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들 중에는 솜씨 좋은 친구들이 아주 많았다. 벽돌공, 미장공, 조적공, 철근공 등 기술자들이 많았으나 그들을 다루는 것에는 장몽두리 만큼 능숙한 인물이 없었다. 장몽두리는 할 수만 있다면 형무소에서 대포도 만들 녀석이었다. 형무소장은 감호소 입구에 환경정리 사업으로 파노라마를 만들어 시찰단의 눈에 확 띄게 하고 싶었다.
드디어 장몽두리 인솔 하에 파노라마 작업이 시작되었다. 벽돌공, 미장공, 시멘트공, 철근공 등 수많은 감자들이 개처럼 혀를 빼물고 노예처럼 장몽두리에게 얻어터지며 무더위 속에서 파노라마 작업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 작업을 방해하는 놈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걸음에 파노라마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감자들은 일은 하지 않고 로봇처럼 삐쭉하게 서서 벚나무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벚나무 밑에는 빨간 벽돌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어떤 말라깽이 녀석이 수도로 툭 쳐서 그 비싼 적색 벽돌을 반쪽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바닥으로 툭 쳐서 적벽돌을 두 동강을 내서는 나무 밑으로 휙 던져 버렸다. 적벽돌은 돌처럼 단단해서 망치로 내려쳐도 잘 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손바닥으로 두부모를 치듯이 가볍게 툭 때려 박살을 내버렸다.
작업반장 배동태 이병이 전하는 말은 파노라마 기초 작업을 위해 녀석에게 굴토 작업을 명령하자, 녀석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미쳤나, 네가 해라’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배동태 이병이 깜짝 놀라 녀석을 노려보자, 말라깽이는 두말도 않고 나무 그늘에 앉아 적벽 돌을 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버릇을 고치기 위해 기합을 주려고 해도 녀석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벽돌장만 깨고 있다는 것이다. 하는 짓이 하도 괴상망측한 놈이라 겁이 나서 말도 붙이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몽두리는 말없이 곡괭이 자루를 질질 끌면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못 본 척하며 여전히 벽돌장을 깨고 있었다. 벽돌장은 녀석이 손으로 내리칠 때마다 거짓말처럼 두 동강이 나고 있었다. 벌써 한 리어카 분의 벽돌장이 두 동강이 나서 나뒹굴고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었다.
장몽두리는 곡괭이 자루로 녀석의 정수리를 단번에 박살을 내려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녀석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장몽두리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녀석이 다시 벽돌장을 손으로 내리쳤다. 순간, 장몽두리는 깜짝 놀랐다. 싸늘한 눈빛, 아무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눈동자, 그러나 호수처럼 잔잔하면서도 불타는 화산을 가득 품고 있는 저 강렬한 눈빛.
어디서 저 눈빛을 보았을까? 장몽두리는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남한산성
군 형무소가 있었던 곳, 감자들의 집
그날은 장몽두리가 남한산성 형무소에서 밀양 형무소로 이감되는 날이었다. 남한산성을 떠나기 전에 형무소장이 그를 불렀다.
“몽두라, 그간 수고 많았다, 포항 가서 하루 쉬고 밀양으로 가거라.”
형무소장 윤봉구 대령이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소장님.”
“밀양 소장한테 내가 전화를 했어. 거기 가면 감방장을 맡게 될 거야. 전임자가 이번에 출감하는 모양이야. 자넨 능력이 있으니 잘할 거야. 자네, 여포 알지. 문 대령 말이야.”
“전에 한번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전화를 받고 그렇게 좋아했군, 잘가게.”
“단결.”
형무소장은 그간 감방 장으로 고생이 많았다며 밀양으로 가는 길에 포항 송도 해수욕장에 가서 하룻밤을 쉬고 가라며 노자까지 보태 주었다.
형무소장이 그에게 그런 대접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한산성 형무소는 소장의 지휘와 통제 아래 움직였다. 그러나 소장의 지휘가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남한산성 형무소에는 탈영, 폭행, 살인, 절도 등 각종 범죄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막가는 인생이었다. 감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역병만으로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감자들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 스스로가 자생 조직을 만들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즉 그들 자신이 힘을 통제하는 지휘 체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마치 야생의 늑대들이 스스로 싸워서 리더를 만들도록 하는 방법이다. 장몽두리는 그 일의 적임자로 남한산성의 야간 형무소장으로 군림했다.
녀석은 여우처럼 교활하며 늑대처럼 야비하고 곰처럼 미련하고 호랑이처럼 용감했다. 그는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 하나로 남한산성의 수많은 수감자들을 꼼짝 못하게 통제를 했다. 그는 밤이면 5파운드 곡괭이 자루를 질질 끌며 형무소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순찰을 했다. 수많은 감자들이 녀석이 끌고 다니는 몽둥이 소리에 가슴을 조이며 겁을 집어먹었다.
장몽두리가 남한산성에 있는 동안에는 형무소에 폭동이 일어나거나 감자들이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형무소장은 몽두리를 이감시키는 게 섭섭할 정도였다. 그래서 형무소장은 약간의 전별금을 그에게 전한 것이다.
장몽두리는 버스로 대구까지 왔다. 그리고 대구에서 포항행 열차에 올랐다.
아직도 열차가 출발하려면 10분이나 더 기다려 했다. 장무수 이병은 더블 백을 들어 창문가의 스팀 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창문틀에 팔을 얹고 손바닥으로 턱을 궤고 눈을 감았다. 찜통 같은 무더위, 가슴팍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런데도 웬 놈의 피서객들은 이렇게도 많은 지, 콩나물시루처럼 터질 것만 같은 객실로 계속 승객들이 올라왔다.
조금 전부터 장무수 이병은 자꾸만 출입구 쪽에 모여 있는 한 패거리들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