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74회
킬러 밸리 제74회
  •  기자
  • 입력 2009-08-05 10:52
  • 승인 2009.08.05 10:52
  • 호수 797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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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에 접어든 지금은 내륙의 폭우로 많은 흙탕물이 바다로 유입되고 있었다.

덴 분대장이 가리키는 모래톱에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분대는 재빨리 사주 경계를 하고 월터 일병을 첨병으로 내보냈다. 모래톱으로 접근한 월터는 수신호로 그것은 사람인데 V. C나 월맹군 병사의 시체로 보인다고 전해왔다.

분대는 산개 하여 곧 그 시신에 접근을 시작했다. 시체는 형편없이 찢어져 걸레가 된 군복을 입고 있었다. 시체는 얼굴 윤곽이 뚜렷한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다. 특히 허리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깡마른 사내로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빈틈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 가에는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하반신은 해변의 모래톱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모래 속에서 삐쭉이 내밀고 있는 정글화는 심하게 불에 그슬려 있었다. 월터 일병이 빠른 손놀림으로 시체의 허리띠에 인계 철선을 묶었다. 그는 시체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서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철선을 끌고 30m 후방에 있는 모래 언덕 뒤에 숨었다. 그리고 줄을 힘껏 잡아 당겼다.

시체는 모래톱을 빠져 나와 한 바퀴 때그르르 구르고는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누웠다. 분대는 그제야 안심하고 시체의 주변을 에워쌌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V. C나 월맹군들은 시체의 등 뒤에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숨겨 놓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모르는 병사들은 시체를 수색한답시고 시체를 함부로 다루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수류탄은 꽝 하고 터져 버렸다.

이제 수색대는 그렇게 흔한 수법에는 걸려들지 않았다. 그들도 처음에는 적이 만든 부비트랩에 걸려 많은 병사들이 죽은 경험이 있었다.

“앗! 시체가 살아 있다.”

몸을 수색하던 월터 일병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껑충 물러났다. 분대는 깜짝 놀라 재빨리 시체를 에워싸고 총구를 겨누었다.

위생병 베이커가 시체의 맥박을 짚어 보고 재빨리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그는 살아 있었다. 바로 개미허리였다. 수색대는 서둘러 부대로 귀대를 시작했다.

“빨리 던져라 월터.”

베이커 상병이 재촉하자 월터 일병은 M16 소총의 대검을 힘껏 던졌다. 그러나 대검은 벙커의 출입문에 표시된 둥근 원 안에 꽂히지 않고 튕겨 나와 버렸다.

“오오!”

그는 실망에 겨워 신음 소리를 토했다.

수색대의 지하 벙커는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가득 차 있었다. 월터는 지하 벙커의 뒷문에 둥근 표적의 원을 그려 놓고 단검 던지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오늘 오후에는 풋갓 비행장에서 단검 던지기 시합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58 공병대의 존슨, 14병기 대대의 카우보이 출신의 맥스, 풋갓 비행장의 월터 등은 칼 던지기 시합의 명수들이었다.

우기에 접어든 지금, 매일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갇혀 지내는 병사들에게는 단검 던지기 시합은 가장 큰 축제였다. 그 시합은 보이스 무전기로 인근 부대에도 중계할 예정이었다. 그 시합은 마치 본국에서 미식축구 경기가 방송으로 중계되는 것처럼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 금년에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월맹군들의 우기 공세가 없었다. 따라서 병사들은 어두컴컴한 지하 벙커 속에 갇혀 지루한 장마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오늘 오후에 풋갓 비행장에서 단검 던지기 시합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나돌자 계속되는 장마 비의 무료함에 지친 많은 병사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보태지고 과장되어 중부 월남 전 지역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중부 월남 지구 파월 미군 장병 단검 던지기 시합은 부수적으로 대규모 도박으로 이어졌다. 마치 경마에 돈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번 시합의 공식적인 프로모터는 P. X의 먼데이 병장이었다.

58 공병대의 존슨과 14병기 대대의 맥스는 이미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었다.

앙케에 주둔하고 있는 2사단의 흑인 챔피언 로저가 이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풋갓 비행장으로 오고 있다는 보이스가 날아들었다. 2사단의 로저와 전차 대대의 폴이 도착하면 바로 시합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풋갓 비행장의 영웅 월터 일병은 이 시합에 대비하여 지하 벙커에서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탁, 타닥.

나무판자에 무엇인가 부딪치는 듯 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물건을 던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따금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응원하는 소리도 들려 왔다. 그것은 운동회 날 마을 대항 400m 경주를 시작할 때 구경꾼들이 지르는 함성과도 같았다.

얏, 타닥!

또다시 함성이 울리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개미허리는 그 소리가 무엇인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개미허리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비몽사몽 중에 옛날로 돌아갔다.

김이수는 안동군 일직면에서 누대로 내려오는 대지주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변 때 피살당하자 어머니인 도곡댁이 아들 다섯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해 안동 마뜰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집은 선어대 제방 밑에 있는 허허벌판에 우두커니 볼품없이 서 있었다. 겨울철이며 선어대 강둑으로 살을 에는 북서풍이 불어왔다. 그러나 여름철이면 들판 가득히 풍성한 수박과 참외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형제들은 야생마처럼 넓은 들판을 마음껏 뛰놀며 자유롭게 살았다. 도곡댁은 체격은 작았으나 머리가 아주 비상하고 강인한 성격을 가진 여걸이었다.

사람들은 김이수의 형을 ‘와이’라고 불렀다. 알파벳의 Y가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왕’이 ‘와이’로 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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