밀하게 복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행복과 삶의 모든 가치를 빼앗아 간 잔인한 적들에게 최후의 공격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작전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병사는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무도 몰래 소주를 한 병 마셨다. 그리고 마을 회관 구판장으로 가서 새우깡을 안주로 하루 내내 소주 한 상자를 냉수를 마시듯이 들이켰다. 술이 엉망으로 취한 병사는 주먹을 흔들며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진짜 사나이’도 부르고, ‘맹호가’도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 동안 병마에 시달린 나약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던 병사는 해가 지자 무서운 맹수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을 헤매기 시작했다. 엉엉 울며 통곡을 하기도 하고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핏발 선 두 눈에는 짐승처럼 파란 불덩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모두 몸을 피했다.
얼마나 들판을 헤매고 다녔는지 신발을 신지 않은 양말은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손끝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병사의 노여움은 정말 무서웠다. 마을 사람들은 밤새도록 공포에 떨며 그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했다.
새벽 동이 트자, 병사는 그 옛날 낯선 이국에서 적을 찾아 나섰던 수많은 병정들처럼 용감하게 적과 마주섰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적을 죽여 버렸다. 집 앞 논 뜰에 외로이 서있는 전신주에 머리를 부딪쳤다. 두개골은 박살이 나서 수박처럼 깨져 있었다. 하얀 들판의 차디찬 서리 위에 붉은 피가 꽃잎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는 시멘트로 만든 전신주에 붉은 피로 이렇게 써 놓았다.
‘그럼 안녕히.'
용감한 노병의 마지막 인사였다. 이번에 그의 적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노병은 순간에 살고 영원에 죽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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