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87회
킬러 밸리 제87회
  •  기자
  • 입력 2009-11-10 13:11
  • 승인 2009.11.10 13:11
  • 호수 811
  • 4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런데 개미허리가 그렇게 악명 높은 사단 태권도 교육생을 자원하고 나선 것이다. 신동협 병장이 그 이유를 묻자 개미허리는 자기는 이번 작전에서 꼭 빠지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지난 번 킬러밸리에서 아주 혼 줄이 난 모양이었다. 그는 이번 작전에 대한 예감이 좋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 전우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힐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신 병장, 복어(포대장) 한 번 꼬셔 봐라. 나, 태권도 교육 보내자고.”

“정말이야, 해보는 소리야?”

신동협 병장은 진심으로 만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개미허리는 태권도 교육관에서 맞아 죽어도 좋으니 꼭 보내 달라고 졸랐다.

“소원이 정말 그렇다면 복어에게 말해보마. 들어줄는지는 모르겠다만.”

“신 병장, 너 복어 잘 꼬셔야 돼.”

“걱정 마. 복어가 고등학교 선배라는 것 잘 알잖아. 그런데 너, 조심해야 할 거야. 교육대의 사범 한 놈이 하사라면 이를 간대.”

“알아서 할게.”

신동협 병장은 진심으로 개미허리가 걱정 되었다. 킬러밸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개미허리로부터 고해성사를 받듯 모두 들은 후로부터 진심으로 그를 걱정했다.

“준비이 쏴아!”

부관 신록 중위가 명령을 내렸다.

꽝.

6문의 105mm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을 했다. 천지를 진동하는 포성으로 대지는 몸을 떨고 공기는 찢어지는 아픔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포 사격은 벌써 2시간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3시 30분뿐, 섭씨 45도의 불볕더위 속에서 병사들은 점심도 거른 채 사격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대장 반복어 대위는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해졌다. 단, 5분간만이라도 포 사격을 중지할 수만 있다면 부하들에게 씨레이션 이라도 먹일 텐데,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보병들이 다급하게 사격 요청을 하니 쉴 틈이 없었다.

포수들의 벌거벗은 몸뚱이는 어느새 하얗게 소금이 말라붙어 있었다. 포수들이 폭염에 기절 해 쓰러지면 포대는 끝장이었다.

A포대는 해발 400m의 산허리에 진지를 구축하고 산 아래 에 보이는 부락을 향해 포탄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부락은 반달 같은 푸른 해안선을 끼고 40여 호의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부락 앞에는 눈부신 하얀 모래밭과 파란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편엽서에나 나옴직한 그런 아름다운 부락이 처절한 비극 속에 파괴 되고 있었다.

부락 뒤편의 밀림 속에서는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밀림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부락의 농가에 옮겨 붙으며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방탄조끼를 입은 3중대 병사들이 M16 소총을 무차별로 난사하며 부락에 접근하고 있었다. 중대가 진입하는 부락 뒤편의 밀림 속에는 수많은 월맹군들이 무서운 기세로 응사 하고 있었다. 부락 복판의 공터에는 닭들과 오리 떼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개와 돼지도 총소리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날뛰고 있었다.

A포대는 보병들이 진입하는 부락 뒤편으로 후퇴하고 있는 월맹군들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포탄을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6문의 105mm 포는 포신을 산 아래로 향한 체, 격전지를 향해 쉴 새 없이 포탄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포대는 잠시도 숨 돌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육안으로 바로 내려다보이는 부락에서 전우들이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어떻게 점심을 먹을 수가 있겠는가?

“워메, 저게 뭐여?”

인사계 남 상사가 갑자기 산 아래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러 댔다. 순간 포대장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적들이 쏘는 박격포 탄이 3중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포탄은 두 발 혹은 세 발씩 날아와 정확히 탄착점을 찾지는 못한 채 청록색 바다 물에 떨어지고 있었다. 바다에 떨어지는 포탄은 굉장한 분수를 만들고 있었다. 저 포탄이 정확하게 탄착점을 찾는다면 3중대는 순식간에 전멸될 것이다.

포대장 반복어 대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이 강 상사, 외곽 경비병 전부 집합시켜. 빨리!”

포대의 모든 병력은 사격에 동원되었다. 통신, 행정, 취사병까지도 포반에 배치되어 포탄 상자를 까는 작업에 동원이 되었다. 포수들은 계속되는 사격으로 상자에서 포탄을 꺼낼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포대장 자신도 야전삽을 들고 포탄 상자를 깠다.

105mm 포탄은 철사로 밴딩이 된 나무 상자 속에 두 발씩 들어 있었다. 야전삽으로 밴딩이 된 철사를 툭 쳐서 끊고 나무 상자를 찍으면 검은 마분지 통에 거꾸로 결합이 된 두 발의 포탄이 나왔다. 그런 다음 야전삽 날로 마분지 통을 까고 알맹이를 꺼내 탄알과 장약을 결합해야 사격할 수가 있다.

숙달된 포수들은 단 세 번의 삽질로 포탄을 만들었다. 그러나 포 사격이 오늘처럼 장시간 계속되면 장약을 조립하는 포수들은 지쳐서 작업 속도가 느려지거나 과로로 기절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경비병, 니들도 전부 포반에 붙어라. 야 조 일병, 너는 포수들에게 물을 줘라. 포에도 물을 주고(포신이 과열된 것을 물로 냉각시키라는 뜻임). 그리고 포수들의 몸에도 물을 뿌려 줘라. 이러다가 생사람 잡겠다.”

워낙 상황이 다급해지자 포대장은 외곽 경비병들까지도 모두 철수시켜 버렸다.

“포대장님! 물드세요.”

이성호 상병이 식수통에서 물을 떠서 내밀었다. 포대장은 한 모금 마시다가 깜짝 놀라며 물을 내뿜었다.

“앗! 뜨거. 야 임마, 이게 물이야? 누가 물을 펄펄 끓여서 달라고 했어?”

식수가 불볕에 뜨거워진 것이다. 물은 너무 뜨거워서 목이 타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때 사격을 지휘하던 부관 신록 중위가 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더위에 기절한 것이다.

“전 포대, 사격 중지!”

<다음호에 계속>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