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53회
킬러 밸리 제 53회
  • 김범선 
  • 입력 2009-03-12 11:05
  • 승인 2009.03.12 11:05
  • 호수 776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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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광란하던 탐조등 대신 밤하늘에는 은하수의 강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 하늘에는 이제 막 십자성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조국의 밤하늘이었다. 언젠가 전쟁이 끝이 나면 사람들은 은하수의 별빛 아래에서 더위를 시키면서 이제는 전설이 된 조국 해방 전쟁의 무용담을 자랑할 것이다. 그리고 십자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사랑하는 조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서운 살육의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갑자기 그의 마음은 비감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그는 시름에 겨워 손에 들고 있던 한 뼘 크기의 작은 피리를 내려다보았다.

이 피리는 그의 16대 조상, 누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불었던 것이다. 그는 입술에 가볍게 침을 묻히고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맑고 투명한 소리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음색으로 변해 흘러 나왔다.

피리는 누 할아버지가 학의 다리뼈로 만든 것으로 귀중한 유물이었다. 이것은 젊은 나이에 프랑스로 정치 망명을 떠났던 그의 아버지가 남겨준 유일한 유품이었다. 아버지는 파리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조국 해방을 위해 노력하다가 객지에서 병사하고 말았었다. 그의 아버지는 위대한 군인이었다.

그의 연주 솜씨는 실제로 대단해서 듣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어머니마저 그가 여덟 살 때 적의 공습으로 사망하자 그는 어린 시절 아홉 명의 사촌들과 함께 백부 손에서 성장했다.

그는 밤하늘에 어리는 희미한 별빛을 의지하며 비가를 불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곡을 아주 좋아했다. 비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쳐 준 노래였다.

비가(悲歌)는 13세기에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던 어떤 장군이 사랑하는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고난에 찬 장부의 한과 슬픔을 노래한 곡이었다. 그 장군은 몽고의 침략을 물리친 영웅 트란 홍 다오 장군이었다.

밤하늘을 헤집고 울려 퍼지는 그의 피리 소리는 한 가닥 실낱같은 조국의 명맥과 외세의 침략에 대한 슬픈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

한 소절이 끝나자 부관 링이 급보를 전해 주었다. 이 나라를 통치하는 최고위층 지도자가 그를 관저에서 만나고 싶다는 전갈이었다. 이것은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었다.

오전 2시15분, 치 대령은 노구의 정치 지도자를 그의 관저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에 누엔 반 치 대령이 가장 존경하던 분이었다.

치 대령이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자, 안광이 출중한 노구의 정치 지도자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누엔 반 치 대령, 귀관을 사람들이 ‘밤의 장군’ 이라고 부른다지? 옛날 우리 조국이 몽고의 침략으로부터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살신봉사의 정신으로 조국을 두 번씩이나 위기에서 구한 밤의 장군처럼 말이야. 나도 귀관이 지휘한 후예 지구 전투의 대승을 잘 알고 있다네. 정말 훌륭한 작전이었어.”

지도자는 다정한 손길로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장군, 남부로 가라. 남부 조국을 해방시켜라.”

지도자의 이 같은 명령은 최고의 영광이며 가문의 명예였다. 일설에는 당시 지도자가 정표로 순금으로 만든 반달 검을 주었다고 한다. 누엔 반 치 대령, 그는 월맹군 소장파 군부 세력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여우처럼 교활하며 표범처럼 용감하고 너구리처럼 신중하며 늑대처럼 음흉하고 독수리처럼 움직임이 신속했다.

후예 지구 전투에서는 과격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번개 같은 작전으로 적을 제압했다. 그는 군부 엘리트 계층의 선두 주자였다.

후예 지구 전투에서 그가 구사한 전법은 전후 미 육군 군사 교범에 교육용 자료로 기록되었다. 특히 그가 킬러밸리 입구에서 역매복으로 7중대를 괴멸시킨 작전은 그 후에도 전사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 날 밤의 전투 상황은 마치 육이오 사변 당시, 중공군들이 사용한 전법과 유사하다는 판정을 받았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누엔 반 치 대령은 군사 심리학을 전공을 했으며 특히 손자 병법과 제갈 공명의 전법에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후예 지구 전투에서 미군을 상대로 구사한 전법은 촉 나라 군사, 제갈 공명이 남방 정벌 시 소규모 병력을 미끼로 적을 유인하여 섬멸하는 전형적인 허허실실의 작전이었다.

미군 지휘부는 후예 지구 전투에서 누엔 반 치 대령에게 당한 후, 삼국지에 기록된 공명의 전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작전 지침으로 일선 지휘관들에게 하달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렇게 눈부신 전공을 세운 누엔 반 치 대령에게는 군부 내에서 추종자가 아주 많았다. 그는 적들의 심리를 이용한 게릴라전의 대가였다. 그가 세운 작전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남에게 자기 생각을 함부로 표현하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밤의 장군’으로 부를 때에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3세기에 월남은 중국 북방의 기마 민족인 몽고족으로부터 두 번에 걸쳐 침략을 받았었다. 그때마다 밤의 장군은 몽고족이 낮에 혈투를 벌여 점령한 조국의 영토를 밤에 귀신처럼 나타나서 교묘한 전법으로 실지를 회복했다. 그는 국민적인 영웅이었다.

지도자의 격려를 받은 치 대령은 지난 6개월 동안 그의 부하들과 함께 불볕더위 속에서 낮에는 미군들의 공습을 피해 올빼미처럼 잠을 자고 밤이면 질병과 독충에 시달리며 개미처럼 부지런히 많은 식량과 무기를 하노이로부터 킬러밸리까지 운반해 왔다. 그들은 인간으로서는 참기 힘든 고통과 시련을 견디며 이곳까지 남하했다. 이제 일주일 뒤, 우기에 접어들면 단숨에 중부 월남을 해방시킬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춘 막강한 정예부대가, 전투다운 전투도 하지 못한 채 예기치 못한 화재로 괴멸 당하고 있었다.

삐이익!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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