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원을 그렇게 골탕을 먹인 우명식 이병은 이튿날 관할 헌병대로 이첩되었다. 헌병대로 잡혀가기 전에 우명식 이병은 아무도 모르게 취사반으로 불려갔다. 그곳에는 장몽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느닷없이 우명식 이병을 개를 잡듯 패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왜, 그가 그렇게 화를 내며 이등병을 때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몽두리는 지난밤의 단체 기합에도 열외로 빠져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우명식 이병을 동생처럼 아끼고 돌봐 주었다.
장몽두리는 우명식 이병을 취사반의 시멘트 바닥에 설설 기도록 때렸다. 그리고 한 장의 쪽지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무 것도 아냐 임마! 넌 죽었다. 앞으로 많은 기합을 받을 거다. 내 말을 명심해서 들어라. 지금 내가 주는 이 쪽지는 앞으로 너의 생명과도 같은 거다. 남한산성에 가면 반드시 이 쪽지를 감방장에게 전해라. 그러면 너는 편하게 지낼 것이다. 만일 이 쪽지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면 너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알겠어?”
“명심하겠슴다, 흑흑흑…”
“다시 한 번 더 반복하겠어, 소지품은 모두 빼앗겨도 좋다. 그러나 이 쪽지만은 결코 뺏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 목숨 걸고 숨겨서 감방장에게 전해라, 알겠지?”
장몽두리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은 우명식 이병은 오후에 16 헌병대로 이첩되었다. 우명식 이병이 헌병대로 잡혀간 후 한 달이 지나갔다. 중대는 어느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우명식 이병의 늙은 아버지가 멀리 해남에서 장무수 일병과 중대장을 찾아왔다. 농사꾼인 우명식 이병의 아버지는 장무수 일병의 손을 잡고 주름진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했다.
우명식 이병은 남한산성에서 감방장의 보호 아래 편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오직 장몽두리가 보낸 쪽지 덕분이었다.
신동협 병장은 장몽두리와 함께 지내며 그에게 인간적인 정을 매우 느꼈다. 마치 큰 형님같이 느껴졌다. 그런 장몽두리를 정문 위병소에서 만나자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반가웠다.
“어이 신 병장, 지금 가는 거여?”
“단결! 장 일병님, 이번에는 꼭 제대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임마! 너 월남 가거든 몸조심해라. 그리고 잠깐만 들어와.”
신동협 병장이 위병소에 들어서자, 장무수 일병은 군복 상의 호주머니 속에서 군인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수첩 갈피 속에서 사각으로 접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거 받아.”
“싫어요, 단결!”
“야 임마! 너 정말 그럴 거야?”
장무수 일병은 막무가내로 돈을 신동협 병장의 손에 쥐어 주었다.
“널 만나려고 아침부터 기다렸어.”
“형님, 그만 떠날라우.”
“그래,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
“단결!”
“너 혹시 기갑연대에 배속되면 개미허리를 찾아봐라. 자식이 죽었는지 소식이 없어.”
신동협 병장은 천하의 장무수 일병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개미허리라는 인물에 부쩍 호기심이 생겼다.
“개미허리? 개미허리가 누군데요, 이름은?”
장무수 일병은 남한산성 감방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문딩이 자슥 기분 나쁜 친구
“행임요, 큰일 났심더, 우째면 좋겠심니꺼.”
작업반장 배동태 이병이 가뿐 숨결을 헐떡이며 말했다.
“왜 그랴?”
“뭐, 저런 자슥이 다 있는 교. 문딩이 같은 자슥이 일을 몬 하게 합니더. 생긴 건 꼭 쥐새끼 같은 놈이…”
“뭐야 임마!”
장몽두리는 깜짝 놀라 언성을 높였다. 어느 놈이 감히 장몽두리가 하는 일을 방해를 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남한산성 하고도 형무소다. 죽으려고 색
쓰냐.
남한산성 장몽두리는 공식적인 계급이 이병 장무수 이었지만, 여기선 형무소장 다음 가는 최고의 실력자이며 권력자였다.
그런데 감히 장몽두리가 하는 일을 방해를 해, 그것도 하늘같이 떠받드는 형무소장 아니 옥황상제보다 한 계급 더 높은 오말구 대령님의 명령을 받자와 목숨을 걸고 하는 공사를 방해하다니. 어느 놈인지는 모르지만 넌 이제 죽었다.
작업반장 배동태의 이야기로는 쥐새끼 같이 생긴 말라깽이 한 놈이 작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형무소장은 파노라마를 만들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다섯 리어카의 적벽 돌을 구입해서 장몽두리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말라깽이가 그 비싼 적벽 돌을 못 쓰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장몽두리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고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끄응, 앞장서거라!”
장몽두리가 일어서며 작업반장에게 말했다.
어젯밤 일이었다. 형무소장 오말구 대령이 아무도 모르게 장몽두리를 그의 사무실로 불렀다.
“어이 몽두라, 자재는 내가 구해 줄게. 멋지게 해봐라, 니 솜씨 하나는 끝내주잖아.”
형무소장 오말구 대령이 장몽두리를 은근히 꼬시기 시작했다.
“소장님, 적벽돌 구하기가 어려워서…”
“야야, 걱정 마. 내가 알아서 구해다 줄게, 공사나 잘해.”
장몽두리는 오말구 대령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국방부에서 높은 사람들이 형무소를 시찰을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남한산성 형무소장 오말구 대령은 승진 서열에 들어가 있는데 이번 시찰단에게 점수를 잘 따야 승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장무수 이병의 능력과 감자들을 다루는 지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오말구 대령이 남한산성의 공식적인 형무소장 이라면 장몽두리는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 다른 세계의 형무소장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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