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45회
킬러 밸리 제 45회
  • 김범선 
  • 입력 2009-01-15 09:42
  • 승인 2009.01.15 09:42
  • 호수 768
  • 5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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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방심하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그는 넋을 잃고 표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표창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순진한 초등학생이 숨겨놓은 장난감을 몰래 꺼내보며 즐거워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한동안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개미허리는 그만 싫증이 났는지 표창을 하나씩 탄띠 사이에 끼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작렬하는 열대의 태양과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 힘없이 축 늘어진 야자수 잎사귀가 적군처럼 개미허리에게 달려들었다. 야자수 그늘에는 변을수 일병이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 있었다.

“보초 잘 선다.”

그는 변을수 일병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변을수 일병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보초가 잠을 자? 똑바로 해 임마! 보초 교대.”

변을수 일병이 붉게 충혈 된 눈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하품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변을수 일병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개미허리는 야자수에 등을 기댄 채 철모를 벗어 들고 땅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을 감고 있던 개미허리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협곡 동쪽 끝에 버티고 있는 대머리 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거실로 들어온 변을수 일병은 노란 아오지이 콩까이와 눈이 마주쳤다. 콩까이의 눈은 이미 색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건너편 방에서 묘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콩까이가 변을수 일병을 보며 아오자이를 벗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콩까이가 알몸으로 변을수 일병 앞에 섰다. 오디 알 같은 검은 젖꼭지와 터질 것 같은 젖가슴, 그리고 작고 귀여운 배꼽과 시커먼 거웃이 변을수 일병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건너편 방에서 절정에 다다른 콩까이의 교성이 터져 나왔다. 변을수 일병은 이성을 잃고 콩까이를 힘껏 껴안아 버렸다.

부드러운 여인의 머리카락이 부챗살처럼 그의 얼굴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변을수 일병은 향기롭고 선정적인 콩까이의 체취에 더 이상 대항할 힘이 없었다. 끈 적하고 말랑한 콩까이의 혀끝이 변을수 일병의 입 속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다. 육감적인 분부와 매끄러운 허벅지가 레슬링 선수처럼 변을수 일병의 하체를 바싹 조여들었다. 콩까이의 몸뚱이는 굉장한 흡인력으로 그를 빨아들였다.

콩까이는 변을수 일병을 먼 옛날의 추억으로 이끌어갔다.

한강 백사장에서 일이었다. 밤은 깊어 자정이 지나고 경부선 첫 열차가 기적 소리와 함께 철교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밤하늘에 긴 꼬리 지으며 떨어지는 하얀 유성이 경이로웠다.

을수는 우지혜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지혜의 긴 머리카락이 변을수의 얼굴을 감싸며 입술로 다가왔다. 을수의 손길이 풍만하고 매끄러운 지혜의 하체를 더듬었다. 지혜가 앙탈을 부리며 변을수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러나 집요하게 찾아드는 을수의 손끝을 지혜는 끝내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을수의 손길을 허락했다. 드디어 비밀의 문은 열렸다. 을수의 손길이 그녀의 몸속을 파고들자 그녀는 옆구리를 쥐어 박힌 사람처럼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변을수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지혜가 생각난다. 을수는 콩까이를 껴안으며 지혜를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지혜를 안아 볼 수가 있을까?

한편 야자수 그늘 아래 서 있는 개미허리는 여전히 교만하게 버티고 있는 대머리 산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건너편 대안의 절벽 위에는 울창한 밀림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계곡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던 개미허리의 눈길이 집 뒤편으로 뻗어 있는 작은 오솔길로 옮겨갔다.

갑자기 개미허리의 얼굴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친 걸음으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실 목침대 위에는 조금 전에 들어온 변을수 일병이 콩까이와 뒤엉켜 있었다. 콩까이는 변을수 일병을 올라타고 앉은 채 요분질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개미허리는 단숨에 달려가 콩까이의 검은 머리채를 난폭하게 잡아 당겨졌다. 그녀는 찢어지는 듯 한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콩까이의 젖가슴이 물결처럼 요동을 치며 심하게 흔들거렸다. 개미허리가 눈에 살기를 띠며 물었다.

“덴 옹 라지(이름이 뭐냐)?”

불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계집은 콩까이는 뱀처럼 싸늘한 개미허리의 눈빛과 마주치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탐, 텐 또이 라 타암(탐, 탐입니다)!”

“여기가 어디냐?”

“또이 킹 비옛 (모릅니다).”

“몰라?”

개미허리가 콩까이의 따귀를 세차게 올려붙였다. 콩까이는 함부로 팽개쳐진 작은 인형처럼 나가 떨어졌다. 그 바람에 선정적인 둔부와 풍만한 젖가슴이 심하게 흔들렸다.

변을수 일병은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영문을 몰라 개미허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개미허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콩까이를 족치기 시작했다. 개미허리의 난폭한 행동에 놀라 건넌방에서 임태호 상병과 흰 아오자이 콩까이가 거실로 나왔다. 개미허리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흰 아오자이 콩까이에게 다가갔다.

“여기가 어디냐, 지명은?”

“또이 킹 비옛(모릅니다), 또이 신 로이 옹(용서하세요).”

“너도 모른 다냐, 이런 쌍년들! 거짓말이지?”

개미허리는 펄펄 뛰며 콩까이의 가느다란 목을 잡고 흔들었다. 콩까이는 몸을 파르르 떨며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어디서 왔나?”

“후예, 후에에…”

“후예? 거짓말하면 꽥꼴락한다, 알겠지?”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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