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39회
킬러 밸리 제 39회
  • 김범선  
  • 입력 2008-12-04 15:08
  • 승인 2008.12.04 15:08
  • 호수 762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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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호가 부엌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어느새 아버지는 그를 달랑 들어 마당에다 개구리처럼 태질을 쳐버렸다. 임태호는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도살장에서 칼을 맞은 돼지가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소리와도 같았다. 어린 임태호는 아무리 비명을 질러대도 아버지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한 마리의 잔인한 짐승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도망치는 방법뿐이었다.

그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쥐새끼처럼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마루 밑 깊숙이 숨어 버렸다.

“이놈! 나오지 못해.”

아버지가 컴컴한 마루 밑을 들여다보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어린 태호는 지금 나가면 아버지에게 맞아 죽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태호가 나오지 않자 아버지는 긴 장대를 가지고 와서 마루 밑을 꾹꾹 쑤셔대기 시작했다. 끝이 쀼쭉한 대나무 장대 끝이 임태호의 배와 가랑이 사이를 자꾸만 찔러 댔으나 그는 아픔을 참고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동안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던 아버지가 제풀에 지쳐 거름더미 위에 쓰러져 잠이 들자 어머니와 형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태호야, 이제 고만 나온나. 아부지 잔다.”

어머니가 태호를 달랬으나 그 애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속에서 죽은 듯이 하룻밤을 지냈었다. 날이 새자 형들이 임태호를 불러냈으나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머니가 마루 밑에다 밥그릇을 놓아두자 임태호는 강아지처럼 아무도 몰래 밥을 먹고는 다시 마루 밑에 숨어 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임태호 상병은 도망치고 숨는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섣달 그믐날 밤에 술에 취해 샛터 개울가에 쓰러져 얼어 죽었다. 아버지를 제일 먼저 찾아낸 사람도 태호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부터 죽음과 폭력에 아주 잘 길 들어져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지렁이 간이라도 빼먹을 야비하고 사악한 인간으로 자라났다.

집안 살림은 어머니와 큰형이 담배와 고추 농사로 꾸려 갔었다. 누나들은 어린 시절부터 구미 공장에 다니다가 시집을 갔고 형들은 트럭이나 택시를 몰기도 하고 정육점을 하기도 했다. 얼마 안 되는 농토는 큰형 혼자서 농사를 짓기에도 부족했다.

8남매 중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은 오직 태호 뿐이었다. 어머니는 형들이 택시를 몰거나 채소장사를 하며 어렵게 사는 것이 모두 학교를 다니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막내인 임태호를 고등학교에 보낸 것이다.

어머니의 꿈은 막내인 태호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웃에 사는 상원 댁의 아들처럼 면서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지런히 날품을 팔기도 하고 고추 농사를 지어 막내아들의 학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임태호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3년 동안 한 번도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임태호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는데, 그것은 넓은 광대뼈, 가로 찢어진 작은 눈이 늑대의 눈알처럼 반들거려 아주 섬뜩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흉측한 작은 눈빛이 상대방을 노려볼 때는 만정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생긴 모습과는 달리 순진한 모습도 있었다. 임태호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건달 뒤나 졸졸 따라 다니며 깡패 흉내를 낸 것이 고작이었다. 학창시절에 변소에 숨어 구린내를 맡으며 담배를 피우다가 뺑코 선생에게 걸려 일주일 동안 정학 처분을 받은 것이 유일한 전과 기록이었다.

또한 임태호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고 멋 내기를 아주 좋아했다. 잠시만 틈이 나도 그는 거울에 얼굴을 비쳐보며 혼자서 여드름을 짜거나 면도질을 했다. 아마도 그 자신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참들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야 임태호, 거울 그만 봐라. 닳아서 못쓰잖아” 하고 야지를 놓았지만 녀석은 거울 속의 미남에 도취되어 도리어 잘생긴 것도 죄냐, 하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태호는 월남에 온 뒤부터는 사람이 아주 달라졌다. 적과 교전을 할 때, 임태호는 전쟁 영화 속의 주연 배우처럼 용감하고 늑대처럼 대담하며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기꾼처럼 야비했다.

다른 전우들이 내일 전투 때문에 입맛을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녀석만은 새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을 설레며 짜릿한 흥분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임태호는 어느새 전투 자체를 즐기는 야비한 군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살생을 하고 파괴를 하는데 황홀한 쾌감을 느꼈다. 박동수 중대장까지도 교전 중에 임태호 뒤만 따라 다니면 죽지 않는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임태호는 귀국을 자꾸만 연기하고 있었다. 막연하나마 그는 고국의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시골에서 건달 흉내나 내던 촌놈이었지만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할 경우, 크게 사고를 낼 위험한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야 변 일병, 이기 뭐고? 우째 짱글이 요래 겨울로 변했노? 니는 대학꺼정 댕겼으개 알것제.”

하지만 변을수 일병도 그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

“푸우! 이기 무신 냄새고? 참말로 지독하다, 에퇘퇘퇘…”

갑자기 임태호 상병은 코를 감싸 쥐고 빙빙 돌았다. 조금 전부터 생선이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개미허리가 나무 밑을 가리켰다. 3m에 가까운 거대한 뱀이 죽어서 썩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추하게 죽어 있는 새들의 깃털이 여기저기 보였다.

“저쪽으로 가자.”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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