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60회
킬러 밸리 제 60회
  • 김범선 
  • 입력 2009-04-29 10:56
  • 승인 2009.04.29 10:56
  • 호수 783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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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환 상병 2소대, 권정균 일병 화기 소대…”

인사계 박 상사가 소대 배치 명령을 읽어 나가자 중대는 순식간에 활기가 넘치고 생기가 돌았다. 신병들을 새로 충원 받은 3소대 2분대장 천세규 하사에게 신병인 강상호 일병이 말을 걸었다.

“중대장님의 훈시가 마음에 드네요.”

“짜슥, 니도 눈깔이 하나는 제법이다. 도꾸 전마도 물건 인 기라.”

“아까 중대장님이 큰 실수를 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도꾸 행임이 저번에 킬러밸리에서 실수를 한 기라. 고래 가이고 도꾸는 마빡에 금이 안 갔나. 전마들이 도꾸를 잘 몬 본 기라. 쪼다 같은 자식들! 도꾸가 기냥 죽는가 봐라. 38따라지 새끼들 지들이 감히 우릴 쳐? 그 동안 우리가 지들을 울메나 봐줬는데. 지들이 겁대가리 우릴 쳐?”

천세규 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동안 치 연대장이 지휘하는 38연대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우군과의 접전을 피해 오고 있었다. 따라서 우군도 관할 2BD(월맹군 2대대)와의 교전을 피해 오고 있었다. 천세규 하사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우리하고 전마들은 매복하고 철수하다가 몇 번 아다리가 되었는데 서로 몬 본 척하고 피해온 기라. 내도 지난번에 백곰 행임하고 기생 골에서 매복하고 하산하는데 새끼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 구물구물 기어 나오는 기라. 그래서 내가 수류탄으로 한방에 날릴라 카이 백곰 행임이 점잖게 이래 말하는 기라. ‘근마들 기양 보내 줘라.’ 이상해서 내가 이렇게 물었는 기라.

와카는 기요? 골로 보냅시더. 그랬더니 백곰 행임이 점잖게 이래 대답하는 기라. 전쟁 바닥에도 벱이 있는 기라. 아무리 막가는 전쟁터지만 그래도 남자는 신의가 있어야제. 38연대 애들 카는 서로 안 붙기로 되있는 기라. 저번에 귀국한 문산 행임은 매복하고 나오다가 초면에 서로 만나 담배 꺼정 논 갈라 피웠다고 카드라. 피차간에 애비 때려지긴 원수도 아이고 기냥 몬본 척 하 몬 되는 기라. 이 전쟁은 미군 아이들이 일으킨기라. 우리가 머할라꼬 좇나게 싸우겠노. 그런데 고 씹새끼들이 우리 정찰조를 먼저 깐 기라. 그래가이고 우리 도꾸 행임이 야마가 돌아 킬러밸리에서 전마들을 잡아 묵을라 안카나. 그기 전마들의 역매복에 걸려 묵사발이 난기야. 이 행임도 그때 죽은목숨 아이가? 이래 동안 물 한 모금도 몬 묵고 정글 속을 헤매다가 미군 애들한테 구제 된기라. 도꾸 행임이 말을 안해도 우리는 마음을 다 안다카이. 행임이 직금도 이를 갈고 있는 기라. 내도 그때 도꾸 행임을 붙잡고 통곡을 안 했나.

행님요, 38연대 안 잡아 묵고는 귀국 안할람니더. 하이께로 행임이 오냐, 내가 와 니 마음을 와 모르겠노? 참말로 고맙데이 하고 말하면서 통곡하는 기라. 가슴을 칼로 기리는 거 같더라. 어제 귀국한 문산 행님은 38연대 안 잡아 묵고는 귀국 몬 한다며 도망치는 걸 우리가 억지로 안 달랬나. 그래도 피해 다니는 걸 도꾸 행임이 비밀히 만나 문산 행님칸 약속을 했다카이. 그때 내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하늘도 싸나이들의 의리 때문에 통곡을 했다카이.

도꾸 행임이, 발발아 니 그간 고생 마이 했다. 이제는 고만 집에 돌아가거라 하고 말을 하이께로, 문산 행님이 난 안갈랍니더. 삼팔 따라지 개새끼들 안 잡아 묵고는 몬갑니더, 죽어도 여그서 죽을람니더 하며 대성통곡을 하는데 서로 껴안고 울메나 울었는지 니는 모른다.

도꾸 행임이, 발발아 우째 내가 니 맴을 모르겠노. 내 니한테 약속 하꾸마, 싸나이로 니한테 맹세 하꾸마, 하고 도꾸 행임이 울면서 문산 행임을 배에 억지로 태워 집으로 보낸 기라.

인자 도꾸가 정신을 채리면 지들은 죽었다. 사나이 의리도 모르는 삼팔 따라지 개새끼들, 내 이 노무 자식들을 골로 보내고 귀국할 끼다. 안 그라면 집이고 개 뿔따구고 필요 없다.

천세규 하사가 이를 뽀드득 갈았다.

“분대장님도 월남 고참 이구먼유.”

“오냐, 그래 니 말 맞다. 니는 더도 말고 이 행임 뒤만 졸졸 따라 다니라. 고라면 목숨은 보장한다. 도마도 큰 행님캉 내 말만 믿으면 되는 기라, 알것제?”

신병은 이제야 중대 사정이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씹할 거, 정말 더럽게 걸린 게 아냐. 이건 숫제 중대장 새끼부터 분대장 새끼 꺼지 한통속이 되가지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잖아? 정말 재수 옴 붙게 걸렸는데, 어쩌지.”


전투(戰鬪)

전투에서 승자는 없다,
영원한 승자는 오직 죽음일 뿐.

“정지, 정지하라! 살고 싶으면 이쪽으로 와라.”

맞은 편 강 언덕에서 월맹군들이 목청을 높여 소리치고 있었다. 킬러밸리의 대화재로 많은 월맹군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월맹군 병사들은 급류를 타고 쏜살같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심하게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

강물 속은 화재의 부유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불에 탄 나무들과 전투 장비들, 그리고 병사들의 시신이 부유물과 함께 떠내려 오고 있었다.

치 연대장은 이곳에서 잔유 병력을 동원하여 방화벽을 쌓고 도망쳐 오는 병사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이곳은 물목이 좁아 강물이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장소였다. 치 연대장은 강 양안에 로프를 걸어놓고 떠내려 오는 병사를 구출하는데 온 힘을 쏟았었다.

언덕 위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횃불을 손에 들고 있었다.

횃불은 강물에 반사되어 대도시와 같은 휘황찬란한 야경을 만들고 있었다. 계곡의 우측을 끼고 흐르던 강물이 좌측으로 급하게 커브를 그리며 좁은 물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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