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안 피웁니다, 소령님.”
“담배도 고국의 담배가 최고야. 맛이 아주 좋은데. 한 대 피워보지 그래. 집이 대군가?”
“예, 대한방직 후문 부근입니다.”
“난 영천일세.”
“반갑습니다. 소령님.”
“풋갓 비행장에서 보내 온 자네 진술서는 잘 읽었네. 특이한 체험을 했더군. 정말 믿을 수가 없었네. 소설 같은 이야기지, 안 그런가?”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빙빙 돌아가자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이 바람에 날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 소령은 신탄진 담뱃갑으로 서류철을 눌려 놓았다. 그리고는 풋갓 비행장에서 보내 온 김이수 하사의 진술서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겨우 아침 9시가 지난 시간인데 벌써 등 뒤에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푹푹 찌려는지?
“또 이건 뭐냐? 응, 이게 그건가?”
우영진 소령이 진술서를 읽은 동안에도 천장에 달린 선풍기는 달달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 창 밖에서는 고성능 마이크 소리가 연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야 임마! 악대 소리가 뭐 그래? 나팔이 더위에 녹았냐. 다시!”
인사 장교가 고함을 빽 지르자 군악대는 다시
“짠짜 - 자-안 - 짜안.” 하고 팡파르를 울렸다.
“세워-이 - 총!”
“그래, 바로 고기다. 더운데 딱 한 번만 더해 보자. 내가 사단장님이라 카고 요래 나오신다. 요번에는 진짜로 한다. 알 것 제? 야아 악대, 니들 나팔 더듬하이 불며 행사 끝나고 직이뿐다 알 것 제? 자아, 사단장님이 요래 나오신다.”
“받들 어이- 총!”
하고 구령을 부르자 넓은 연병장은 마이크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받들어-이 -총. “ 하고 되받아 쳤다.
“맹호!”
“짠짜-자-안 -짠.”
“좋아, 인제 뭐가 좀 지대로 되는 거 같다. 제자리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편히 쉬어.”
개미허리가 창밖에 눈을 주었다. 인사 장교가 급하게 연단을 내려갔다. 행사를 위해 연병장에 서 있던 병사들의 등은 금방 흥건히 땀이 배어 나왔다. 연대는 이제 사단 작전이 끝이 나고 연병장에 모두 집결을 했다.
병사들은 곰처럼 둔탁한 방탄복을 모두 벗고 A급의 정글 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들의 어깨에는 맹호 마크가 선명하게 빛이 났다.
그리고 검게 탄 얼굴에는 흥겨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사단 작전이 모두 종결된 지금, 병사들은 훈장과 부대 표창을 받고 사단장님이 특별히 하사하신 에스레이션을 가지고 쏭카우 해변으로 휴양을 갈 것이다. 그리고 퀴논의 문둥이 촌으로 관광도 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번 작전에 참가한 전우들 중에는 전사한 사람도 있고 부상당한 병사들도 있지만, 오늘 하루는 모든 것을 잊고 마음껏 즐기자. 오늘 밤 8시에는 인기 가수 김세레나가 나오는 특별 쇼도 한다고 했다. 전쟁터야 항상 그런 것이 아니겠나? 한편을 비참하게 총에 맞아 죽고 다른 한 편은 전쟁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전쟁은 언제나 극과 극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쟁터에서 하나님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전투 중에 병사들은 하나님이 그의 편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누구 편도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어떻게 킬러밸리로 들어갔나? 거긴 작전구역 밖인데.”
진술서를 읽고 있던 우 소령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설명하려면 무척 깁니다.”
김이수 하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대답했다.
“괜찮아 말해 보게.”
“7중대는 킬러밸리 남쪽 3km 지점을 수색 도중, 첨병이 적의 부비 트랩에 걸려 습니다. 중대는 약이 올라 킬러베리 입구에서 매복으로 VC를 치고 오뚝이(헬기)로 뜰 생각이었습니다.”
“그곳이 작전 구역 밖이라는 것도 몰랐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이 올라…….”
“7중대가 매복에 실패한 부분은 이미 조사된 사항이야. 어떻게 킬러밸리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걸 말해 보라고, 요점만 간단히. 진술서에는 킬러밸리를 통과하여 저쪽 친구들 수색대에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소리지, 안 그래?”
“중대는 작전 삼일 째, 킬러밸리 입구에서 매복을 섰지요. 매복 위치도 좋고 은폐물도 많고 해서 아주 이상적인 위치였지요. 그런데 23시경에 행방불명이 된 정우병 상병이 살려 달라는 비명을 질렀어요. “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누가?”
“낮에 중대 첨병으로 수색을 나간 분대가 부비 트랩에 걸려 흑곰은 죽고 정 상병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결국 사건도 그래서 벌어 진 거지만.”
“그럼 그 친구가 적의 포로가 되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정 상병이 밤새도록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 바람에 중대는 야마가 올라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새벽 한 시경에 약 2개 대대의 월맹 정규군이 공격을 해 왔습니다.”
“월맹군이, V. C가 아니고?”
“분명히 정규군 이였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 어떻게 2개 대대의 정규군이 우리 첩보망에 걸리지도 않고 그렇게 은밀하게 숨어 있을 수가 있었겠나? 잘못 봤겠지, 안 그래?”
“이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정말 정규군이었요 중대는 야마가 올라 녀석들을 한방에 골로 보내려 했지요. 그런데 저쪽은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우릴 공격했습니다. 대포 공격도 받았습지요.”
“뭐야? 박격포 탄이었겠지.”
“중공 제 곡사포였습니다.”
“자네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골라서 하는군. 어떻게 그들이 포를 가지고 있었겠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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