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 5형제는 하나같이 모두 미남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와이는 정말 잘생긴 학생이었다. 그는 쌍꺼풀이 진 둥근 눈과 여자처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나 싸움판에서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담한 용기와 투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와이는 느닷없이 법흥교를 지나가는 학생들의 통행세를 받겠다고 나섰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불우 학생들의 공납금을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법흥교를 가로막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통행세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그 사실을 알고 와이를 족쳤지만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본교 학생들은 통행세를 제외시키겠다고 말했다. 이튿날부터 본교 학생들은 통행세가 제외되었다.
그는 당시 주먹 세계의 보스였다. 그의 보스다운 기질은 언제나 공정하고 사내다웠다. 그래서 그는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여학생을 한번 쳐다보면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여학생들이 없었다.
다섯 형제는 도곡댁이 뼈 빠지게 일을 해서 공부를 시켰지만 언제나 공부는 건성으로 하고 운동을 좋아했다. 형제들은 저녁을 먹고 낙동강의 넓은 백사장에 나가 운동을 했다. 역기도 들고 평행봉도 하며 태권도와 권투도 했다. 추운 겨울철에 살을 에는 북서풍이 불어오는 날에도 웃통을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했고 더운 여름철에도 그들은 체력 단련을 했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마뜰의 넓은 들판의 참외밭과 수박밭에서 먹고 싶은 대로 과일을 따다 먹었다.
언젠가 한번 그들 형제들이 수박밭에 서리를 갔다. 그들이 수박밭을 휘젓고 다닐 때였다.
“거기 누고? 이놈들아, 그 자리에 서지 못할꼬?”
주인 영감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원두막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원두막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런 장난을 할 사람들은 오직 도곡댁 망나니들뿐이었다. 주인 영감은 오히려 사정을 했다.
“니 와이 맞제? 제발 곱게 따가 거래이. 먹을 만큼만 따 가래이. 수박 순은 밟지 말고.”
잘못 그들의 비위를 거슬러 놓았다가는 금년 농사는 폐농하기가 십상이었다. 가만히 두었다가 내일 아침 일찍이 도곡댁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면 후하게 수박 값을 쳐 줄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자식들이 한 일을 사과하며 정확하게 계산을 해서 갚았다.
농사철에 과로로 도곡댁이 몸져눕자 와이가 어디서 예쁜 여학생을 데리고 와서 식구들의 밥을 짓게 하여 먹었다.
물론 여학생은 도곡댁이 딸처럼 데리고 잤다. 3일 만에 여학생이 읍내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그 다음에는 김이수가 여학생을 데리고 왔다.
도곡댁이 몸져누워 있는 동안 다섯 형제는 모두 여학생을 데려다 밥을 해 먹었다. 집에 데리고 온 여학생들은 모두 양가집의 규수들로 안동 읍내에서는 내로라하는 가문의 자녀들이었다.
도곡댁은 그게 무척 신기했다. 망할 놈의 개망나니들이 무슨 재주로 저렇게 남의 귀한 집의 딸들을 후려 오는 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도곡댁은 자기 속으로 내놓은 자식들이지만 무척 자랑스럽고 든든했다.
어느 날 팔월 염천의 무더위 속에서 하루 내내 땅콩 밭의 김을 매다가 귀가한 도곡댁은 늦은 저녁밥을 짓다가 문뜩 신세를 비관했다.
나이 서른에 홀로 되어 개망나니 같은 아들만 다섯, 그 중에 예쁜 딸 하나만 낳아도 이런 고생은 없었을 걸. 망할 년의 팔자야 더럽고도 더럽다. 이런 날은 딸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도둑놈 같은 아들만 다섯 명 이었다. 놈들 중 어느 하나도 저녁밥을 짓는 녀석은 없었다. 그녀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 다섯을 불러 마루에 앉히고 목 메인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내 팔자가 이 모양이니 더 이상 고생해 봐야 무슨 낙이 있겠느냐? 선어대 물에 빠져 죽기로 작정했으니 말리지 마라.”
그렇게 선언을 한 도곡댁은 저녁 어둠이 끼는 강둑을 따라 선어대로 걸어갔다. 그녀가 길을 나서자 아들들이 우르르 따라 나섰다.
‘예이 요놈들! 니들 오늘 욕 좀 봐라. 내가 맨 날 너희들에게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나?’
그녀는 아주 비감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면 낙동강 제방을 걸어갔다.
“왜 따라 오냐? 그만 들어가거라.”
도곡댁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무척 고소했다.
‘요놈의 자식들아. 어디 혼 좀 나 봐라. 내가 아니면 누가 니들 저녁밥을 챙겨 먹이겠냐.’
아들들이 계속 따라 나오자 도곡댁이 다시 말했다.
“그만 들어가래도.”
그녀는 속으로 쾌차를 부르면 다시 한 번 초를 쳤다. 그런데 막내가 하는 말이 “괜찮아, 엄마! 어서 가 봐. 물에 빠져 죽는 것도 구경이잖아. 난 한 번도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걸 못 봤단 말이야.”
이게 가장 믿었던 막내 정수 놈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막내 정수만은 울며불며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늘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내 너마져…….도곡댁은 아주 실망을 했다.
녀석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 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질만 했다. 그녀는 더욱 기가 차고 약이 올랐다.
선어대 절벽 위에 올라간 도곡댁은 신고 있던 검정 고무신을 나란히 벗어 놓고 벼랑 끝으로 걸어 나갔다.
‘이젠 나를 붙잡겠지. 그리고 울면서 나를 말리겠지. 다른 놈은 몰라도 막내는 인정이 아주 많은 아이니 나를 붙잡고 늘어질 거야.’
그런데도 다섯 놈들은 빙글빙글 웃으며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절벽 끝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시퍼런 강물을 보자 그녀는 와락 겁이 났다. 그리고 기가 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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