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긴 내가 왜 죽어? 막내 정수까지 어미가 강물에 빠져 죽는다고 해도 두 눈을 멀뚱거리며 구경만 하는데 내가 왜 죽어?’
도곡댁은 그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돌려 벗어 놓은 고무신을 발에 꿰어 신었다. 그러자 정수가 앞으로 나섰다.
“엄마는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해 놓고는 왜 안 뛰어 내려? 모처럼 재미있는 구경 좀 하려는데 왜 그래? 겁이 나서 그래, 빨리 뛰어내려.”
황소 같은 다섯 아들놈들이 우우 달려들어 그녀를 달랑 들어 안고는 선어대 절벽 끝으로 갔다. 절벽 끝에서 시퍼런 강물을 내려다보자 그녀는 그만 겁에 질려 황소 같은 비명을 질렀다.
“에구머니, 이놈들이 사람 죽인다. 사람 살려!”
그녀는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히히-!”
다섯 아들놈들은 엄마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자 좋다고 웃으며 엄마를 안고 절벽 끝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저희들끼리 장난을 쳤다.
도곡댁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아들놈들은 모두 장성한 놈팡이들이었다. 이까짓 선어대 절벽쯤이야 눈을 감고도 하루에 수백 번씩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설사 그녀가 벼랑 끝에서 뛰어 내린다고 해도 다섯 아들놈들은 물개처럼 저희들의 어미를 구출해 낼 것이다.
녀석들은 그들 나름대로 어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녀만이 아직도 자식들을 어린애로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뒤부터 그녀는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목을 매달아 죽는다고 공갈을 쳤으나 그 말도 자주 하기가 겁이 났다.
어느 날 태풍 사라호 때문에 선어대 제방 둑이 무너져 살고 있던 집이 떠내려 가버렸다. 농토도 유실되었다. 그녀는 망나니 같은 다섯 아들을 데리고 대구시 칠성동 대한 방직 후문 앞에 월세 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다.
대구로 이사 온 첫날부터 다섯 아들은 이삿짐은 내팽개친 채 똥개처럼 온 동네를 쿵쿵거리며 냄새를 맡고 다녔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험상궂게 생긴 칠성동 개망나니들을 모두 집안으로 끄려 드렸다.
그리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술을 처먹고 저희들끼리 싸움을 벌였다.
집주인은 세를 잘못 주었구나 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시끄럽다고 불평을 했으나 험상궂은 5형제들을 보자 어느새 기가 죽어 입도 뻥끗 하는 사람이 없었다.
형제들의 어머니는 여장부였다. 아무리 험상궂은 깡패들도 그녀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순해졌다.
“쌍칼아, 저녁 밥 짓게 물 좀 떠온 나.”
“예 어머님.”
깡패도 그녀 앞에서는 얌전한 토끼로 변했다. 여장부는 남자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형제들은 마냥 불량한 짓만 하는 게 아니었다. 동네의 웃어른들을 만나면 깍듯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녀석들은 지주 집안 출신답게 어린 시절부터 행세하는 양반들의 예의범절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사정이 딱한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풀어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객지 생활을 하는 형제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어느 여름밤에 동인동 깡패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형제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형제들은 종합 운동장에서 동인동 깡패들과 집단으로 패싸움을 벌였다. 동인동 깡패들은 형제들에게 묵사발이 되었다. 그날 밤에 형제들이 싸움에서 패했더라면 그들은 다시 선어대 제방 밑의 옛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었다.
그 뒤부터 대구시 일원에서는 막내 정수까지 마뜰 형님으로 통했다. 와이 형은 칠성동 굴다리 부근에 태권도 도장을 열었다. 그리고 주먹 세계에서는 은퇴를 했다.
그러나 둘째 김이수는 달랐다. 그는 천성이 호랑이처럼 대담하고 여우처럼 교활하고 늑대처럼 겁이 없었다. 그리고 사소한 물욕을 탐내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대구의 주먹 세계를 통일하는 대부가 되어 있었다. 그는 막강한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개미허리는 김이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멀리서 병사들의 야유와 함성이 질펀하게 들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 사는 사회로 온 것만 같았다.
개미허리는 지난 닷새 동안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어제 겨우 의식을 회복하고 이곳 정보 장교에게 간단한 심문을 받았었다.
경비대 정보과는 즉시 맹호 사단에 개미허리의 인적 사항을 조회하였고 그의 신원은 바로 밝혀졌다. 그는 내일 기갑연대로 떠나는 헬기편으로 후송될 것이었다.
지난 닷새 동안 개미허리는 완전히 죽은 사람이었다. 이곳 병원의 뛰어난 의술이 아니었다면 그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군의관들이 포기하고 산소마스크를 제거할 때마다 그의 복부는 불룩하게 솟아오르며 호흡을 시작했다. 그가 겨우 의식을 회복하자 경비대 막사로 옮겨졌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중환자 상태였다.
얼굴은 그 간의 고생과 중병으로 핼쑥하게 야위었고 차갑게 남을 비웃는 듯 한 미소도 이젠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날씬하고 유연하던 몸매는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메말랐고 움푹 팬 두 볼은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눈은 황소의 눈깔처럼 흐릿하고 초점이 맞지 않아 촌놈처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이따금 눈가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곳 병원의 군의관들도 동양 병사의 끈질긴 생명력과 불가사의한 정신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개미허리는 의식이 돌아오자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을 했다. 그는 왕성한 식욕으로 밥을 먹고는 눈 속의 살쾡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계속해서 잠만 잤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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