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다음에 출전한 58 공병대의 존슨이 다섯 개, 14병기 대대의 키다리 중사 맥스가 6개의 단검을 명중시켰다. 풋갓 비행단의 루이스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장병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등장을 했다.
루이스는 머리를 짧게 깎고 키가 멀대 같이 큰 흑인 병사였다. 그는 입대 전에 메이저리그의 트리플 더블 소속의 야구 선수로 포지션이 투수였다고 했다. 그는 투수답게 신중한 자세로 하나씩 던졌다. 그의 솜씨는 초인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는 4개까지는 오버로 던져 정확히 표적에 명중시켰다. 다섯 번째는 사이드로 던져 명중, 6번째 실패, 7번째 명중, 8번째 9번째는 실패였다. 그때마다 관중석에서 함성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흐르며 러닝셔츠가 흠뻑 젖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패기에 차 있었던 그의 얼굴은 계속되는 긴장과 집중력으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것은 거금이 걸린 도박판이었다.
마지막 열 번째 단검이 표적 깊숙이 명중을 했다. 그는 10개의 단검 중 7개를 명중시켜 지금까지 출전한 선수 중에는 가장 명중률이 높은 선수가 되었다.
사병 휴게실은 흥분된 장병들의 고함 소리와 함성으로 떠나 갈 것만 같았다. 병사들은 몹시 흥분하여 괴성을 지르며 캔 맥주를 샴페인처럼 흔들어 터뜨렸다. 하얀 거품이 분수처럼 천장까지 튀어 올랐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선 위에 올라선 사람은 타이거부대의 병사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닌 이상 야구 투수 출신 루이스의 솜씨는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단검을 잘 던지는 사람도 이렇게 먼 거리에서 7개를 명중시킨다는 것은 날아가는 파리 눈알을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개미허리의 얼굴은 아직도 병색이 완연하고 핼쑥하게 여위어 있었다. 옛날처럼 다른 사람을 비웃는 듯 한 미소도 사라지고 오랜만에 사람 사는 세상에 나온 스님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그는 이 시합에 나온 것을 후회하고 두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많은 미군 장병들을 빙 둘러보는 그의 얼굴에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깟뎀 타이거, 꺼져버려.”
미군 병사들 중에서 누군가 욕설을 퍼부으며 야유를 했다. 순간 개미허리는 미군 장병들의 얼굴을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다. 냉랭한 얼굴은 미군들을 비웃는 표정이 역력했다.
개미허리는 꾸부정하던 허리를 독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그리고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의 눈동자는 살아서 시퍼런 불똥을 튀기며 무섭게 이글거렸다.
주최 측에서 단검을 건네주자 그는 지금까지 출전한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열 개의 단검을 허리에 찬 탄띠에 손잡이가 위로 가도록 하나씩 찔러 넣기 시작했다. 그는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 미군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단검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탄띠에 찔러 넣었다.
구경하는 병사들은 저 친구가 도대체 뭘 하려고 저러나 하고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았다. 아마도 탄띠에서 단검을 하나씩 뽑아서 던질 모양이라고 생각을 했다.
탄띠에 단검을 모두 찔러 넣은 개미허리는 다시 한 번 빙 둘러 서 있는 미군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표정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개미허리의 얼굴에 살기가 어리며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적대감으로 가득 찼다.
그의 동그란 두 눈에는 파란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개미허리의 두 손이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허리에 닿는 순간 10개의 단검이 속사 권총의 탄알처럼 흰 섬광으로 소리 없이 튀어 나갔다.
타타타 타악.
열 개의 단검 모두가 타깃의 둥근 원 안에 명중을 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구경꾼들은 어리둥절하여 표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표적 20cm 원 속에는 열 개의 단검이 고슴도치 등처럼 나란히 꽂혀 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많은 병사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손바닥으로 탁탁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치자, 그때야 모두들 정신을 차리고 환호성을 질렀다.
“브라보 타이거!”
그들은 동양 무술의 정수를 구경한 것이었다. 그들이 장난삼아 던지는 칼 던지기 놀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 속에는 개미허리의 정신이 들어 있었다.
그 시합의 승자인 개미허리는 6,640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개미허리의 한 달 봉급은 56불 20센트였다. 갑자기 그는 큰 부자가 되었다.
풋갓 비행장에서 개미허리는 졸지에 명사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VIP 대접을 톡톡히 받았었다. 동시에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특히 베이커와의 우정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뒤 풋갓 비행장의 미군 병사들은, 그날 맹호 부대의 한 병사가 보인 칼 던지기 솜씨에 대해 오랫동안 화젯거리로 삼았다. 많은 병사들이 보태고 더한 이야기는 전설 속에 신화가 되어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있었다.
개미허리는 다음날 아침 9시 기갑 연대로 떠나는 헬기편에 실려 맹호부대로 귀환했다.
훈장 없는 영웅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그들이 죽어야 할 이유를 한 가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야 할 이유는 천 가지를 알고 있다.
우기로 접어들었으나 월맹군의 공세는 어쩐 일인지 중지되었다. 병사들은 계속 쏟아지는 폭우로 외곽 초소에서 근무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고국에서 맹호 부대로 발송되어 온 조선일보에는 일면에 폭설이 내린 사진과 함께 ‘10년만의 큰 폭설로 곳곳이 교통 두절’이라는 톱기사를 내세우고 있었다. 사진은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어 완전히 고립된 대관령 부근의 민가에 헬기로 식량을 공수하는 장면이 실려 있었다.
“담배 피우겠나?”
정보과장 우영진 소령이 김이수 하사에게 신탄진 한 개비를 내밀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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