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18회
킬러 밸리 제 18회
  •  기자
  • 입력 2008-07-10 14:04
  • 승인 2008.07.10 14:04
  • 호수 741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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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곰과 백곰은 이름처럼 두 사람 모두가 키가 큰 거구의 덩치였다. 안정수 하사는 별명처럼 얼굴이 흰 미남자였고 최수경 하사는 얼굴이 새카맣게 탄 검
둥이처럼 생긴 청년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단짝으로 무척 친한 사이였다.

중대장 박동수 대위가 흑곰을 찾은 것은 그가 이곳의 지리에 가장 밝은 고참이기 때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흑곰이 상황을 파악하자 무전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어이 박 병장, 나 최 하사야. 사주 경계하고 자리에 앉아. 움직이면 모두 죽는다. 내 말 알아듣겠지? 주변에 돌무더기나 나무 가지 꺾어진 게 보이나?”

“관목 가지가 꺾어진 게 보인다, 오바.”

“부비트랩 지역 표시야,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

“좌측에 꺾어진 관목 가지 사이로 인계 철선이 보인다. 전진이 불가능하다. 구조 요청 바란다, 오바.”

“발 밑을 조심해. 밑에도 있을지 모른다.”

“어어엇! 이건 또 뭐야? 참말로 미치겠네.”

“뭐야?”

“사방이 거미줄이다. 꼼짝도 못하겠다.”

“2소대가 방금 출발했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른쪽 갈대밭으로 빠져 나와 능선에서 대기하라.”

“알았다. 지시대로 움직이겠다.”

“조금 전에 통과한 길로는 절대로 나오지 마라. 거긴, 벌써 거미줄을 쳤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적은 가까이 에서 노려보고 있다. 콩은 소수야. 겁내지 말고 엄폐물에서 대기하라.”

7중대장 박동수 대위의 두 손이 와들와들 떨리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겨우 귀국 2주를 앞두고 백곰이 허망하게 죽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소대 1분대, 정찰조가 피투성이가 되어 철수해 왔다. 부비트랩에 당한 분대원들은 한마디로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판초우의에 둘둘 말아 끌고 온 백곰의 시신은 금방 배를 갈라놓은 돼지와 같았다. 그의 복부는 갈기갈기 찢어진 누더기로 변해 있었다. 핏방울이
아직도 찢어진 복부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곰은 못 다한 생의 미련 때문에 가늘게 실눈을 뜨고 열대의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캠핑이라도 나온 것처럼 희희낙락했던 중대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병사들은 처참하게 죽은 전사자의 시신과 부상자들을 보는 순간, 눈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우선 박동수 중대장부터 이를 북북 갈기 시작했다. 박동수 대위는 순박하고 단순한 사람이었으나 일단 분노하면 이성을 잃고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성미였다.

전사한 분대장을 대신해 박상용 병장이 정찰 결과를 보고했다. 전면에 보이는 관목 숲을 통과하면 세 그루의 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는 두 채의 농가가 나타난다고 했다. 농가 뒤편으로는 실개천이 흐르는 개활지가 있는데, 그 지점에서 보면 좌측으로는 킬러밸리로 가는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고 했다. 오
솔길의 전면에는 낮은 언덕이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박상용 병장이 그곳에서 당한 이야기를 눈물을 흘리며 풀어냈다.

중대원 모두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주체할 수 없는 증오심 때문에 중대 전체가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을 깐다.”

박동수 대위가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

“안됩니다 중대장님, 거긴 작전 구역 밖입니다.”

1소대장 김영길이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이런 쪼다 같은 친구. 누가 거기 눌어붙자고 했어? 치고 빠지는 기야.”

박동수 중대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그는 미친놈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쪽과 맞붙게 되면 어떡하고요?”

“그럼 불알 맞은 수캐처럼 꽁지 빠지게 도망치잔 말이야? 난 못해, 죽어도 못해! 백곰을 봤잖아, 또 정 상병은 어떡하고?”

소대장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박동수 중대장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을 말이다. 그는 킬러밸리 입구에 매복을 하자는 것이었다. 개활 지의 오솔길은 킬러밸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로 오늘밤 그들이 나오면 매복으로 치고 헬기로 뜨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영길 소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그는 작전 구역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개활지에서 적과 조우하는 경우, 괜히 화를 자초하게 된다고 했다. 미친개에게 물린 셈치고 철수하자고 박동수 중대장을 달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박동수 중대장의 광기를 꺾을 수가 없었다. 박동수 대위의 고집도 나름대로 꺾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안정수 하사의 전사보다 소총수 정우병 상병의 행방불명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부비트랩에 걸리는 순간, 적과의 교전도 없이 분대 후미에 있던 소총수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의 행방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전우애였다.

제 2소대가 그 부근의 숲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으나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야 무전병, 무전기 죽여. 별명이 있을 때까지 상부와 교신을 금한다, 알겠지? 출발!”

박동수 중대장이 명령을 내렸다. 한편 대대장은 7중대의 전황이 궁금했다. 그들은 상황을 보고하는 교신이 없었다.

“어이 부관, 7중대는 지금 어디 있나?”

대대장 전무한 중령이 부관 황정태 대위에게 물었다.

“13시 20분에 교신한 후 아직까지 보고가 없습니다.”

부관 황정태 대위가 대답했다.

“7중대의 현재 위치는 어디야? 도꾸 새끼, 왜 보고하지 않는 거야?”

대대장이 화를 내며 부관에게 고함을 질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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