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치 연대장은 이 지점에서 그자들을 색출할 생각이었다. 더구나 그는 조금 전 2대대장으로부터 따이한 병사로 추정되는 수 미상의 병력이 퇴각중인 우군 속에 숨어 있는 것같다는 보고를 이미 받고 있었다.
치 연대장은 첩보를 받는 순간, 일소에 부쳤으나 그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따이한 병사들이 어떻게 이곳에 침투했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그들의 작전 구역 밖이었다. 그런데도 2대대장은 따이한 병사들이 목격되었다고 보고했다.
정말 따이한들이 이곳에 침투했을까? 그들은 대단히 용맹스러운 병사들이라고 했다. 전군이 벽돌을 격파하는 무술을 익히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들이 이곳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불을 질렀을까?
“정지하지 않는 병사들은 무조건 사살하라. 추격하지 말고 죽여 버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치 연대장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물목에는 많은 병사들이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강물을 떠내려 온 병사들은 물목에 도착하자 대안을 향해 사력을 다해 로프를 잡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좁은 물목을 빠져나가는 강물은 유속이 빨라 로프를 미처 잡지 못한 병사들은 그냥 지나쳐 버렸다.
물목을 통과하는 병사들은 탈주병이나 불순분자로 간주되어 무조건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물속은 병사들의 시체와 부유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불에 탄 통나무에 매달려 떠내려 오던 개미허리 일행이 물목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정지! 정지하라. 살고 싶으면 이쪽으로 와라.”
강물을 샅샅이 뒤지는 불빛과 함께 날카로운 명령 소리가 들려왔다. 월맹군들이 개미허리 일행에게 또다시 소리를 쳤다.
“어이 병사, 살고 싶으면 로프를 잡아. 로프를 놓치면 죽는다.”
임태호 상병이 난감한 표정으로 개미허리를 보았다.
“신 응 부이렁 짚 또이(도와 다오), 또이 비 퉁 신지읍 또이(부상당했다).”
개미허리가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로프를 잡아. 로프를 잡지 않으면 사살된다.”
몰 목의 병사들이 불빛 속에서 소리쳤다. 물목이 가까워지자 강물의 유속이 쏜살같이 빨라졌다. 개미허리가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작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통나무가 급류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로프를 잡아라 빨리!”
대안의 몰 목에서 매복을 한 월맹군 병사들이 개미허리 일행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통나무가 로프를 그대로 통과하자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잠수.”
개미허리가 통나무를 버리고 강바닥으로 갈아 앉았다. 임태호 상병과 변을수 일병도 통나무를 버리고 잠수했다. 그들은 급류에 떠내려가면서 물속까지 스며드는 불빛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지금 물위로 떠오르면 벌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어두운 물속을 엄청난 속력으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폭포 위에서 떨어지는 맥주병과도 같았다. 개미허리가 그 와중에서도 두 사람의 탄띠 거머잡았다.
떨어진다, 아! 떨어진다. 폭포에서 떨어진다. 숨이 막힌다, 터질 것 같다.
임태호 상병은 강물을 꿀컥꿀컥 삼키며 의식을 잃어 버렸다.
급류를 채 빠져 나오기도 전에 눈앞에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물속을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소위 원주민들이 말하는 ‘란(뱀)의 이빨’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원주민들은 독사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물살을 가르는 이곳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들은 소용돌이 속에 칼날 같은 이빨을 가진 거대한 뱀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뱀은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고 했다.
물위로 혹은 물밑에 숨어 있는 칼바위들은 강물을 맹렬하게 휘저어 놓아 거품과 함께 눈이 뱅글뱅글 도는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변을수 일병은 눈앞의 소용돌이에 기가 질려 버렸다. 어떻게 저길 빠져나갈 수가 있겠는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소용돌이 주변의 칼날 같은 바위들이 점점 다가왔다. 몸이 조금만 바위에 부딪쳐도 갈가리 찢어질 것이다.
변을수 일병의 몸은 점차 소용돌이로 끌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때 개미허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변을수 일병의 탄띠를 잡고 늘어졌다. 개미허리가 변을수 일병의 허리를 휙 하고 낚아챘다. 변을수 일병은 그 순간 소용돌이를 벗어나 다시 급류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저 말라깽이 하사의 몸, 어디에서 저런 힘이 솟아나는 것일까? 짧은 순간이지만 변을수 일병은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물위로 떠오른 변을수 일병은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겼다. 왼쪽 팔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바위에 어깨를 부딪친 모양이다. 몸속의 모든 기운이 어깨로 술술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변을수 일병은 정신을 잃었다.
임태호 상병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 심하게 욕설을 퍼부으며 자기의 뺨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뜨려 해도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잠에서 깨어나야지.
그는 멍청한 의식을 가다듬으려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 개미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급류에서 빠져 나와 뭍으로 올라 와 있었다.
밀림은 어느새 악몽의 밤이 지나가고 눈부신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엷은 안개 속에 이름 모를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있었다. 임태호 상병은 두려움에 떨며 밀림을 살피기 시작했다.
“뭘 보나 임마.”
개미허리가 빙그레 웃었다.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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