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포대 전방에는 해발 600m의 녹이라고 부르는 산이 있었다. 밀림으로 뒤덮인 산의 중심부에는 절벽과 함께 톡 튀어나온 흰 바위가 있었다. 병사들은 흰 바위를 돼지코 라고 부르며 내기 시합 때마다 사격의 표적으로 삼았다. 한번 작전에 참가할 때마다 포수들은 수천 발의 포탄을 소모하기 때문에 사격에는 도사들이다.
그러나 작전 시에는 관측 장비가 없이 눈대중으로 대충 사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목측으로 표적을 명중시키는 일은 돌팔매로 날아가는 제비 불알을 명중시키는 일보다 더 어려웠다.
따라서 포수들은 손바닥만 한, 돼지코 바위를 명중시키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조금 전에 탱고 도영남 상병이 바로 돼지코를 조금 비켜난 곳에 포탄을 명중시킨 것이다.
포대장은 포대원들 중에서 사수들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했다. 사수들의 능력에 따라 명중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수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도영남 상병이 표적 가까이에 포탄을 때린 것이다. 포대장이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쌍안경을 보며 심사를 하고 있던 장교들과 포반장들은 지금까지 세 번 사격한 중에서 방금 사격한 2포 성적이 가장 우수하다고 판정을 내렸다.
“야아 5포! 5포, 준비됐냐?”
부관 신록 중위가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며 물었다.
“5포 잘해, 니들 못 때리면 오늘밤에 좆뺑이 칠 줄 알아.”
심사를 하고 있던 5포 반장 장호동 중사가 몸이 달아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소리를 질렀다. 떠들썩하던 포대는 순식간에 숨소리 한 점 없이 조용해졌다.
포대의 장병들은 쌍안경이나 혹은 포대경으로 흰 바위 돼지코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5포 사수 올빼미가 잔뜩 긴장하여 포대경에 눈을 대고 한 손으로 방아쇠 끈을 잡고 섰다.
발가벗은 맨발에 누런 팬티만 걸친 올빼미는 너무 긴장하여 다리를 발발 떨며 포대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무줄이 축 늘어진 누런 팬티는 허리춤에서 흘러내려 엉덩이에 걸렸고 그 아래로 시커먼 체모와 함께 귀중한 물건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드디어 방아쇠의 줄이 팽팽하게 잡아 당겨졌다.
“준비이 쏴!”
꽝.
“와앗” 소리와 함께 올빼미가 개구리처럼 팔짝 뛰어 올랐다. 그는 팬티가 벗어지는 것도 모른 채 노루처럼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저런 정통이잖아?”
3포 반장 박 중사가 신음 소리를 토하며 중얼거렸다.
“아아! 올빼미가 최고다.”
장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5포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올빼미를 들어 하늘 높이 헹가래를 쳤다.
“야, 니들 이의 없지? 이건 올빼미 거다 알것제?”
포대장 반복어가 지휘대로 껑충 뛰어 오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에스레이션에서 나온 하나뿐인 금딱지 시계가 들려 있었다. 포대장은 올빼미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고는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올빼미는 월남에 온 이래 최고의 기분이었다.
“어이 P X 허 병장, 내 앞으로 달고 맥주 다섯 박스만 주라.”
올빼미는 기분이 좋아 모처럼 호기를 부렸다.
파월 이래로 A포대는 작전이 끝날 때마다 관례에 따라 흰 바위 돼지코를 향해 사격 시합을 벌려 왔다. 그런데 수많은 사수들이 명중을 시키지 못한 돼지코를 올빼미 강동화 병장이 단 한 방에 때려 버린 것이다. 병사들 사이에는 또 하나의 전설이 생겼다.
장병들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혜에숙아 내동생아
몸 성히 자알 있느냐.
(지가지가 장장 깨깽깨깽)
여기는 씰록 쌜록 개공칠
배불뚝이 포대 다아
(지가지가 장장 깨깽깨깽)”
장병들은 장단에 맞춰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SIG(통신반) 벙커 지붕 위에 혼자서 우두커니 쪼그리고 앉아 눈알만 멀뚱거리는 병사가 있었다. 그는 개미허리였다. 개미허리는 정글복을 단정히 차려 입고 무릎을 가지런히 한 채, 두 손으로 턱을 괸 모습으로 잔치 마당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마 김 하사 아이가? 오라 캐라, 같이 한 잔 묵자 캐라.”
6포 오정태 하사가 말했다.
“치워라, 임마! 재수 없다. 전마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술맛 없다.”
3포 임병욱 하사가 고함을 빽 질렀다.
“저 새끼는 와 저래 다 디져가는 인상이고?”
“지 혼자서 문디이 버들강아지 따 묵고 배 앓는 소리만 해 싸니 누가 알끼 뭐고?”
A 포대로 원대 복귀한 개미허리는 무척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쩐지 포대 분위기가 옛날 같지 않았다. 지난번 작전 때부터 무척 친했던 전상용 하사는 귀국하고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벙커 속에서 싸움을 벌였던 손무삼 하사도 귀국하고 없었다.
A 포대는 그 동안 무척 변해 있었다, 어쩐지 남의 집처럼 눈치가 보이고 불편했다. SIG 벙커 안에서도 개미허리가 들어서면 병사들은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다가도 시침을 뚝 떼고 모른 채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오늘 아침 일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렸더니 취사반의 오중태 하사가 물었다.
“어이, 김 하사, 고것이 참말이랑가? 이리 좀 와 보더라고 으잉. 김 하사가 킬러밸리에서 쫄다구 둘을 미끼로 주고 혼자서만 달랑 살아나왔다고 야단들이여. 참말로 요상한 야그지 안 그래? 근데 고게 무슨 야그여?”
취사반 오중태 하사가 소문 듣기로는 개미허리가 킬러밸리에서 졸병 두 명을 월맹군에게 미끼로 던져 주고 혼자서만 비겁하게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소문은 더욱 그럴 듯하게 꼬리를 물어 연대 정보 장교가 직접 개미허리를 심문하여 내용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부대 안에서는 개미허리의 그런 비겁한 행동이 곧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개미허리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의 소속 부대 알파는 더 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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