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91회
킬러 밸리 제 91회
  •  기자
  • 입력 2009-12-08 17:52
  • 승인 2009.12.08 17:52
  • 호수 815
  • 4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벙커 뒤에는 각목을 세워 만든 빨래 건조대가 있어 세탁물을 걸어 두고 말렸다. 그런데 군용 팬티와 러닝셔츠가 걸려있는 건조대 빨랫줄에는 이상한 물건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초록색 거북이처럼 생긴 요상한 물건이었다. 그것의 등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명한 비늘이 한 꺼풀 박혀 있고 몸뚱이에는 악어처럼 긴 꼬리가 달려 있었다.

앞 주둥이는 거북이처럼 생겼는데 전선으로 목을 묶어 빨래 줄에 걸어 놓았다. 빨랫줄의 높이가 1m 70cm 정도인데 그 괴물의 꼬리가 땅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거북이 모양의 그 괴물은 온몸이 초록색이었다. 가슴과 배 부분은 연한 초록빛으로 그 껍질은 부드럽고 말랑말랑 했다.

포대 진지 9번 관망대 앞에는 갈대숲이 시야를 가리고 무성해 근무에 지장이 아주 많았다. 초소 시야를 가려 버렸다. 지난주에는 V. C들이 갈대숲 사이로 은밀하게 침투하여 아군 초소 공격을 해 왔다.

그리고 이따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체가 갈대숲을 헤치며 초소 주변으로 접근하여 조명탄을 터트려 진지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적으로 추정되는 그 물체는 동작이 너무 빨라 초소에 접근할 때마다 M16 소총으로 사격을 하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상한 것은 그 물체가 움직일 때는 갈대가 파도처럼 움직이며 갈라졌다.

어떤 병사는 아나콘다 같은 거대한 뱀이 초소 주변을 돌아다닌다고 했고 또 다른 병사는 V. C의 첩자가 접근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물체가 초소 주변에 조명탄을 터트리고 인계철선을 망가트려 병사들을 놀라게 해 자주 비상을 걸리게 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진지에서는 초소 주변에 갈대숲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했다. 불도저로 갈대숲을 밀어버리고 오렌지 에이젼트(고엽제)를 살포하기로 했다.

병사들에게 오렌지 에이젼트의 독성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당시에는 그 독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단지 밤마다 지겹게 걸리는 비상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게 고통스러웠다.

병사들은 진지 주변의 갈대숲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풀을 죽이는 고엽제를 살포하여 발가숭이로 만드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약제는 녹색 드럼통에 들어 있었다.

그 드럼통 상단에는 노란색 테가 둘려 져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란 테 속에는 ‘DANGER’ 라고 쓰여 있었다. ‘DANGER’ 그게 무슨 말인가?

병사들은 팬티 차림으로 철모 속에 풀 죽이는 분말 가루(고엽제)를 물에 타서 손으로 저으며 초소 주변에 휘휘 뿌리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아침 58공병대의 불도저가 와서 9초소 주변의 갈대숲을 밀어 버렸다. 그 작업을 하던 둘 포반에 이상중 일병이 이상한 괴물을 발견 하였다. 그 괴물은 미군 불도저가 갈대숲을 파헤치고 땅을 밀 때 깔려 죽은 것 같았다.

그 괴물의 갑옷은 아주 단단하여 무거운 불도저의 궤도바퀴에 깔렸으나 몸뚱이가 터지지는 않고 그냥 압사를 당했다.

이상중 일병은 괴물을 발견하고 외곽 진지에서 질질 끌고 와서 빨래 줄에 메달아 놓고 무엇인지 분석을 하고 있었다.

많은 병사들이 빙 둘러서서 이 괴물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였다.

“요거는 거북이의 변종인기라. 사람으로 말하면 튀긴기라.”

이상중 일병이 아는 채 하며 말하자.

“무신 소리, 요놈은 월남 도마뱀인 기라. 니는 눈 까리로 보면서도 모르나.”

한동수 병장이 아는 채 하며 말했다.

포대 병사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한마디씩 했으나 정확하게 이 괴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병사들은 그 동안 인계철선을 건드려 조명탄을 터트린 범인이 이 괴물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신동협 병장도 이 괴물의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그는 생물 시간 중에 동물도감 속에서 본 수많은 동물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으나 이런 괴상한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등 위에 갑옷을 두룬 손바닥만 한 투명비늘을 보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희귀한 동물인 것이다. 잉어비늘처럼 생긴 저 투명 비늘만 해도 엄청난 값어치가 있을 것 같았다.

“야, 이 일병. 이거 나 주라.”

신동협 병장이 말했다.

“뭐하시게요.”

“비늘이 이상하게 생겨서 구경 좀 하게.”

“오 딸라 주세요.”

“비싸다, 안 해.”

“그럼, 삼 딸라.”

“싫어.”

“그럼, 맥주 다섯 캔만 주세요.”

“좋아, 내가 샀다.”

“이 괴물을 뭐하시게요.”

“표본 할까 해서 그래.”

신동협 병장도 그 괴물로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

“야, 뭣들 하냐.”

구경꾼을 헤치고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빙 둘러 서있는 병사들을 헤치고 그 괴물 앞으로 다가갔다.

“어, 이것 봐라.”

개미허리는 몹시 놀라는 눈치이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중지 손가락으로 그 괴물의 배를 꾹꾹 질러 보다가 다시 등 뒤의 비늘을 살펴보기도 했다.

“야, 이거 나 주라.”

개미허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김 하사님, 한 발 늦었심더. 이 괴물은 신 병장님 꺼라 예.”

“어이, 신 병장 네가 샀냐?”

“그래.”

“얼마에.”

“맥주 다섯 캔.”

“야, 돈이 썩었냐. 이걸 사게.”

그는 이죽거리며 괴물의 연한 초록빛 뱃살을 중지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다가 등에 덮인 비늘을 만져 보기도 했다.

신동협 병장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개미허리가 이런 괴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김 하사. 이 괴물 이름이 뭐고? 니는 알제.”

“모른다, 내가 우째 알겠노.”

“참말이가?”

“내도 모른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