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32회
킬러 밸리 제 32회
  •  기자
  • 입력 2008-10-16 15:35
  • 승인 2008.10.16 15:35
  • 호수 755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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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 단추를 풀었다. 우지혜의 가느다란 목과 풍만한 가슴이 을수의 혀끝에 닿았다.

그녀는 처녀다운 거부의 몸짓과 짜릿한 흥분으로 어쩔 줄라 했다. 우지혜는 다리를 비비꼬며 모래 바닥에 털썩 누워 버렸다. 그리고 산비둘기처럼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토했다.

가슴을 뚫고 들려오는 심장의 고동 소리, 목덜미를 타고 울려 퍼지는 우지혜의 헐떡거림, 고양이처럼 가르릉 거리는 숨소리, 타오르는 열정과 흥분으로 목울대를 넘어가는 타액의 소리, 그리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매끄러운 손길과 축축한 체액의 감촉이 을수를 흥분케 했다. 그녀는 가슴으로 파고드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였다. 원초적인 본능에 어쩔 줄 모르며 몸부림치는 색정에 젖은 귀여운 고양이였다.

갑자기 우지혜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무희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를 활짝 벗어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야릇한 동작과 요염한 몸짓으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슴처럼 가느다란 목덜미 아래로 풍만한 젖가슴과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둔부, 활처럼 휘어진 허리의 유연한 곡선과 터질 것만 같은 허벅지와 미끈한 다리가 유혹적이었다.

우지혜가 손뼉을 치며 야릇한 괴성을 질렀다. 그 때마다 쿵짝 쿵자작 하는 북과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북과 징 소리와 함께 우지혜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쿵짝, 쿵짝.

우지혜의 풍만한 젖가슴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코앞까지 다가오자 꽹과리는 자지러지게 울부짖었다.

이젠, 그만 그만…

변을수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우지혜를 껴안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싸늘한 눈빛으로 매정하게 변을수의 손길을 탁 하고 뿌리쳐 버렸다.

탁!

갑자기 왼손이 다급하게 당겨졌다. 변을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꿈을 꾼 것 같았다. 함께 있던 임태호 상병이 호 속에 없었다. 임태호 상병은 어디로 간 것일까?

쿵짝, 쿵짝, 쿵짝.

조금 꿈속에서 들었던 꽹과리 소리가 잠이 깬 지금까지 날카롭게 귀청을 파고들었다.

‘이게 무슨 조화야? 조금 전, 꿈속에서 들었던 꽹과리 소리가 아직까지도 울리다니?’

변을수 일병은 공포에 질려 새파랗게 얼어 버렸다.

한치 앞도 볼 수가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꺼번에 수백 명이 북과 꽹과리를 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곤두섰다. 마치 북과 꽹과리와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캄캄한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남호구 병장이 임태호 상병과 호 속으로 뛰어들었다.

“참말로 좇같이 걸린 기라. 내 참 더러버서…”

임태호 상병이 몹시 허둥대며 남호구 병장에게 말했다.

“이젠 먼저 쏘는 놈이 먼저 죽는다. 끝까지 기다려.”

남호구 병장이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는 속이 타는지 연신 혀끝으로 입술을 축이고 있었다.

변을수 일병은 임태호 상병과 남호구 병장이 이렇게 공포에 떠는 모습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월남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소위, 무서운 게 없는 현지 고참들이었다. 더구나 임태호 상병은 낙천적이고 허세가 심한 허풍 쟁이었다. 그런 그가 왜 저렇게 공포에 질려 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래요?”

변을수 일병이 임태호 상병에게 물었다.

“아이쿠, 이 미련한 등신아! 니캉 내캉 오늘이 제삿날이다. 우리가 적의 역매복에 걸릿다, 이제 알겠냐? 바보 같은 놈.”

“역매복에?”

“그래, 우째다 중대가 요렇게 쪼다 짓을 했는지 고기이 한심하다마. 전마들이 우리 매복 지점을 우째 요래 정확하이 알고 치겠노.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아이가? 미덜수 없다카이. 꽹과리, 저기 모택똥이 전법인기라., 씹할 미치겠다마.”

쿵짝 쿵짝.

또다시 북과 꽹과리 소리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득 채우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북과 꽹과리 소리가 점점 템포가 빨라지자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쿵쾅거리고 귓속은 벌레가 든 것처럼 멍멍해졌다.

“변 일병, 전투 배낭과 우의를 버려. 총하고 수류탄 외에는 전부 버리라고, 내 말 알겠지?”

남호구 병장이 나직이 속삭였다.

“닌 임마, 내 등 뒤에 딱 붙어라. 그라고 함부로 총 쏘지 마라, 알것제? 먼저 쏘면 니가 먼저 디진다 알겄제? 이건 마 장난이 아인 기라. 죽고 사는 기 딸린 문젠 기라.”

임태호 상병이 변을수 일병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변을수 일병은 전투 배낭과 우의를 벗어 던졌다.

요란하게 울부짖던 북과 꽹과리 소리가 갑자기 뚝 그쳐 버렸다. 무서운 정적, 굉음보다 더 무서운 고요함이 찾아왔다.

변을수 일병은 바람이 가득 찬 풍선에서 공기가 빠지듯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기운이 쑥 빠져 버렸다.

그때였다.

“악! 나 죽는다, 사람 살려.”

갑자기 소름이 오싹 끼치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갈라놓았다.

“뭐야?”

변을수 일병은 느닷없는 무서운 비명 소리에 놀라 임태호 상병을 쳐다보았다. 임태호 상병은 어금니를 뿌드득 뿌드득 갈았다.

“내, 이 새끼들을 안 잡아 묵으면 귀국을 안 할 기다. 두고 봐라, 개새끼들아!”

“어머니! 살려줘요, 으으흑흑.”

오장육부를 칼로 저미는 듯한 단장의 비명 소리가 또 터져 나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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