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38회
킬러 밸리 제 38회
  • 김범선  
  • 입력 2008-11-27 10:18
  • 승인 2008.11.27 10:18
  • 호수 761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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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늘 있어왔던 새들의 지저귐, 벌레들의 속삭임과 짐승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나무 잎사귀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까지 들리지 않았다.

생명의 소리들이 갑자기 뚝 그치고 무성영화의 흑백 화면처럼 음산하고 적막한 세계로 뛰어든 것 같았다.

그곳은 공포와 비극의 세계였다. 병사들은 넋을 잃고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모두 죽었잖아. 여긴 죽은 자의 계곡이야!”

권영준 병장이 두려움에 떨며 중얼거렸다. 정글 속의 겨울은 병사들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열대 지방에 어찌 겨울이 올 수 있겠는가.

그것은 미군들이 비행기로 살포한 고엽제 때문에 밀림의 나무 잎들이 모두 말라 죽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군은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개미허리 일행도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공포에 질려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군은 제초제의 일종인 고엽제를 월남에서 전쟁 무기로 사용을 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약 10년간에 걸쳐 1,800만 개론에 달하는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했고 그 중 약 80% 가 한국군 작전 지역에 집중적으로 뿌려졌다.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이옥신은 인류가 발명한 최악의 독성물질로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수십만 배에 달한다. 소주잔 한 잔 분량의 다이옥신으로 10만 명의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다. 다이옥신에 피폭된 경우 중추신경장애, 면역체계이상변형, 말초신경장애, 심혈관질환과 순환기장애, 폐와 흉곽장애, 각종 암을 일으키며 유전자구조 변형으로 후세에까지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다이옥신에 대한 독성은 아직도 모두 규명되지 않고 있으며 그 독성이 일으키는 질병에 대한 치료약도 아직까지는 개발이 되지 않고 있다.

당시 월남전은 정글 지대의 특수성 때문에 미군들이 작전하기에 무척 어려움이 많았다. V. C는 지형적인 이점과 정글을 이용해서 엄청난 전비와 우수한 장비를 가진 미군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들은 정글 속에서 치고 빠지는 전형적인 게릴라전을 구사했다. 소위 적이 강할 때는 치고 도망치는 모택동의 전법이었다. 도망치는 게릴라들이 정글 속에 숨어 버리면 한강 백사장에 바늘 찾기와 같았다. V. C는 밀림 속에 숨어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우세한 무기를 가진 미군들과 전쟁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미군들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V. C의 은신처인 정글에 화공 약품을 살포하여 우거진 숲들을 겨울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살아서 숨 쉬는 생명체의 어머니인 자연을 죽이는 일이었다. 준엄한 생명의 질서와 조화를 깨뜨려 조물주를 모독하고 대지를 죽이는 가장 비열한 살인 행위였다. 비행기로 살포되는 에이전트 오렌지는 가랑비처럼 살포되어 나뭇잎에 닫는 순간 앙상하게 메말라 죽었다.

푸른 잎사귀들은 흉측한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베트콩들의 주식인 벼는 에이전트 오렌지가 살포되는 순간 말라비틀어지며 냉해 입은 벼처럼 하얗게 타서 죽었다. 약제 살포용 비행기가 지나간 지역은 순식간에 겨울로 변해 버렸다.

군사 작전은 적을 죽이는 살인 행위가 허용된다. 이러한 행위들은 적을 제압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그러나 화학무기인 고엽제의 독성은 월남 전쟁이 종전된 지 30 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까지도 심각한 환경 파괴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월남 국토의 40%를 차지했던 밀림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농토가 황무지로 변해 버려 식량 생산량이 감소되었다. 염색체의 파괴로 기형아가 출생하고 변형된 인자가 자녀들에게까지 유전이 되었다.

월남전 후 미국에서는 에이전트 오렌지의 독성에 대해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엽제 피해자를 보훈처에서 조사하고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수은처럼 인체에서 배설되지 못하고 잔류하여 그 독성으로 수많은 참전 용사들이 지금도 병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당시 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은 고엽제에 피폭된 병사들은 전상자들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지렁이 간 빼 먹을 놈살기위해 못할 짓이 없는

임태호 상병은 공포에 질려 버렸다. 그의 말처럼 일등병 시절부터 월남에서 잔뼈가 굵은 현지 고참이었다. 킬러밸리만 빼고는 빈딩성 구석구석을 다 뒤져본 용가리 통뼈였다.

그런데 여긴 어디인가? 한국의 겨울처럼 앙상한 겨울 숲으로 변한 이곳은 어디인가? 모든 일에 낙천적이고 매사에 허풍이 심한 임태호 상병도 생전 처음으로 공포에 떨며 심각해 졌다.

그는 원래 성격이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경북이 고향으로 4남 4녀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생 동안 담배 농사만 짓던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짐승으로 변해 집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집 밖에서는 남에게 잘하는 양반이었다.

그러나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폭군으로 변했다. 그는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고함부터 질러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에게나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런 술버릇을 잘 아는 가족들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포에 질려 쥐구멍부터 찾았다. 8남매 중 막내인 임태호는 어린 시절부터 숨어 다니는 데는 이골이 난 꼬마였다. 네 살이 되던 어느 해 봄날이었다. 배가 고파서 울던 임태호는 아버지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마침 그 날은 어머니와 형들까지도 모두 담뱃잎을 따기 위해 밭에 나가고 없었다. 태호는 술에 취한 아버지의 흐릿한 눈과 마주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을 쳐야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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