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믿어도 됩니다. 맹세코 확실…….”
“누가 그런 소설 같은 이야기를 믿겠나?”
“전부 사실이라니까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걸 증명 할 수 있겠나? 적의 정예 연대가 귀관들 세 사람의 공격으로 괴멸 당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나? 그로 인해 중부 월남 지구의 금년도 우기 대공세가 중지될 것이라는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나? 귀관 같으면 그런 말을 믿겠어?”
우 소령의 말을 듣고 있던 김이수 하사는 연병장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악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한 뭉치의 달러와 구리로 만든 실반지와 산부라 의치 한 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죽음의 계곡에서 씨레이션 담뱃갑으로 내기를 하던 이야기를 했다. 그 일들은 김 하사의 머릿속에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 돈은 자네가 풋갓에서 딴 거군. 우리도 자네 소문을 들었네. 대단한 활약을 했더군. 처음에는 풋갓에서 보내 온 자네 진술서를 읽고 우리 모두는 배꼽이 빠지라고 웃었네. 사실이 아니라도 얼마나 통쾌한가? 일부 사람들은 귀관이 오면 곧 바로 사단 병원으로 후송시켜야 한다더군. 귀관도 우리 입장을 이해하겠지?”
우 소령은 의치와 실반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귀관은 이걸 증거로 제시하겠지?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네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입증자료가 될 수 없지, 안 그래? 이건 기념품이야. 자네에게 소중한…….”
김이수 하사는 우 소령이 넘겨준 의치와 실반지를 군용 손수건에 소중하게 싸서 상의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뭉치의 달러를 우 소령에게 내밀었다.
“송금 좀 부탁드립니다, 소령님”
“주소는 임상병과 병 일병의 집이겠지? 귀국해서 자네가 직접 전해 주지 그래”
“의치와 실반지는 제가 직접 전할 겁니다. 그러나 돈은…….”
“좋아, 돈은 내가 책임지고 송금하지. 잘 가게 김 하사! 아참, 자넨 원 소속 알파로 특명이 나 있네. 그 동안 자넨 실종자로 처리됐어. 알파에서 귀관을 인수 하로 올 거야”
“고맙습니다. 소령님, 맹호”
김이수 하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담담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그가 막 도어 문의 손잡이를 열고 나오는데
“김 하사, 자네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야. 누가 무슨 말을 하드라도 나는 인정하네”
우영진 소령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이수 하사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6중대 상병 박대을 화랑무공 훈장, 앞으로! 상기 인은 제 18재대로 파월 된 이래 투철한 군인 정신과 사명감으로 사단 A호 작전에서 적 사살 4명, 칼빈 3정을 노획……. 이에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함”
군악대의 흥겨운 나팔 소리와 전우들의 박수를 받으며 얼굴이 새카맣게 탄 병사가 힘찬 목소리로 사단장님께 거수경례를 했다. 그리고 황송하게도 악수까지 했다.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는 정보과 앞에 서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저 아래 연병장에서 벌어지는 흥겨운 잔치를 남의 일처럼 구경하고 있었다.
“8중대 병장 이태원, 상병 민문기 앞으로!”
또 다시 훈장을 받기 위해 장병들이 사열대 앞으로 뛰어 나갔다. 악대가 신나는 노들강변을 연주하고 있었다.
연병장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던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가 혼자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7중대 상병 임태호, 일병 변을수 앞으로! 상기 인은 17제대로 파월 된 이래 투철한 사명감과 용감한 군인 정신으로 맹호 A호 작전 중, 킬러밸리 에서 적 2개 연대를 섬멸하여 중부 월남을 적의 우기 대공세로부터 방어하였기에 이에 훈장을 수여함”
군악대가 햇볕에 반짝이는 거대한 나팔로 흥겨운 아리랑을 연주하고 사단장은 두 사람의 가슴에 반짝이는 큰 훈장을 달아 주었다. 연병장에 서 있던 수많은 병사들이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는 나무 그늘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의 옛 전우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맹호”
고참병(古參兵)
군대에서 오래 근무하여 현지의 사정을 잘 아는 병사
“저 혹시 하사님이 김이수 하사님이 아닌 감유?”
옆에서 누군가 군복의 소맷자락을 자꾸만 잡아 당겼다. 김이수 하사는 경례를 중지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새카만 일등병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사님은 파월 신병이지 유?”
부대 급수차 운전병인 박찬우 일병이 말했다.
“그렇게 보여?”
김이수 하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글 복이 A급 인데유, 탈색 안 된 걸 보면 알 아유”
“군복 때문에 그렇게 보였군. 흐흐흐”
김이수 하사는 풋갓 비행장에서 얻어 입은 A급 정글 복을 내려다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아니 어유?”
“아냐 맞아, 조금 전에 왔어”
“거 봐요 맞지유, 월남 온지 한 이십 일 지나니 깨 저절로 알게 되는구먼 유”
박찬우 일병은 신이 나서 말했다.
“고향이 어딘가? 충청도 말씬데”
“맞아유 음성이 어유, 충북 음성”
“입대 전에는 뭘 했나? 운전을 아주 잘하는데”
“청주서 택시 몰았시유”
<다음호에 계속>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