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허리가 신동협 병장에게 물었다.
“누가 그걸 알겠어. 앙케 통로가 자꾸 두절되니 그런 소문이 떠돌겠지. 어제도 미군 보급 차량이 앙케패스에서 기습을 받았대.”
“낮잠 시간에 FDC에 들렸는데 정 중사가 곧 연대작전이 있을 거래. 앙케로 가는 보급품이 자꾸만 두절되니 미군들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지. 안 그래?”
A포대는 앙케 고지 가까이 주둔하고 있었다. 특히 그들이 지원하는 보병은 앙케 통로 확보가 주된 임무였다.
오늘 아침에도 앙케로 가던 미군 보급 트럭이 23번 교량을 통과하려는 순간 기습을 받았다. 보급 수송 차량은 무장 장갑차가 캄보이를 하고 중간에는 보급품을 잔뜩 실은 대형 트럭 19대로 편성이 되어 있었다. 물론 대형 트럭 중간에는 무장한 험비가 끼여 있었다.
적은 앞에서 선도하는 캄보이 장갑차를 통과시키고, 일 번 보급 트럭을 박격포로 공격을 했다. 1번 보급 트럭에 불이 붙어 길이 막히자 후속 차량들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순간 적들은 박격포로 19대의 보급 차량을 단숨에 박살을 내 버렸다. 미군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장갑차로 파괴된 트럭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고 남은 보급 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길뿐이었다. 보급품은 씨레이션이나 군사용 장비가 대부분이다. 만약 보급 차에 포탄이나 탄약을 실었다면 캄보이 차량은 콩가루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기습을 당한 미군들은 보급 차량의 중간에 끼여 있던 8번 험비가 재빨리 불타는 트럭을 길가로 밀어붙이고 인근 한국군 보병 부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보급 차량은 겨우 5대만 살아남았다.
이 사건으로 사병들 사이에는 곧 연대 작전으로 앙케 고지의 월맹군들을 소탕할 것이라는 소문이 더욱 신빙성 있게 떠돌았다.
개미허리는 신동협 병장의 대답이 신통치 않자 화제를 바꾸었다.
“신 병장, 태권도 교육생 차출이 있다는데 정말이야?”
“누가 그래?”
“서무계 박 상병이.”
“태권도 교육생 차출이야 가끔 있지. 하지만 거기 가면 죽어.”
“알고 있어. 갈 사람이 없다면 내가 가면 안 될까?”
“쉽지 않을 걸. 작전 병력이 모자라 안달인데, 복어(포대장)가 교육 보내려고 하겠어? 복어 생각은 차출 명령을 질질 끌다가 작전만 떨어지면 전선으로 도망치자는 것일걸.”
“니가 힘 좀 써봐. 나 거기 보내 줘.”
신동협 병장은 개미허리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그곳에 자원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12호 사단 작전이 끝이 나자 상부에서는 각 예하 부대에 태권도 교육생을 차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목은 사단 태권도 교육관에서 예하 부대 교관 양성을 위해 훈련생을 차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하 부대 병사들은 태권도 교육에 차출되는 것보다는 정글 속을 빡빡 기며 V. C와 싸우는 게 백 번 더 낫다고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지난 번 처음 교육생으로 차출된 병사들이 한마디로 떡이 되어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교육생 처음 차출이 있었을 때에는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포대장에게 맥주를 사다 바치며 태권도 교육생으로 차출되려고 애를 썼다.
전쟁터에서 이보다 더 좋은 특과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병사들이 정글 속을 빡빡 기며 피를 흘리는 동안 시원한 실내 도장에서 야호 하고 헛발질이나 몇 번하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태권도 교육생으로 차출되었던 병사들이 귀대해서 전하는 말을 듣고는 사단 태권도 도장의 교육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차라리 V. C와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번 A포대에서 차출되어 한 달간 사단 태권도 도장에서 교육을 받은 정찬구 병장만 해도 그랬다. 그는 태권도 공인 3단이었다.
사단 태권도 교육관에 도착한 정찬구 병장이 신고를 하자 머리를 빡빡 깍은 상병 한 놈이 아주 거만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난, 본 교육대 사범 상병 오원수다. 제군들은 피교육생이기 때문에 오늘부터 계급은 몰수하도록 하겠다. 먼저 오늘 입교한 교육생들의 기능 정도를 평가 해 보도록 하겠다. 평가 방법은 나와 대련을 뜨도록 한다. 너, 앞으로 나와!”
오원수 상병이 정찬구 병장을 지목했다. 정찬구 병장은 속으로 오원수 상병을 비웃으며 대련 자세를 취했다.
순간 오원수 상병의 오른발 뒤꿈치가 전광석화와 같이 정찬구 병장의 아구통을 돌려 버렸다. 하얀 이빨이 우박처럼 우두둑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당일 입교한 피교육생들은 모두가 오원수 상병에게 그런 식으로 당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예하 부대로 퍼져 나갔다.
그런 일들이 생긴 뒤부터 사단 교육생 차출은 V. C가 우글거리는 갈대밭에 헬기로 랜딩 하는 것보다 더 인기가 없었다. 오원수 상병이 피교육생을 그렇게 거칠게 다루는 것에 대해 무성한 소문이 나돌았다.
태권도 교육을 피서지로 생각하는 병사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단장이 직접 그렇게 지시를 했다는 둥, 무도관의 관장과 사범이 특과인 자기들 자리를 넘보는 친구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둥, 이런 저런 소문들이 아주 무성했다. 이제 사단 태권도 교육관은 병사들에게 인기가 가장 없는 곳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포대장 반복어도 오늘 아침 간부회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관, 곧 번개 작전이 있을 모양이야. 작전명령만 떨어지면 태권도 교육생 차출 같은 건 없다. 우리 애들이 대포 모가지를 끌고 정글 속을 기는데 어느 개 아들놈이 태권도 하라고 하겠어? 슬슬 눈치나 살피다가 명령만 떨어지면 잽싸게 내 빼자고. 부관, 애들에게 보따리부터 먼저 싸라고 해.”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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