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65회
킬러 밸리 제 65회
  •  기자
  • 입력 2009-06-02 14:53
  • 승인 2009.06.02 14:53
  • 호수 788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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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송이는 수많은 나비 떼들의 움직임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나비들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마치 하늘에서 함박 눈송이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날개를 막 접는 놈,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놈, 그리고 날개를 휘저으며 비상하는 놈들이 어울려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비들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마치 탐스러운 함박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칡넝쿨 사이에, 나뭇잎 사이에 그리고 원시림 곳곳에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나비가 날아가는 방향은 모두 같았다.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침노을이 짙어지자 나비들은 빨간 색 장미 꽃잎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서 붉은 장미 꽃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고국에서는 어쩌다 배추밭에 날아다니는 나비 한두 마리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나비들은 마치 눈송이처럼 혹은 꽃비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들은 나비뿐이었다.

변을수 일병은 자연의 조화 앞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한한 신의 능력 앞에 하잘 것 없는 재주와 보 잘 것 없는 지혜를 가진 인간들이 사악한 무기로 자신들의 어리석은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며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신이 준 소중한 생명을 어떠한 명분으로도 빼앗을 권리는 없었다.

그것이 비록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행위일 지라도 합법적인 명분은 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생명은 신이 준 것이며 그걸 준 자만이 거두어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이로운 자연 현상은 신이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려고 경고하는 일이었다.

3일째로 접어들자 나비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대로 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었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오후에 접어들자 강풍으로 나무들의 뿌리가 뽑히고 잡목들의 가지가 부러졌다. 밀림의 수목들은 강풍에 신음 소리를 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계곡 전체가 비명 소리를 지르며 요동을 쳤다.

아직도 이동하지 못한 나비들이 강풍에 날개를 찢긴 채 어쩔 줄을 모르며 허둥대고 있었다. 강풍을 타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밀려왔다. 강의 상류 부근에는 아직도 불길이 꺼지지 않고 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은신하고 있는 동굴 속은 안방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밖은 강풍으로 울부짖는데 동굴 속은 따뜻하고 조용했다.

“오늘밤에 계곡을 건너자. 바람이 그치면 바로 폭우가 쏟아 질 거야. 일단 폭우가 시작되면 강물의 범람으로 우린 계곡을 건널 수 없어. 그땐 대머리 산으로 가는 길도 끝장이야. 그렇게 되면 우기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고립돼. 물론 그때까지 살아남지도 못하겠지만. 내 말 알겠어?”

개미허리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혼자 가소마, 난 안 갈라요. 몸도 안 좋고 여기서 더 쉴 라요. 변 일병, 니는 우쩔래?”

임태호 상병은 동굴을 떠나기 싫어했다.

“여길 뜹시다.”

변을수 일병이 임태호 상병을 달래며 말했다. 변을수 일병까지 그렇게 나오니 임태호 상병이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개미허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마지막 파티를 하자. 술이 없어 안되었지만 이걸로 대신하자.”

개미허리가 정글복 하의 주머니 속에서 고동색 방수 봉지를 끄집어냈다.

“레이션 봉지 아인교? 이기 어디서 났는교. 우선 한 대 피웁시다마.”

임태호 상병이 레이션 봉지를 보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씨레이션 한 끼 분속에는 햄이나 치킨, 빵과 비스킷이든 깡통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방수 처리가 된 봉지 속에는 담배, 껌, 휴지, 소금, 설탕, 커피, 성냥 등이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병사들이 좋아하는 물건은 담배였다. 담배는 앙증맞게 작은 종이 곽 속에 다섯 개비가 들어 있었다.

담배의 종류는 쿨, 켄트, 카멜, 윈스톤 등 있었다. 병사들은 장난삼아 봉지 속에 들어 있는 담배 알아맞히기 내기를 했다.

“김 하사님, 우리 내기 하입시더. 오래 만에 한번 붙읍시다.”

임태호 상병이 그 일을 떠올리며 내기를 하자고 졸랐다. 변 일병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뭐야, 내기를 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부랄 두 쪽 뿐인 놈하고 어떻게 내기를 해.”

개미허리는 상대도 안 하려고 했다.

“야, 변 일병, 니 돈 없나? 좀 뒤져봐라.”

임태호 상병이 변일수 일병에게 말했다. 변 일병이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외상 노름은 안 할 거야. 임태호, 너 저번에 해녀기둥서방 돈 떼어먹었지?”

개미허리가 임태호 상병을 놀렸다.

“치사하다. 요꺼정 와서 돈 이야기 할기가?”

“돈 없으면 부랄 이라도 걸어라.”

“야 변 일병, 니 뭐 좀 나왔나?”

“다 뒤져도 이거뿐인데요.”

변을수 일병은 중지에 끼고 있던 실반지를 뽑아 내밀었다. 월남으로 오기 전에 서울 운동장 앞 노점상에서 지혜가 사 준 반지였다.

“이건 10원 짜리 구리 반지 아냐? 누가 그걸 돈으로 치겠어?”

개미허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엣다, 여기 있구 마. 이거면 댔는 기요? 이래봬도 80불 짜리요, 이게.”

임태호 상병이 상의 호주머니 속에서 금이빨을 끄집어 내밀며 말했다.

“진짜 금이야?”

“대대 위생병인 문 병장을 꼬서서 80불 주고 만든 진짜 라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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