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모른다카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괴물의 말랑말랑한 배를 자꾸만 중지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 보았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표창을 꺼내들고 그 괴물의 배를 5cm 정도를 가르기 시작하였다.
빙 둘러 서있던 많은 병사들은 개미허리 김 하사가 무엇을 하는지 몰라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표창으로 괴물의 배를 가르자 연한 초록빛 가죽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내장이 조금 드러났다.
개미허리는 중지 손가락을 뱃속에 넣고 무엇인가 뒤적거리며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 한 마디만 빨간 살점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버리고는 꿀꺽 삼켜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앗!”
구경하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모두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개미허리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저만치 휘적휘적 걸어 가버렸다.
“야, 김 하사.”
신동협 병장이 다급하게 쫓아가서 그의 소매 자락을 나 꾸어 채며 말했다.
“방금 삼킨게 뭐고?”
“니는 몰라도 된다.”
“이 괴물은 내 꺼야. 방금 니가 먹은 게 뭐고?”
“말해도 니는 모른다카이.”
많은 병사들이 두 사람의 실랑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김 하사, 정말 그럴 거야.”
“말하면 욕할 긴데.”
“욕 안 할게.
“약속해라.”
“좋아 약속했다, 말해라.”
“괴물 이름이 뭔지 아나.”
“몰라, 그러니까 묻지.”
“이기, 청상개빈 기라.”
“청상개비? 그게 뭐고?”
“니는 그런 말도 몬 들어봤나? 죄는 청상개비가 짖고 벼락은 고목나무가 맞는 다고.”
개미허리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귀중한 보물이 있는데 하늘에는 용의 입에 물린 여의주요, 땅에는 청상개비의 간이라고 했다. 청상개비는 여름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에다가 똥구멍을 치켜들고 옥황상제에게 욕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옥황상제가 약이 올라 ‘이놈’ 하고 비와 함께 벼락을 내리치며 청상개비는 잽싸게 고목나무 속으로 숨어 버린다. 그렇게 해서 아무 죄가 없는 고목나무는 옥황상제가 때린 벼락에 맞아 죽는다. 이 말의 뜻은 ‘죄는 청상개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나무가 맞는다.’는 우리나라의 전래되는 속담에 연유된 이야기였다.
죄는 다른 사람이 짓고 벌은 엉뚱한 사람이 받는다, 라는 해석이었다. 개미허리는 이 괴물이 그 속담에 나오는 청상개비라는 것이다. 그것의 간은 전설 속에 나오는 용의 여의주와 맞먹는 귀중한 보물이며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약이라고 했다.
“뭐야!”
신동협 병장이 놀라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 할배가 일직에서 한의원을 하셨어. 그래서 내가 좀 알지.”
녀석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저 만치 횡 하니 가 버렸다. 신동협 병장은 그만 천상개비가 싫어졌다. 마치 쓸개 빠진 곰처럼 미련이 없어졌다. 그래서 표본을 하려던 청상개비를 황 일병에게 그냥 줘 버렸다.
귀국한 뒤 신동협 병장은 학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동물도감을 볼 기회가 있었다. 개미허리가 말한 청상개비는 학명이 ‘천산갑’ 이며 실존하는 동물이었다.
등에 투명한 비늘이 갑옷처럼 붙어있고 몸의 색깔이 연한 초록이었다. 목이 거북이 보다 더 길고 악어처럼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동물도감에서는 ‘천산갑’의 간이 용의 여의주보다 더 귀한 약제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천산갑의 비늘이 귀한 약제로 사용되며 그 희소성으로 인해 고가의 귀중품으로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고 했다.
당시 신동협은 천산갑의 간이 귀중한 약제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개미허리가 천산갑의 간을 빼 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걸 먹은 사람은 불로장생하며 죽지 않는 다고 했다.
‘죄는 천상갑이 짓고 벼락은 고목나무가 맞는다.’
그것은 마치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이라는 죽음의 계곡으로 내 몰린 32만 명의 참전 병사들의 처지와 무엇이 다른가? 월남전에 참전한 많은 병사들은 천상갑의 장난에 따라 벼락을 맞은 고목나무 신세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 안녕
그대에게 전할 말은
2008년 11월 초겨울.
구상원의 내외는 신동협 선생의 초청으로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를 열차를 타고 밤늦게 영주역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신동협 선생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묵었다. 이튿날은 바람 한 점 없는 스산한 초겨울 날씨였다. 일행은 신동협 선생의 소나타 승용차로 희방사를 갔다. 희방사는 구상원이 H대학교 2학년 때 한 번 다녀간 곳이었다. 그는 희방사의 변한 모습을 무척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공팔은 진입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을 알고 무척 놀라워했다. 그는 희방사는 변했으나 폭포 소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행은 희방폭포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하산 길에 여자들이 기분이 좋은지 깔깔거리며 합창을 시작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에 바램이었어. 잊기에 너무한 나에 운명이기에.
구상원이 새로 사 입은 빨간 등산복 안주머니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신동협에게 내밀었다. 사진은 명함판 크기에 흑백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배낭을 등에 멘 젊은 청년이 폭포수 밑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어이 신 선생, 난 말이야, 살아서는 여길 한 번 더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질 못했어. 그런데 희방사를 왔잖아. 폭포의 우렁찬 물소리를 들으니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아. 산이 무척 아름다워.”
구상원이 아주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이 보이세요?”
신동협의 아내 주혜영이 신기한 듯 물었다.
“그럼요, 이 사람의 밝은 눈이 모든 걸 보고 있잖아요. 난 저 사람의 눈으로 소백산의 경치를 보고 있답니다. 여보, 건너편에 건물이 있지?”
구상원이 탁자 위에 놓인 현우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예, 바로 건너편에... 당신, 음악 소리가 들리세요?”
“응, 들려. 참 좋은데.”
“왜, 태양은 다시 떠오르는가? 왜, 새들은 다시 또 지저귀는가? 이 세상에 끝이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제발, 이 세상에 끝이 있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현우 엄마가 구상원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노래 말을 속삭였다. 두 사람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일행은 하산 길에 풍기온천에 들려 목욕을 즐겼다.
그리고 온천 앞 창락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여자들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지 십대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콜라를 마시던 여자들이 맥주를 한 병 시켜도 되느냐고 물었다.
구상원이 점잖게 ‘사모님들의 청을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하며 능청을 떨었다.
여자들이 손뼉을 치며 “여기, 맥주 한 병요.”하고 소리를 쳤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일행은, 부석사를 찾아갔다. 현우 엄마가 구상원의 손을 잡고 부석사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여느 관광객들처럼 그들 역시, 노년의 부부들이 한가롭게 여가를 줄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되는 오랜 세월 동안 힘든 역경과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일행은 부석사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절 입구의 과수원에서 팔고 있는 사과를 사서 깎아 먹었다. 평상에 앉아 부사를 깎아 먹으며 여인들이 노래를 불렀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그대와 살고 싶소’
초겨울 파란 하늘과 낙엽이 지고 있는 노란색 은행나무 잎사귀들, 사과의 향기로운 맛과 여인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감미로운 노래 소리는 삶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구상원의 초점 없는 시선이 정동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모습으로 나는 그대를 볼 수가 없네. 소리로도 나는 그대를 볼 수가 없네. 그러나 오직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대를 볼 수가 있네.’
구상원의 내외는 저녁차로 대구로 떠나갔다. 신동협 선생 내외는 하룻밤을 더 묵고 갈 것을 권유했으나 현우의 학교 때문에 더 이상 여가를 줄길 수가 없었다. 두 가족은 내년 봄에 다시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19시35분 열차가 개찰을 시작하자 아내가 정동희에게 두 사람의 차표를 내밀었다. 아내가 정동희를 감싸않았다. 개찰구로 찬바람이 스쳐지나가자 정동희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아내가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 정동희의 머리를 묶어 주었다. 정동희가 공팔의 팔짱을 끼며 개찰구로 걸어 나갔다. 역무원이 정동희의 표를 받아 검표를 했다. 정동희의 롱 코드 옷자락이 바람에 탁탁 소리를 내며 나부꼈다. 공팔이 돌아서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갔다.
공팔 구상원은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공팔은 병마에 절대로 굴복하는 법이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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