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19회
킬러 밸리 제19회
  •  기자
  • 입력 2008-07-17 16:03
  • 승인 2008.07.17 16:03
  • 호수 742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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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한라산, 벽돌장 칠은 응답하라. 여기는 한라산.”

상황실 무전병이 7중대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중대와의 무전 교신은 여전히 두절되어 있었다.

“무전기가 죽어 있슴다, 키를 껐습니다.”

상황실 무전병인 정재철 병장이 보고를 했다.

“뭐야! 무전기를 죽여?”

전무한 대대장은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도꾸, 그 자식은 뭐하고 있는 거야? 어디 가서 나자빠져 있는 거야. 개새끼! 무전기 일루 줘. 여기는 한라산, 벽돌장 칠은 응답하라. 아, 아아! 여기는 한
라산, 벽돌장 칠은 응답하라. 이런 미친 자식!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야 부관!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느닷없이 부관 황정태 대위의 무릎을 워커 발로 까버렸다.

“무전병, 6중대장에게 물어봐. 7중대와 교신이 있었나.”

부관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무르팍을 손바닥으로 싹싹 문지르며 다시 6중대와 교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6중대 무전병도 7중대와는 교신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 놈의 새끼들, 나무 그늘에 처박혀 자고 있구먼. 6중대와 8중대는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데 이것들이 무전기까지 죽이고 나자빠져 자? 요런 쳐 죽일 놈들! 야 부관, 헬기 띄워! 이놈의 자식들 찾기만 해봐라, 내 손으로 죽여 버릴 테니. “

전무한 대대장은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곧 전무한 대대장을 태운 헬기는 7중대가 최종 보급품을 수령한 지점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무전을 교신했다.

“야 7중대! 지금 어디 있나? 7중대는 응답하라.”

대대장이 무전기를 잡고 직접 호출을 하였으나 7중대는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시계 바늘은 어느새 1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무한 대대장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수를 저쪽으로 돌려!”

“거긴 안 됩니다, 작전 구역 밖입니다.”

부관이 황급히 대답을 했다.

“킬러밸린가? “

“그렇습니다.”

“누가 알아? 멍청한 자식들이 그쪽으로 갔을는지?”

“작전회의 시 그쪽으로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절대로.”

부관 황정태 대위가 자신 있게 말했다.

“좋아! 돌아가자. 7중대장을 당장 소환시켜. 이놈의 자식을 죽여 버려야지. 군법회의도 필요 없어,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H21 헬기는 대대 본부를 향해서 기수를 돌렸다.

“망할 놈의 세상! 7중대가 감쪽같이 없어졌어, 이게 말이나 돼. 어디 숨은 거야? 막강한 7중대가 유령 중대가 되다니 누가 믿겠어? 내, 이놈의 자식들을
찾기만 해봐라.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 테니.”

전무한 대대장은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다. 축 처진 눈꺼풀과 창백한 얼굴이 피곤에 지쳐 파리하게 보였다. 잠 속에서도 그는 불
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어디로 갔지…”

부관 황정태 대위가 살며시 대대장의 철모를 벗겼다. 영감쟁이가 요즘 어떻게 신경질을 부리는지 죽을 맛이었다.

8중대 지역은 지금 한창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먹구름 속에서 A10 경비행기는 거대한 독수리처럼 검은 그림자로 나타났다. 그리고 적의 매복지역을 발칸포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따르륵 따르륵 하고 퍼붓는 발칸포는 어두운 밤하늘에서 두 줄기의 붉은 점선이 되어 쏟아졌다. 아니 두 줄기 붉은 사다리
가 되어 떨어졌다. 마치 하늘로 가는 거대한 길처럼 보였다.

신동협 병장은 발칸포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개미허리가 언젠가 말했었다. 옆 동네에서 잔치판을 벌릴 때는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기회는 이때였다. 그러나 신동협 병장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개미허리 때문이었다. 비록 개미허리가 자기 한 몸은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오늘만은 어쩐지 불안했다.

개미허리는 신동협 병장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와 통신이 두절되고 있었다. 아니, 개미허리의 소속 부대인 7중대가 통째로 증발한 것이었다.

갑자기 장몽두리 생각이 떠올랐다. 신동협 병장에게 개미허리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장몽두리 이었다. 장몽두리는 무사히 제대를 했을까? 아니면 또 한 번 남한산성에 갔을까? 그 모든 게 기껏해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까마득한 옛 이야기 속의 전설처럼 느껴졌다.


구만리38교

남자들만의 의리와 눈물이 함께 있는 곳.

월남에 온지 벌써 한 달, 아직도 신동협 병장은 구만리 중대에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구만리에 있었을 때 앞서 월남으로 간 전우들이 편지를 보내오지 않는 것을 비난한 적이 있었다.

신동협 병장은 한 달 전 구만리 중대 시절이 추억처럼 떠올랐다.

“단결! 병장 신동협은 월남으로 전출 명령을 받았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단결!”

신동협 병장은 관물이 든 더블 백을 CP 바닥에 내려놓고 구만리 중대 중대장 윤용한 대위에게 신고를 했다.

“신 병장, 잘 가게. 그간 고생 많았어. 우리 부대도 곧 갈 거야. 자꾸 차출만 하니 어쩔 수 없잖아. 내 맘 이해하겠지?”

“예, 이해함다.”

“그 쪽은 이곳과 사정이 다르다. 목숨 걸고 하는 전쟁터야. 도착하거든 바로 그곳 사정을 자세히 전해다오. 남아 있는 우리 애들을 위해서 말이야. 알겠
지?”

“예, 알겠슴다. 도착하면 바로 편지부터 쓰겠슴다.”

“에또, 그리고 말이야. 너, 외상값 떼어먹은 거 없지? 춘자네 떡값 줬어? 오팔팔 빵집은? 정문 앞 곰배팔이네 닭 잡아먹은 거 없지? 지난주에 떠난 멍게 자식 때문에 나는 아직도 홍역을 치르고 있단 말이야. 왜, 하필이면 곰배네 닭은 잡아 처먹어? 온 동네 닭을 모두 두고 말이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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