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25회
킬러 밸리 제 25회
  •  기자
  • 입력 2008-08-28 10:21
  • 승인 2008.08.28 10:21
  • 호수 748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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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 구두닦이, 걸인, 깡패, 껌팔이 등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점잔을 빼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게 더 이상했다. 더구나 옷 속에서 삐쭉이 내밀고 있는 흉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피서를 가는 행락 인파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몽두리 옆에는 거구의 청년이 앉아 있었고 맞은편 좌석에는 바싹 마른 청년과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장무수 이병은 조금 전 대구 역 대합실에서 읽은 매일신문 기사를 생각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의 내용은 대구 지역을 통일한 깡패 두목 백호가 일간에 포항으로 원정을 간다는 것이었다. 포항 송도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그곳에 터를 잡고 있는 야수파 두목 야수가 지금까지 대구 깡패들에게 상납을 해 왔는데 근간에 들어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호가 일간에 포항의 깡패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원정을 갈 것이라는 기사였다. 따라서 포항으로 해수욕을 떠나가는 피서객들은 이 점을 유의하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대구 깡패 두목 백호의 얼굴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단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는 약관의 청년으로 몸이 아주 허약해 보여 아무도 그를 깡패 두목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폐병쟁이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장무수 이병은 자는 척하며 그의 옆에 앉아 검정색 양복을 점잖게 차려입은 거구의 청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데이 서울’ 을 보고 있었다. 청년은 수영복을 입고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자의 누드 사진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와 마주 앉은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의 멋쟁이 아가씨는 검정 선글라스 너머로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무수 이병은 다리를 포개 앉은 그녀의 허연 허벅지와 어쩌다 드러나 보이는 새빨간 팬티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녀의 옷차림은 너무 도발적이고 선정적이었다.

그녀의 옆 좌석, 바로 장무수 이병의 맞은 편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 검정 넥타이에 흰색 양복을 점잖게 차려입은 청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모자를 쓰고 하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그 멋쟁이 청년은 아마도 여름 감기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는 것 같았다.

열차가 동촌역에 도착하자 또 한패거리의 거지와 껌팔이, 넝마주이들과 구두닦이, 그리고 깡패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은 개찰구와 반대편의 철로를 건너 열차를 타고 있었다.

차장과 승무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정지를 명했으나 그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열차가 다시 출발을 했다.

열차가 영천을 지나 경주역에 들어서자 또 한패거리의 깡패들이 올라탔다. 이젠 열차 승무원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놀라서 끽소리도 못하고 더운 객실 속에 갇혀 포항으로 가고 있었다.

마주 앉은 말라깽이 청년이 고개를 드는 순간, 장무수 이병의 눈길과 마주쳤다. 장무수 이병은 깜짝 놀라 움칠했다. 마주 앉은 청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꾼은 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장몽두리는 그가 백호일 것이라고 단정을 했다. 이 열차에 타고 있는 모든 깡패들을 지휘하며 포항으로 원정을 가고 있는 백호임이 분명했다.

장무수 이병은 전국의 군 형무소를 모두 거친 감자였다. 깡패, 탈영, 살인, 폭행, 절도 등 한다는 꾼들이 그의 손에 끽소리도 못하고 녹아 났다. 감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막가는 인생들이었다. 그러나 장몽두리는 곡괭이 자루와 눈빛 하나로 수많은 감자들을 제압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무릎을 마주 대고 앉아있는 저 말라깽이 청년의 눈빛은 정말 무서웠다. 수많은 감자들을 제압한 장몽두리도 말라깽이 청년의 눈빛을 보는 순간,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장몽두리가 조금만 이상한 몸짓을 해도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의 보디가드인 거구의 청년이 칼을 날릴 것이다. 아니면 미니스커트 아가씨가 먼저 손을 쓸 것이다. 장무수 이병은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포항 인근 역에 도착하자 깡패들은 어느새 열차에서 슬금슬금 뛰어 내리기 시작했다. 객실 안은 숨 막힐 듯 한 더위와 정적으로 죽은 듯이 조용했다. 드디어 열차가 포항역에 도착을 했다. 보디가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길을 열었다. 미니스커트 아가씨가 중절모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말라깽이 청년의 겨드랑이 밑에 팔짱을 끼며 부축을 했다. 말라깽이 청년이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통로로 나갔다. 누가 보아도 그는 환자였다.

갑자기 말라깽이 청년이 몸을 획 돌렸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 꺼내 장무수 이병의 손에 쥐어 주었다. 무심한 표정을 가장하며 유리창에 비치는 말라깽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던 장몽두리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러나 어느새 말라깽이 청년은 일행 속에 파묻혀 저만치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송도 해수욕장에서는 포항 깡패와 대구에서 원정은 깡패들이 집단으로 패싸움을 벌였다. 포항 깡패의 보스인 야수는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힐튼장에서 작전을 짜던 중 대구 깡패 독사에게 칼침을 맞았다. 독사는 야수의 무릎 인대를 회칼로 도려 버렸다.

야수는 그 후 그 세계에서 은퇴하였으나 평생을 앉은뱅이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포항 깡패들은 어느 누구도 백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포항의 조직은 그 후 대구로 흡수되어 버렸다.

장몽두리는 그제야 수도로 적벽돌을 박살내고 있는 말라깽이가 누구인지 확신을 했다.

“너 임마! 백호지? 죽을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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