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는 심한 구타와 굶주림, 그리고 혹한 속에 계속되는 야간작업에 있었다. 그 부대는 감자들의 집합소라고 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두 대의 덤프트럭은 라이트도 켜지 않고 위병소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들어왔다. 감자들은 그 길로 신동협 병장이 있는 부대로 치고 들어왔다. 그들은 연병장에 진을 설치했다.
감자들은 무장을 했고 살기가 등등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단으로 탈영한 그들의 행동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순식간에 전 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무장을 한 병사들과 탈영자들의 연병장에서 정면으로 대치하는 숨 막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뒤따라 온 공병 중대장이 나타나서 사과를 하고 대대장이 그들의 분노를 달래려 무진 애를 썼다. 잘못하다가는 수많은 인명이 살상을 당할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제10편 장몽두리
군대의 가장 큰 장점은 총명한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데 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병사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가 쥐어 있었다. 그는 곡괭이 자루를 질질 끌며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주목!”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칼날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니들, 나를 알겠지? 내 이름은 장몽두리야. 감자(수감자출신)들아! 내 이름은 들었겠지?”
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연병장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탕, 탕.
그는 곡괭이 자루로 단상의 바닥을 소리 나게 쳤다.
“아, 조용조용! 뉘들이 여길 온 것은 나를 찾아 왔으렷다. 장몽두리가 여기 있는 것을 용케도 알아냈구나. 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뉘들이 다시 한 번 같이 가자고 권하면 또 한 번 탈영할 생각이다. 남한산성은 내 집이야, 17년 동안 그곳에 드나들었거든. 그런데 탈영하는 이유나 알고 가자.”
어둠 속에서 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외치기 시작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응, 그래그래, 그게 이유야? 알았어.”
그는 몽둥이를 질질 끌며 단상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단상 아래 초조하게 서 있는 중대장을 만나고 대대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 동안 시간이 흐른 후, 그가 다시 단상 위로 올라왔다.
“대대장님과 중대장님께서 감자들의 요구 조건을 모두 수락했다. 그리고 오늘 밤 일은 없는 것으로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 가지 묻겠다, 감자들아, 오늘밤에 귀관들은 중대 밖을 나온 적이 있는가?”
“없슴다아!”
“그려, 그게 정답이야. 감자들은 일찍 잠자리에 든 거여, 그렇지?”
“예에!”
“그리고 얌전하게 잠을 잤지? 안 그르냐?”
“맞슴다아!”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오늘 밤 니들이 사전에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단으로 탈영한 것은 잘못이여, 안 그러냐?”
“맞슴다.”
“남한산성 갈래, 빳다 맞을래?”
“빳다 맞겠슴다.”
“뭐야, 빳다 맞겠다고? 좋았어, 엎드려! 오랜만에 운동 좀 하자.”
병사들이 연병장에 나란히 엎드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몽둥이가 사정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감자들이 짚단처럼 픽픽 쓰러졌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 소리를 내는 병사들은 없었다.
그들은 전원 감자였다. 순간적인 불만으로 사고를 쳐서 그 지긋지긋한 남한산성으로 또 한 번 갈 뻔했는데 장몽두리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한 것이었다. 남한산성 감방장 출신인 장몽두리의 뛰어난 능력이 사건을 무사히 수습한 것이었다.
장몽두리를 찾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감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공병대 덤프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중대로 귀대를 했다.
싸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아.
전투와아 전투 속에에 맺어진 전우야아
그들은 씩씩하게 군가를 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조금 전처럼 불평과 불만에 쌓인 집단은 아니었다. 씩씩하고 건강한 젊은 병사들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윤용한 중대장은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고 칙사 대접을 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만리 중대에서도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우명식 이병이 말 번 보초 근무를 마친 후, 장전된 실탄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둔 것이었다. 말 번 근무를 마친 사병은 반드시 실탄을 제거하여 주번에게 반납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막사 청소 당번인 주영창 일병이 격발 점검 중 실탄이 발사되어 오른쪽 눈 부위를 뚫고 나갔다.
중대는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해 버렸다. 중대장 지휘 하에 전 중대원이 기합을 받았다. 동지섣달 꽁꽁 얼어붙은 한 밤중에 팬티만 걸친 채 발가벗고 연병장에서 누웠다.
초저녁부터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감대로 사병들이 죽기보다도 더 싫어하는 기합, 가장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가 시작되었다.
십자가란 팬티 차림으로 눈 덮인 연병장에 예수님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기합이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며 5파운드짜리 몽둥이가 날아왔다.
차라리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가 얼얼하도록 얻어터지는 게 훨씬 좋지.
얼굴에 떨어지는 진눈깨비를 피하려 고개를 돌리면 가슴 위에 떨어졌다. 처음에는 제법 견딜 만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떨어지는 진눈깨비가 바늘처럼 피부 속을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젠, 더 이상 피할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은 생전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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