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44회
킬러 밸리 제 44회
  •  기자
  • 입력 2009-01-07 17:22
  • 승인 2009.01.07 17:22
  • 호수 767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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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이, 좀 가만히 계시 구마. 저 가스나도 나를 좋아하는 기라.”

임태호 상병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순자야, 니 생각은 어떠노? 니도 내가 좋제? 둘이 여거서 살림 채리까? 내사 마 귀국해 봐야 반가워할 사람도 없는 기라. 우리 집에는 돼지 새끼들이 하도 많아 내 하나쯤은 없어져도 모른다카이. 순자야, 나는 니가 좋다. 니도 내가 좋나? 그라모 됐다. 더 이상 뭐가 필요 하겠노. 오늘부터 니는 태호 마누라다 알것제?”

임태호 상병이 콩까이를 살포시 껴안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질겁을 하며 몸을 피하던 콩까이가 배시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임태호 상병의 품에 안겨 들었다.


제20편 푸른 입술

병사에게 물어 보라, 죽겠느냐, 죽이겠느냐

한 무리의 작은 새들이 넝쿨 장미가 활짝 피어있는 베란다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무더위에 지친 야자수 잎사귀들이 기운을 잃고 축 늘어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베란다 앞 야자수 그늘에는 변 일병이 소총을 껴안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마에는 선인장 가시에 할퀸 상처, 턱 밑에 지렁이가 기어 간 것 같은 검붉은 핏자국 등 상처투성이의 얼굴이 그간의 치열한 전투를 말해 주고 있었다.

열사의 햇볕에도 타지 않은 하얀 얼굴, 짙은 눈썹과 칼날같이 오뚝한 코,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다.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변을수 일병의 얼굴 위에는 풀쐐기 한 마리가 굼실거리며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털이 숭숭 돋은 몸뚱이가 꿈틀거릴 때마다 풀쐐기는 앞으로 쓰윽 몸을 밀고 나갔다. 콧등을 지나 눈썹 위에 기어 올라가자 변을수 일방의 속눈썹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떨었다.

석조 건물 안 거실의 목침대 위에는 권영준 병장이 이따금 신음 소리를 토하며 잠이 들어 있었다. 권영준 병장의 침대 밑에는 노란 아오자이 콩까이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 건넌방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건너편 방에서는 야릇한 신음 소리가 방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안의 침대 위에서는 임태호 상병이 벌거벗은 콩까이를 마음껏 희롱하고 있었다. 콩까이의 매끄러운 손길이 임태호 상병의 몸뚱이를 훑어 내리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콩까이를 왈칵 껴안아 버렸다. 콩까이의 벌거벗은 몸뚱이가 해파리처럼 끈끈하게 임태호 상병의 허리에 달라붙었다.

“콩까이.”

“으응?”

“고 댑 꽈(당신은 아름다워).”

“라이 라이(빨리 빨리)!”

임태호 상병의 시커먼 몸뚱이가 불끈 힘을 쓸 때마다 콩까이는 야릇한 비명 소리를 숨 가쁘게 내질렀다. 임태호 상병의 거친 동작은 마치 먹이를 물어뜯는 탐욕스러운 늑대와 같았다.

임태호 상병의 끈끈한 혓바닥이 계집의 젖가슴에서 배꼽으로 기어 내려갔다. 콩까이의 허리는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이윽고 임태호 상병은 절정에 도달했다. 콩까이는 기진 한 듯 가랑이를 쩍 벌린 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고 늘어졌다. 마침내 콩까이의 벗은 몸뚱이가 먼저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리고 보드라운 손길로 임태호 상병의 촉촉이 젖은 이마와 가슴을 애무하며 쓰다듬었다.

거실에서는 여전히 노란 아오자이 콩까이가 건너 방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콩까이의 코맹맹이 소리와 함께 임태호 상병의 굵은 목소리가 두런두런 흘러 나왔다. 노란 아오자이 콩까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욕정이 담긴 한숨이었다.

한편 주방에는 개미허리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바닥만 한 작은 돌에 무엇인가 정성 드려 문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숫돌에 갈고서는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에 꼼꼼하게 비춰 보았다. 놀랍게도 개미허리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미제 과도를 갈아서 만든 표창이었다. 표창은 한 뼘 길이로 앞뒤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날이 세워져 있었다. 예리한 표창은 보기에도 섬뜩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바닥에 펴놓은 하얀 손수건 위에는 여덟 개의 날카로운 표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표창들은 개미허리가 목숨보다 더 아끼는 귀중한 물건들이었다.

그는 모두가 잠든 낮잠 시간이나 이른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표창의 날을 세우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개미허리의 유일한 취미는 표창에 날을 세우며 망중한을 보내는 일이었다. 취미치고는 참 괴상한 취미였다.

개미허리의 표창은 병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부대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개미허리가 표창을 던지거나 사용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 잠이 없는지, 잠은 언제 자는지 아무도 몰랐다. 모두가 잠을 자는 이 시간에도 개미허리는 들고양이처럼 잠깐 눈을 붙이고는 또 표창을 갈고 있었다.

개미허리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아주 많았다. 그는 언제나 외톨이었다. 괴팍한 성격은 다른 병사들과 친구가 될 수 없었다. 표독하고 잔인한 성격은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경계심을 심어 주었다. 그는 마치 야생의 고독한 들개와 같았다.

개미허리는 또 다른 표창을 골랐다. 표창의 양날은 보기에도 날카롭고 예리한 날이 서 있었다. 개미허리는 그것을 몇 번 숫돌에 문질러 보고는 칼날에 입김을 후우 하고 불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았다.

평소에 그의 성격은 무척 꼼꼼하며 특히 관찰력이 뛰어났다. 그는 대단한 주의력을 가진 병사였다. 그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는 모두 어떤 의미와 뜻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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