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째 된 기고? 내가 죽었나 살았나.”
그는 나무뿌리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 옆에는 변을수 일병이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개미허리가 갑자기 변을수 일병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차 버렸다. 변을수 일병이 신음 소리와 함께 꿈틀거리자 개미허리는 그의 뺨을 소리가 나도록 갈겨 버렸다. 변을수 일병이 눈을 떴다.
변 일병은 지옥 같은 급류 속에서 세 사람이 모두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두 개미허리 덕분이었다. 개미허리는 임태호 상병과 변을수 일병이 정신을 잃자 탄띠로 서로를 묶고 필사적으로 급류를 빠져 나와 이곳까지 온 것이다. 두 사람이 그 사실을 모두 알았더라면 큰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미허리는 말하지 않았다. 살았다는 것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와 이리 아프노? 야 변 일병, 내 등이 우째 된 기고? 아파 죽겠다 마, 니가 좀 봐 도고.”
임태호 상병이 돌아누우며 말했다. 화상을 입은 상처 부위가 몹시 아픈 모양이었다. 변 일병은 일어나 임태호 상병의 등허리를 살펴보았다. 넝마가 된 군복 사이로 벌겋게 달아오른 상처가 몹시 흉측스럽고 징그러웠다. 다행히도 밤새도록 물속에서 보낸 것이 상처의 화독을 다스린 것 같았다. 그의 몸은 무쇠처럼 튼튼하고 강건했다. 그렇게 심한 화상을 입고서도 밤새도록 물속에서 버틴 것은 대단한 체력이었다.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개미허리가 죽은 듯이 쓰러졌다. 개미허리는 새우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아 두 손을 사타구니 사이에 끼우고 깊이 잠들었다. 평소 당차고 빈틈이 없던 개미허리의 얼굴은 그 간의 고생으로 몹시 야위고 수척해 있었다. 임태호 상병과 변을수 일병도 그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들은 점심때가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개미허리가 먹을 것을 찾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개미허리가 3개의 야자열매를 따왔다. 그는 대검으로 야자열매의 껍질을 깨뜨렸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고는 임태호 상병의 등에 발라 주었다.
“아야, 좀 살살 하구마. 아파 죽겠소.”
“자식, 엄살은.”
“참 시원하데이. 야자수도 약이 되는 기요? 그거 참 희안하네.”
“피부가 덜 조일 걸.”
그들은 야자 열매의 하얀 속살을 꺼내 입 속에 넣었다. 그리고 우물거리며 씹었다. 바싹 마른 속살이 입 속에 달콤하게 녹아 내렸다.
오후가 되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풍은 더 거칠어졌다.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 그 곳에서 상처를 치료하자.”
개미허리는 일행을 재촉하여 길을 떠났다.
개미허리가 칡넝쿨 속에서 동굴의 입구를 찾아냈다. 동굴은 겨우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좁았다. 그러나 안으로 기어 들어가자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동굴 바닥은 사질토로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이게 웬 횡재고, 신방 같잖아.”
임태호 상병이 눈밭의 강아지처럼 기뻐 날뛰며 변을수 일병을 껴안았다. 동굴 속은 어둡고 침침했으나 입구는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었다.
“참말로 그 가스나, 사람 지기더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기라. 한탕 뜨고 나이께내 눈앞에 별이 반짝반짝하는기 미치겠더라. 변 일병, 니꺼는 어떻더노?“
임태호 생병이 드디어 제 정신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녀석은 도원경에서 잠자리를 같이 한, 콩까이 이야기로 정신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로이라고 부르는 노란 아오자이 콩까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김 하사님, 가스나들은 우째 댔는 기요?”
임태호 상병이 궁금한 듯 물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오니 또 여자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집안으로 뛰어가자 거실은 텅 비어 있었어. 그들을 찾아 나섰지. 얼마쯤 가자 누군가 쓰러져 있더군. 권 병장이야. 그는 이미 숨져 있었어. 등에 칼을 맞았더군. 누가 권 병장을 죽였는지 알아? 그 애들이야.”
“그 애들이 권 병장을?”
변을수 일병이 놀라서 개미허리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콩까이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변을수 일병은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권영준 병장은 기동도 할 수 없는 환자였다.
“미친년들, 죽여 버리지.”
임태호 상병이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
“도망치고 없었어.”
“정말 도망쳤어요?”
변을수 일병이 되받아물었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누구도 믿어서는 안돼. 이게 내 철학이야. 그리고 화근은 언제나 미리 제거해야 하는 거야. 그게 가장 깨끗해. 그런데 우린 도원경에서 바보짓을 했어. 화를 자초해서 만든 거지.”
개미허리는 두 눈은 노여움에 가득 차 있었다.
춘천역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들이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오음리에서 더블백을 매고 걸어서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트럭으로 춘천역까지 수송되었다. 장병들은 이곳에서 환송식을 마친 후 열차로 부산의 제4부두까지 이송될 것이다.
군악대가 도라지를 연주하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장병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 주었다. 춘천의 유지들이 정성껏 마련한 사과, 배, 다과, 빵 등 온갖 음식들이 풍성하게 열차의 바닥에 가득히 쌓였다.
환송객들과 장병들이 함께 맹호가를 불렀다. 군악대는 신나는 행진곡을 연주하고 장병들은 열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플랫폼은 많은 환송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부웅!”
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천천히 출발을 시작했다. 군악대가 햇볕에 반짝이는 거대한 나팔로 신나는 행진곡을 연주했다. 환송객들은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꽃다발과 오색 테이프를 장병들에게 던졌다. 차창 밖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잡고 있던 아가씨가 손을 놓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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