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90회
킬러 밸리 제 90회
  •  기자
  • 입력 2009-12-01 14:27
  • 승인 2009.12.01 14:27
  • 호수 814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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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착지하는 순간, 어느새 말랑깽이 하사는 사범의 오른 쪽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빙빙 돌며

“사람 살려요, 사람 살리 주-이-소. 여게가 도살장이가 생사람 때려잡게. 아이고 사단장-님-요, 사람 살리 주-이-소. 이 도적놈들이 사람 죽이니더”

하고 악을 쓰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러댔다. 이 소동으로 공병 중대의 병사들은 물론 병기 중대, 통신 중대의 병사들, 그리고 점심밥을 짓던 취사병들까지 무슨 큰 구경이라도 생긴 것처럼 구름 때처럼 몰려들었다.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자 허리가 한 줌 밖에 안 되는 말랑깽이 하사는 저 만치 껑충 뛰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야, 상병! 내가 널, 세 번이나 봐줬어. 이젠 내 차례야, 임마! 덤벼라 꼬맹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교만하게 비웃었다.

“뭐야 임마, 말랑깽이가 겁도 없이 기 올라. 넌 죽었다 임마, 싸-아!”

오원수 사범은 분노로 치를 떨며 필사의 힘을 다해 이단 옆차기로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리고 단숨에 놈의 머리통을 찍어 버렸다.

그러나 말랑깽이 하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 찬 제비처럼 자세를 나 추었다. 그리고 빙그르르 돌며 마른 장작개비 같은 오른쪽 다리를 쭉 뻗어 올렸다.

순간 상병은 ‘캑’ 하는 괴상한 비명 소리와 함께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며 저쪽 구석에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울컥 피를 토하며 내동댕이친 개구리처럼 사지를 벌벌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야, 뭘 보냐? 다음은 너 차례야 임마! 덤벼라 돼지야, 어서 덤벼!”

말랑깽이 하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손가락으로 강철 고참 사범을 불렀다. 팔짱을 끼고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거구의 고릴라는 말랑깽이 하사를 노려보았다.

“어서 덤벼 돼지야, 에그, 겁을 잔뜩 집어먹었구나, 쯔쯔쯔... 불쌍한 놈! ”

“뭐야 임마, 그렇게 죽고 싶어?”

강철 사범은 국기원 태권도 본부에서 관장을 하다 입대한 태권도 국가 대표 선수였다.

그는 탱크처럼 육중한 체격을 두 발에 싣고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러나 하사의 몸놀림은 더 빨라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태권도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그리고 볼 수도 없는 부드럽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동작이었다. 하사의 동작은 상대보다 언제나 한 수 앞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사의 몸놀림은 언뜻 보기에는 엉성하고 느리며 빈틈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강철 사범은 아무리 공격을 해도 하사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하사의 몸놀림은 전혀 예측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강철 사범을 조롱하고 있었다. 강철 사범은 생전 처음으로 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하사를 노려보았다.

“너 임마! 오늘 임자 만났어. 9단도 운동을 했다고 까불어? 애들 장난 같은 재주로 할배를 몰라보고 함부로 까불어? 이 몸은 합이 19단이시다. 잘 봐 둬라, 어른을 몰라보고 까불면 얼마나 무서운 벌을 받는가를!”

말랑깽이 하사는 붕 떠오르며 몸을 발랑 뒤집어 오른 발을 가볍게 놀렸다. 입대 전 국기원 관장이며 태권도 공인 9단인 강철 사범은 초등학생처럼 부동자세로 서서 무자비하게 얻어 터졌다. 그의 얼굴은 붉은 피로 금방 물들었다. 그러나 하사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처럼 사범을 때렸다. 그러나 입으로는 장난을 쳤으나 발길은 아주 잔인하여 조금도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그는 급소만 골라서 쳤다. 거구의 고릴라 강철 사범이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당신이 관장이요? 어디 한 번 놀아 봅시다.”

고릴라 강철 사범을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든 말랑깽이 하사는 창가에 앉아 있는 관장을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말랑깽이 하사의 동그란 눈은 얼음처럼 차갑고 냉랭한 기운이 무섭게 서려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기도 무서운 살기 어린 눈빛…

이태호 관장은 전율에 몸을 파르르 떨며

“김 하사님, 오늘은 그만 합시다.”

“관장님께 한 수 더 배워야 겠소, 여길 보시오, 관장!”

말랑깽이 하사는 자기 명찰 위에 붙인 마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사의 명찰 위에는 활짝 편 손가락 열아홉 개가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병사들의 복장에 대해 그렇게 심하게 규제를 하지 않는다. 그 역시 그런 분위기에 따라 멋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말랑깽이 하사는 “이건 거짓말이 아냐. 어디 셋이서 한꺼번에 덤벼 보시지.”하고 말했다.

“김 하사님, 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합시다. 제발 부탁이요, 그렇게 합시다.”

“좋소! 그럼 오늘부터 내가 관장이요.”

말랑깽이 하사는 그제야 굳었던 얼굴이 풀리며 만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천천히 교육관 안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아주 거만한 자세로 팔자걸음을 걸으며 관장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은희용 상병의 말을 들은 A포 대원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신동협 병장은 개미허리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배짱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엉뚱한 일을 벌이기 위해 태권도 교육을 지원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가 그곳을 지원한 이유는 킬러밸리에서 생긴 일들을 모두 잊고 정리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천산갑의 간

죄는 청상개비가 짓고 벼락은 고무나무가 맞는다

“어메, 이게 뭐시랑가? 신 병장, 넌 먹물인게 이게 뭔지 알게지라 잉.”

6포 반장 정 중사가 지나가는 신 병장을 불러 세우고 물었다.

“뭔데 그래요?”

“요로코롬 요상하게 생긴 요놈이 머시랑가?”

신동협 병장은 6포반 빨래 건조대 뒤로 갔다. 포반은 지하 벙커 속에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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