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맹군의 우기 공세는 적이 암호명 ‘밤의 장군’ 이라는 지휘관을 내세워 교묘하게 흘린 역정보라는 설이 G2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킬러밸리에서 생긴 일들을 말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로 그해 중부 월남은 보기 드물게 최고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주월 미공군 사령부의 대변인 월렌 중령은 프레스 센터 기자 회견장에 표창을 한 개 들고 들어섰다. 월렌 중령은 기자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다음 회견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금년도 월맹군의 우기 공세는 중지되었다. 우리는 적들이 공세를 중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자 AP통신의 해리슨 기자가 질문을 했다.
“그 증거를 공개할 수가 있는가?”
월렌 중령은 B52 편대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공개한 후 그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 사진은 작전명 ‘버진’을 수행하던 B52 편대가 찍은 것이다. 이 사진에 의하면 킬러밸리에는 금년도 중부 월남 지구의 우기 공세를 위해 2개 연대 이상의 월맹 정규군들이 집결해 있었다. 그러나 본 작전으로 적의 연대는 괴멸 당했고 공격 능력은 상실되었다고 추측된다. 따라서 적의 추가 공세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적의 지휘관은 월맹군 소장파 군부의 핵심 인물인 누엔 반 치로 밝혀졌다. 그의 암호명은 ‘밤의 장군’이다. 수색대의 보고에 의하면 그는 지하 30m의 동굴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가부좌를 한 상태로 죽어 있었다. 그의 상체는 깨끗했으나 하체의 일부는 불에 그슬려 있었다. 사망 원인은 동굴 내부로 스며든 기름의 인화로 추정된다. 그곳에서 다수의 극비 문서가 노획되어 자료를 분석 중이다.”
다른 기자가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UPI의 스미스 기자다. 버진 작전으로 아군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가?”
“아군은 해군 소속의 함재기 두 대가 추락했고 조종사 한 명은 전사했다.”
“그럼, 조종사 한 명은 구조가 되었다는 말인가? 소문에는 전사자가 두 명이라고 하던데…”
“한 명은 실종으로 수색 중이다.”
“함재기의 추락은 적의 샘 미사일의 공격에 의한 것이었나?”
“아니다. A10 정찰기 한 대는 하노이 상공에서 샘 미사일에 피격 당해 바다에 추락했고 전투기 한 대는 귀함 중 기체 고장으로 풋갓 비행장에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했다. 전투기 조종사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알프레드 스코트 대위다. 그에게는 해군 십자 훈장이 추서 될 것이다. 원한다면 비행 기록의 일부를 공개하겠다. 단 오프 더 레코드(보도 금지)다. 오케이?”
월렌 중령은 가지고 온 휴대용 녹음기를 틀었다. 실내는 숨소리 하나 없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편대 조종사와 함재기 조종사간 의 숨 가쁜 교신 내용이 흘러 나왔다. 녹음기가 전부 돌아가자 월렌 중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자 여러분, 방금 들으신 대로 스코트 대위는 작전 개시 25분 뒤 비상 활주로에서 랜딩 중 사망했다. 그의 모함은 포리스탈 호이며 퀴논 동북방 40마일 지점에서 작전 중이었다. 스코트 대위가 왜 착륙 중 실수를 했는지 현재 조사 중이다.”
다른 기자가 일어났다.
“ABC 방송의 길버트 기자다. 스코트 대위는 세 차례나 귀국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유족은?”
“유족으로는 주립 도서관에 사서로 근무 중인 부인 바바라와 딸 지나가 있다. 스코트 대위의 귀국이 세 차례나 연기된 것은 사실이다. 하노이가 자꾸만 그들의 귀국을 방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저 쪽보다 우리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여러분들이 기사를 잘 써 주면 고맙겠다. 그럼, 이만. 다음 브리핑은 16시 30분에 있다.”
대변인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 하자 길버트 기자가 다시 물었다.
“잠깐만, 손에 들고 있는게 뭔가? 오늘 브리핑과 관련이 있는 물건인가?”
“아, 이거 말인가? 월맹군 38연대장 치 대령이 전사한 곳에서 노획한 물건이다. 오늘 브리핑과는 관련이 없는 물건이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너무 이상해서 들고 나왔을 뿐이다.”
월렌 중령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개미허리가 자신의 생명보다 더 아끼는 물건이었다. 미제 과도를 갈아서 만든 표창이었다. 그 표창이 지금 월렌 중령 손에 있는 것이다.
노염의 나루 부산 제4부두
오랜 침묵 끝에 변을수 일병의 동생 세란이가 입을 어렵게 열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했다.
“아빠가 네게 전 하랬어. 엄마는 반대를 했지만 아빠가 꼭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어. 그래야 네가 오빠를 잊을 수가 있데.”
변세란은 오랜만에 지혜를 찾아 울진에 있는 학교로 왔다. 두 사람은 지혜의 자취방으로 갔다. 그리고 마주 앉자 세란이는 을수가 월남에서 전사를 했다고 말했다. 월남에 있는 을수의 소속 중대장이 편지를 보내 와서 알았다고 했다. 편지를 받고 엄마는 기절을 했고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통곡을 하며 병이 나서 몸져누워 있다고 말했다. 세란이의 말을 들은 우지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말없이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전기 곤로와 냄비, 그리고 쌀자루와 앉은뱅이 책상, 겨울 방학을 일주일 앞 둔, 우지혜 선생은 갑자기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보여 졌다.
지혜의 얼굴이 점점 흐려졌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쓰러졌다.
“지혜야 지혜야!”
세란이가 지혜를 왈칵 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오빠는 죽지 않았어.”
지혜는 을수가 전사하지 않았다고 중얼거렸다. 변을수가 죽었다면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혜야, 편지를 좀 봐. 중대장님이 보낸 거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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