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갓, 풋갓으로 가는 길은?”
개미허리가 다그치자 콩까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부 모른 다냐? 이런 쌍년들!”
개미허리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콩까이들이 이곳의 지리를 알지 못하는 후예 여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개미허리는 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가 이렇게 화를 내며 펄펄 뛰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바탕 소동에 권영준 병장이 잠에서 깨어났다. 권영준 병장은 잠시 상황을 지켜본 뒤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개미허리에게 말했다.
“쟤들이 누굴 기다리는 것 같아. 나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당할 순 없어. 그만 떠나, 어서!”
권영준 병장의 목소리는 처연했다. 개미허리는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임태호 상병이 나섰다.
“그럴 수는 없는 기라. 나는 권 병장님이 회복할 때까지 여기 있을 기다.”
임태호 상병은 그렇게 말했으나 속으로는 그게 아니었다. 임태호 상병은 이곳을 떠나는 게 싫었다. 가긴 어디를 간다 말인가?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어디로 간다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살고 싶었다.
여긴 전쟁과는 상관이 없는 도원경이었다. 야생의 과일과 푸른 초원, 여자들과 술, 편안한 집과 그림 같은 절경은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할 이유와 명분이 없었다. 여긴 낙원이었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벗어난 저 울타리 밖에는 남의 귀중한 생명을 내가 뺏어야 생존 할 수 있는 지옥의 전쟁터요, 비정의 세계였다. 이 세상에 만물은 어느 것 하나도 제 자리에서 영원히 머물고 있는 것은 없다. 너, 바다와 대지는 시간에 따라 흩어지고 부서져 결국은 그 이름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이며 너, 제국의 용사들과 병정들은 구름에 날리고 흩어져 마침내 영원한 흐름 속으로 사라지는 한 점 작은 티끌이었다.
“권 빙장님, 어디 가서 머슴 살았다 카지 마이소.”
“ 와?”
“군대는 요령이고 구란기라요. 지가 입대 전에 비누 공장에서 공돌이로 일하다가 입대했으면 사장했다 카고, 양복점에서 시다 노릇을 했으면 주인이라 카는 기라예. 김 하사님 보이소. 지가 입대 전에 깡패 똘마니로 따라 다니 놓고는 왕초했다 안 카는 기요. 그 기 군대생활을 하는 요령인기라요, 내 말 이해 가지예?”
임태호 상병이 또 권영준 병장에게 떠벌리고 있었다. 임태호 상병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곳에서 더 머물기로 결정한 후 그는 더 기고만장하여 걸쭉한 입담을 끊임없이 풀어놓았다.
“난 그런 거짓말은 못한다. 머슴을 살았다는 게 뭐가 부끄럽다고 거짓말을 하겠노?”
권영준 병장이 변을수 일병에게 동의를 구하며 말했다.
“그럼요.”
변을수 일병이 맞장구를 쳤다.
“놀고 있네. 그라이 권 빙장님은 일등병을 20개월이나 달았제. 와그리 맨자구처럼 사는 기요. 남자는 포도 치고 이빨도 까며 사는 기라, 그기 남자라 카이.”
임태호 상병이 또 이죽거리며 말했다.
“사기꾼 놈!”
오늘 따라 권영준 병장은 몹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수면도 깊이 취하고 상처의 통증도 다소 가신 것 같았다.
주방에서는 개미허리 김 하사가 표창을 갈고 있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숫돌에 표창을 문지르고 있었다. 임태호 상병은 개미허리를 보며 말했다.
“김 하사님은 이해가 안 간다카이, 오침도 안하고 저기 무신 지랄이고? 미친놈처럼 칼만 갈고 있는기. 아함!”
임태호 상병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했다. 임태호 상병이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권영준 병장도 눈을 감았다. 변을수 일병도 자리에 눕자 콩까이들도 곧 그의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월남의 한낮 더위는 모든 사람들을 깊은 잠 속으로 데리고 갔다.
개미허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표창의 날을 만져 보고는 입김을 후우 불었다. 그리고 하얀 손수건으로 정성 들여 날을 닦았다. 세 번째 표창을 들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에 날을 비춰보던 개미허리는 갑자기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이 꼼짝도 않았다.
갑자기 개미허리가 잽싸게 주방의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무서운 눈초리로 창밖을 노려보았다. 집 뒤편으로 길게 뻗어있는 언덕 위 능선을 따라 4명의 낮선 병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푸른 군복 어깨에는 AK 자동소총을 메고 있었다. 개미허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규군이다, 월맹군!”
그는 살쾡이처럼 소리 없이 임태호 상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을 깨웠다.
“뭐고? 신경질 나게.”
임태호 상병이 잠결에 신경질을 부렸다.
“쉬익! “
개미허리가 손가락을 입에 댔다. 그제야 임태호 상병이 사태를 파악하고 재빨리 일어났다. 개미허리는 잠들어 있는 콩까이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임태호 상병이 재빨리 권영준 병장과 변을수 일병을 깨웠다. 개미허리가 여자들을 가리켰다.
“권 병장, 여자 감시!”
개미허리는 임태호 상병과 변을수 일병을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규군. 겁나는 존재였다. 그들은 V. C와는 질적으로 다른 잘 훈련된 병사들이다. 정글 속에서의 전투는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도사들이었다. 개미허리는 어떻게 월맹 정규군들이 이곳에 나타났을까, 궁금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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