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주말이면 대전에 살고 있는 엄마에게 간답니다. 아직은 엄마 품을 멀리 떠나지 못하는 애송이고요.
지난번 보내신 편지는 같이 근무하는 미스 리가 내 사연 날아날아 어디 메에 자리하나 하고 큰소리로 읽어 우리 모두는 무척 웃었습니다. 아니, 오해는 마시고요. 수 맹호의 편지를 놀리거나 비웃는 건 절대로 아니랍니다.
이곳에서는 수 맹호의 편지가 제일 인기가 있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월남에서 받은 편지 중에서는 제일 재미가 있데요.. 저는 수 맹호의 편지를 성경책 갈피 속에 끼워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읽어본답니다. 저는 수 맹호와의 이해할 수 없는 인연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전에는 결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수 맹호의 고향은? 부모님은? 다음 번 편지에는 좀 더 자세히 수 맹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다음 편지에도 갈보야! 하고 욕을 하면 그냥 안 둘 거예요. 혜원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아세요? 혜원도 화를 내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어흥! 우리 집 조카애들이 고모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아세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님께 수 맹호의 건승을 기도드립니다.
그럼 안녕!
회덕에서 혜원이 수 맹호에게
추신:저는 아무에게나 함부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용서하지요. 주인을 제대로 찾아 왔으니까요. 제가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개미허리는 편지를 손에 들고 가슴에 꼭 껴안았다. 그녀의 착한 마음씨와 따뜻한 체온이 가슴속에 전해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강혜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그녀가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녀는 미인은 아닐지라도 마음만은 아주 착한 아가씨였다. 그는 편지를 접어 소중하게 전투복 상의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수첩을 찢어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어이 2소대장, 애들 멀리 가지 말라고 혀.”
7중대장 박동수 대위가 2소대장 장영숙 중위에게 말했다.
“쩌거, 야자수 꺼정만 수색하라고 했시요.”
2소대 1분대는 첨병 분대로 중대 전진 통로를 정찰하고 있었다.
“저길 보라고. 저기, Y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것 같은 길이 보이지? 우린 저 밑에서 올라왔어. 저 위쪽은 6중대 구역이야. 그리고 저기 보이는 직선 오솔길부터는 우리 작전 구역 밖이야. 내 말 잘 알겠지? 저기부터는 재수 없는 킬러밸리야.”
“킬러밸리? 기분 나쁜 이름이야.”
정영숙 중위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저긴 말이야. 프랑스가 월남을 지배했던 당시, 프랑스군 2개 연대가 저길 치기 위해 들어간 모양이야. 전차와 포를 동원하고 중화기로 무장한 정예 연대가 한창 신나게 파티를 했지. 그런데 갑자기 우기를 만난 거야. 전부 진흙탕 속에 빠져 꼼짝도 못했지. 적들이 그냥 두겠어? 전부 꽥꼴락 했다. 쪼다 같은 새끼들… 그래서 킬러밸리 라고 했다더군. 저 속에 뭐가 숨어 있는지 알게 뭐야.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암 상관없고말고. 적의 사령관이 발가벗고 날 잡아 잡 수해도, 난 거길 갈 생각이 없어. 왜냐? 우린 지금 휴양 중이거든.”
7중대장 박동수 대위가 호기롭게 익살을 부리자 1소대장 김영길 중위와 3소대장 홍영식 중위가 큰소리로 따라 웃었다.
7중대장 박동수 대위. 그는 키가 185cm의 거구에다 씨름 선수 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와 토마토처럼 둥글넓적한 얼굴, 그리고 검붉은 입술에는 항상 너털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고향이 원주 부근의 농촌으로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흠은 산돼지처럼 우직하다는 성격상의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군대 생활이 아주 체질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
박동수 대위는 사병들과 어울려 내기를 잘하는데 특히 말굽 던지기나 트럼프, 화투, 단검 던지기를 잘했다. 사병들은 그런 그를 겉으로는 흉을 보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척 따르고 좋아했다.
“야 도꾸 온다, 도꾸.”
사병들은 그를 ‘부루도꾸’ 라고 불렀는데 한번 결정하면 불독처럼 앞뒤도 가리지 않고 우직하게 몰아붙이는 성격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는 우직하나 사병을 괴롭히는 지휘관은 아니었다.
꽈앙.
갑자기 전방 500m 지점의 관목 숲에서 날카로운 폭음이 터져 나왔다. 폭음 소리는 무심히 졸고 있던 한낮의 대지를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뭐야, 뭐? 저건 수색조 아냐?”
박동수 중대장이 놀라서 소대장들을 쳐다보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대는 명령이 없이도 장비를 챙겨 들고 재빨리 사주 경계에 들어갔다.
“야, 무슨 일이야?”
정영숙 중위가 무전기를 들고 다급하게 외쳤다.
“당했슴다. 소대장님! 당했슴다.”
“누구야? 박 병장이야?”
“예, 분대장님이 부비트랩에 걸렸습니다. 사망 1명, 행불 1명, 부상자 다수.”
“이런 병신들! 니들이 신병이야, 어린애냐. 그 따위에 당하게. 뭐에 걸렸나?”
“인계 철선에 걸린 수류탄.”
“알았다, 무전기 키 열고 대기해.”
첨병 정찰조가 V. C가 설치한 부비트랩에 걸린 것이었다. 분대장 안정수 하사가 즉사하고 소총수 정우병 일병이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야, 흑곰 최 하사 불러. 최 하사!”
중대장이 부르자 최수경 하사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평소 중대장 박동수 대위는 흑곰 최수경 하사를 싫어했다. 그는 최수경 하사와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를 징그러운 뱀처럼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들은 일진으로 이곳에 와서 하사까지 진급한 고참들이었다.
백곰 안정수 하사, 흑곰 최수경 하사, 그리고 무전병 김이수 하사는 이곳 지리에 밝은 중대 최고참들이었다. 그런데 방금 안정수 하사가 당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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