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꽝!
전방 50m 지점의 12번 교량이 굉장한 폭음과 함께 폭삭 내려앉았다. 이제 대대로 돌아가는 유일한 통로인 빈케 통로마저 차단 되었다. 월남군 31사단 병사들이 지키던 다리였다.
다리가 폭파되는 순간, 신동협 병장은 그 충격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며 송유관에 머리를 부딪쳤다.
순간 신동협 병장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지름 1m 크기의 대형 송유관 밑에서 적과 교전을 하고 있었다.
송유관은 퀴논 항구에서 미군 부대로 급유 되는 전용 송유관이었다. 지금도 송유관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기름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만일에 적들이 송유관을 공격한다면 아군은 가만히 앉아 불고기가 될 것이다. 신동협 병장은 신병들에게 손짓으로 뒤를 따르라고 명령을 했다. 그리고 낮은 포복으로 도로 밑에 있는 물이 질펀한 논바닥으로 기어갔다.
병사들은 허리까지 자란 벼 포기를 헤치며 논바닥을 기어 뒤를 따라왔다. 신동협 병장은 언젠가 한번 점심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 미군58공병대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그들은 무척 인심이 후했다.
미군 58공병대원들은 맹호 부대 마크 한 개와 그들 공병 부대 마크 세 개와 바꾸었다. 그들은 맹호 마크를 아주 탐내며 좋아했다. 미군들은 맹호부대 마크를 어깨에 달고다니며 폼을 잡았다.
미군 58 공병대의 제논 서치라이트가 휙 하고 앞을 밝히며 지나갔다. 그들은 우군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위험을 무릅쓰며 길을 유도하고 있었다.
따르륵, 따르륵!
갑자기 어두운 밤하늘에서 총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신동협 병장은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새가 소리도 없이 지상을 향해 발칸포를 쏘고 있었다. 발칸의 붉은 예광탄은 검은 밤하늘에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미군 58공병대의 요청을 받고 지나가던 L19 비행기가 지원 사격을 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남쪽 멀리 날아가서 부웅! 하는 굉음과 함께 엔진을 끄고 활강 비행으로 새처럼 소리 없이 전투 지역 상공으로 접근한 다음 지상을 향해 발칸포를 퍼부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갑자기 105mm 조명탄이 캄캄한 밤하늘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놓았다. 조명탄이 날아오자 비행기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남쪽 어둠 속으로 휑하니 살아져 버렸다.
이제 신병들은 정신을 차리고 벼 포기를 헤치며 신동협 병장의 뒤를 낮은 포복으로 바짝 따라 붙었다. 그들 중 일부는 어느새 총을 들고 응사를 하며 뒤를 엄호하고 있었다. 현지 적응 훈련도 받지 않고 그들은 월남 고참이 되었다. 너무 빨리 고참이 된 것이다.
“자 이쪽으로!”
신동협 병장이 어둠 속에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순간, 그의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지독한 통증과 함께 때굴때굴 굴렀다. 칼빈 총탄이 왼쪽 팔뚝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만일 M16 총알이었다면 팔목이 붙어 있지 않을 것이다.
눈앞이 캄캄한 게 몹시 어지러웠다. 뒤를 따라오던 신병들이 그를 부축했다. 공병대의 외곽 철조망이 열리며 미군들이 신호를 보내 왔다.
“살았다!”
신동협 병장은 소리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신병들이 무사한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를 믿고 따라온 8명의 전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었다.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운 게 졸음이 쏟아졌다. 미군 58공병대의 연병장에 후송 헬기가 도착했다. 부상자들이 헬기 속으로 급하게 옮겨졌다. 프로펠러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며 헬기의 동체가 천천히 검은 하늘에 붕 떠올랐다.
갑자기 꽝! 하는 폭음과 함께 헬기의 동체가 기우뚱하며 심하게 요동을 쳤다. 신동협 병장은 놀라서 헬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 지상에는 난생 처음 보는 무서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앙케로 가는 송유관이 무서운 폭음과 함께 폭파되었다. 지역 게릴라들도 양민의 피해를 우려해서 폭파하지 않았던 송유관이었다.
불길은 거대한 기둥을 이루며 밤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승천하는 붉은 용처럼 불길은 거대한 몸통을 미친 듯이 비틀며 검은 밤하늘을 한 입에 삼켜 버렸다.
송유관 속의 휘발유는 불타는 강물이 되어 마른 하천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마른 하천을 삽시간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불이 붙은 기름은 거대한 냇물을 이루며 킬러밸리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하천 저편에는 킬러밸리가 오만한 제왕처럼 버티고 있었다.
“변 일병! 이게 무신 냄새고?”
임태호 상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기름이 타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일행은 서둘러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텅 빈 집안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쌍년들이 없어. 빨리 찾아라!”
개미허리 김 하사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권 병장, 권 병장! 어디 있나?”
일행은 권영준 병장을 부르며 집안을 모두 뒤졌으나 흔적도 없었다.
“임 상병, 시간 없다. 빨리 대머리 산으로 가자.”
개미허리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전투배낭을 챙겼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배낭 속에 쑤셔 넣었다. 씨레이션과 비상식량 그리고 과일 등.
서둘러 밖으로 나오자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매운 연기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디서인가 화재가 난 것 같았다.
“임 상병, 변 일병과 능선 위에서 기다려. 권 병장을 찾아 봐야겠어. 5분 후에도 내가 오지 않으면 먼저 떠나라. 쌍년들을 찾으면 죽여 버리겠어.”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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