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66회
킬러 밸리 제66회
  •  기자
  • 입력 2009-06-10 10:12
  • 승인 2009.06.10 10:12
  • 호수 789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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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허리도 맛이 갔구나. 10원 짜리 구리 반지와 썩은 이빨을 걸고 노름을 해야 하다니… 좋아, 빼앗기면 두 말 없기다.”

“잠깐, 김 하사님은 뭘 걸 라요. 자기도 걸어야제.”

“이런 멍청한 자식, 아무리 전쟁 바닥이지만 쟁이는 항상 돈을 준비해야지. 자리가 좋아 월맹군들하고 한판 붙었다고 쳐봐라. 너처럼 외상 노름을 하겠어? 이건 국제적인 망신이야. 아무리 적이지만 그 애들이 얼마나 우릴 흉보겠어?”

개미허리는 상의 호주머니 속에서 군인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수첩 갈피 속에서 10달라 짜리 군표 두 장을 꺼내 놓았다.

“그럼 시작 하구마.”

임태호 상병이 레이션 봉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난 울 할배가 좋아하는 윈스톤.”

임태호 상병이 의치를 내밀며 말했다

“나는 쿨 담배.”

변을수 일병이 구리 반지를 내밀었다.

“좋아, 난 켄트다..”

개미허리는 10불 짜리 군표 두 장을 건 후 빙그레 웃으며 고동색 방수 봉지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어떤 담배가 나올 것인가?

변을수 일병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봉지 속에 든 담배 곽이 앞으로 자기 운명을 예언하여 줄 것만 같았다.

‘저 봉지 속에서 파란 색의 쿨 담배가 나온다면 무사히 이곳을 탈출 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담배가 나오지 않으면…’

변을수 일병은 알 수 없는 전율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잔뜩 긴장하여 개미허리의 손끝을 노려보았다. 병사들은 위기의 순간에 자기의 예감을 믿었다.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괜히 짜증을 부리며 신경질을 내는 병사나 지나치게 감상에 빠져드는 전우,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유별나게 하는 전우들은 이상하게 사고를 쳤다. 그것이 미신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는 자신의 예감도 생존에 대단한 중요한 요소였다.

임태호 상병도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 역시 겉으로는 너털웃음을 치며 수다를 떨고 있으나 마음속으로는 이 즐거운 노름으로 앞일을 점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개미허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 봐라, 나온다.”

개미허리가 봉지를 찢었다. 개미허리는 갈색 소금 봉지, 설탕, 사각껌, 커피 등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변을수 일병은 파란색 담배가 나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개미허리 손끝에는 하얀색 담배 곽이 매달려 있었다. 하얀 색깔은 켄트나 윈스톤의 담뱃갑이었다. 변을수 일병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곳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떴다, 봐라.”

개미허리가 화투장을 뽑아들 듯 담배 곽을 들고 내리쳤다. 그것은 눈이 부시도록 하얀 켄트 담배 곽이었다. 개미허리는 두말없이 군표와 의치, 그리고 구리 반지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임태호 상병의 얼굴도 변 일병 만큼 굳어 버렸다.

“왜들 그러냐? 어서 한 대씩 피워. 구리 반지와 썩은 이빨 한 개 잃었다고 죽는시늉하는 건 아니겠지? 귀대해서 돈 갚으면 돌려줄게.”

개미허리는 다섯 개비의 담배를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세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담배를 피웠다. 필터가 다 타도록 담배 연기를 빨아 드렸다. 전신이 노곤해지며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죽으면 이렇게 될까?

변 일병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변을수 일병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단순히 장난일 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들까?


우정의 만가(輓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는 말이 많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강풍이 조금씩 약해졌다.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먹구름이 간간이 가랑비를 뿌리며 빠른 속력으로 지나갔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틈이 생길 때는 둥근 보름달이 잠깐씩 얼굴을 내밀고는 사라졌다.

세 사람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작전 계획을 점검했다.

“CP 뒤로 연료 드럼통이 보이지? 수류탄으로 저걸 날려 버리는 거야. 휘발유 드럼통이 폭발하면 C P와 지하 벙커를 덮치겠지? 동시에 다른 한 조는 저기 보이는 탄약고를 날리는 거지. 적들은 기습에 놀라 당황할 거야. 그때 반대편 절벽 위로 기어오르자.”

“보초 교대 시간은?”

임태호 상병이 물었다.

“적의 지휘관은 여우같이 교활한 놈이야. 며칠을 두고봐도 교대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규칙적인 보초 교대는 적의 공격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야. 정말 뛰어난 지휘관이야. 부대가 훈련하는 걸 봤는데 대단하더라고. 최강의 정예부대야. 틀림없이 유명한 지휘관일 거야. 병사들은 군기가 꽉 잡혀 있어. 그들은 이곳에 숨어 우기 대공세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내 생각이 틀림없어.“

“폭우가 언제쯤 올까요?”

변을수 일병이 물었다.

“나비가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우기가 임박했다는 증거야. 자연이 사람보다 한 걸음 앞서 기상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거지. 강풍이 부는 것은 남쪽에서 태풍이 북상하고 있기 때문이야. 습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오늘밤이 시작이야. 오늘 밤, 여길 빠져나가지 못하면 끝장이야.”

변을수 일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료 저장고를 누가 공격할 거야?”

개미허리가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와, 우릴 쳐다보는 기요? 우리보고 하라꼬예?”

임태호 상병이 개미허리에게 되물었다. 개미허리는 말없이 정글 복에 떨어지는 가랑비 방울을 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빗방울이 맺혀 이마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변 일병, 우쨀래? 저장고보다는 탄약고가 안 좋겠나?”

임태호 상병이 변을수 일병에게 동의를 구했다.

임태호 상병은 탄약고 폭파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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