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7중대는 중대장 박동수 대위 이하, 전 대원이 마치 캠핑이라도 나온 듯 느긋한 마음으로 야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보이 스카우트 기본 훈련이나 가을 소풍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조금은 들뜬 기분에 젖어 있었다. 헬기에서 랜딩 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소풍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기 전에는 할매네 집 부근에서 3일 동안 호화판으로 지내기도 했다.
7중대는 무전병 김이수 하사의 말처럼 연대장이 지난번 작전 때, 풋갓에서 고생을 했다고 휴양을 보내준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평온했다.
병사들은 아직까지도 할매네 집에서 같이 놀았던 아가씨들의 야들야들한 젖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할매네 집은 포탄 박스와 씨레이션 마분지로 지붕을 가린, 정말 엉성하게 만든 초라한 움막이었다. 움막 안은 목침대 크기의 방을 다섯 개나 만들어 놓았는데, 바로 옆방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신음 소리와 콩까이 들의 꿍꿍거리는 코맹이 소리가 모두 들렸다.
야, 너 다 되어 가냐? 하고 옆방에서 물으면, 콩까이 들의 교성과 함께 아직 안 끝났어, 하고 대답하곤 했다.
할매네 집에는 자기 동생을 잡아먹은 뱀을 키우고 있는 이 엔이라는 콩까이도 있었다. 그녀는 밤에 뱀과 같이 동침한다고 했다. 이 엔의 어린 동생은 첫 돌도 지나지 않은 꼬마였는데 야자수 밑에서 혼자 놀고 것을 지나가던 뱀이 냉큼 집어 삼켜 버렸다고 했다. 그런 뱀을 이 엔은 동생처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거대한 뱀은 길이가 2m가 조금 넘는데 이빨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뜨겁게 푹 삶은 무를 뱀의 입에 물려 놓고 재빨리 잡아 당겨 이빨을 모두 뽑았다고 했다.
큰 뱀은 보기에도 몹시 징그러웠다. 번들번들한 찬피동물의 촉감은 조금만 피부에 닿아도 얼음 조각처럼 섬뜩하고 징그러웠다.
병사들은 그녀의 뱀을 목에 걸고 기념 촬영을 했다. 이 엔은 한 번 사진을 찍는데 군표 2달러를 받았다.
멀리 남쪽 8중대 지역에는 한낮의 무더운 열기 속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검은 연기가 먹구름처럼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105mm의 포성과 함께 하늘을 선회하며 사격하는 헬기의 발칸포 소리, 그리고 M16 소총의 다급한 난사 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북쪽 6중대 지역에서도 검은 연기와 함께 붉은 화염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대낮의 열기 속에서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7중대는 아직도 V. C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중대장 박동수 대위가 철모를 벗어 들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부중대장에게 간부 대원들의 소집을 명령했다.
그들은 작전 도면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수색 구역을 다시 한 번 점검하기 시작했다.
도꾸중대장(8)
-어리석은 지휘관은 자신은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하를 죽일 뿐..-
털 털털.
갑자기 서편 야산 위로 헬기 한 대가 불쑥 나타났다.
“야! 보급 헬기다. 자식들, 제법 약속을 잘 지키는데…”
임태호 상병이 소리치며 헬기의 착륙장소로 달려갔다. 갈대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각 소대의 전령들이 중대 본부로 모여들었다. 헬기편으로 고국에서 보낸 우편물이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헬기는 랜딩을 하자, 바로 보급품을 하역하기 시작했다. 레이선 상자, 각종 탄약, 의약품, 급수통, 신선한 과
일, 우편 행낭 등이 하역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이 고국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편지 아이가? 울 어메가 태호 잘 있나, 편지 보냈데이.”
임태호 상병은 편지 한 통을 손에 들고 껑충껑충 뛰면 흔들었다.
“김 하사님 애인한테서 편지 왔심더, 받구마.”
임태호 상병은 개미허리에게 다가오더니 무엇이 그리도 급한 지 편지를 훌쩍 집어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개미허리는 임태호 상병의
짓궂은 장난을 익히 아는지라 속지 않으려 관심이 없는 척 했다.
“제기랄! 편지 올 때가 있어야지.”
개미허리는 지난번에 고국에 장난삼아 써 보낸 펜팔을 벌써 잊고 있었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편지 봉투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러나 편지는 분명히 하사 김이수 앞으로 보내온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달필인 여자의 글씨로 말이다. 누가 보낸 것일까? 혹시 임태호 장난?
그는 흥분을 감추고 편지의 발신인을 찾아보았다.
강혜원! 개미허리는 그녀의 이름을 보자 짜릿한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세상에 그녀가 답장을 보내다니… 개미허리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찢고 편지를 끄집어냈다.
수 맹호에게
내 사연 날아 날아 어디메에 자리하나.
산 넘고 바다 건너 멀고 먼 나라.
수 맹호 만나거든 소식 받아 오렴. ‘
수 맹호가 제게 보낸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저는 갈보가 아니고 회덕면 보건소에 근무하는 간호원 강혜원 입니다.
한 달 전, 군청 여직원 모임 단체인 백합 회에서 월남 장병들에게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했답니다. 저도 그 뜻 있는 일에 기꺼이 동참을 했지요. 제 주소가 수 맹호의 손에게 전달된 것은 모두가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답장을 쓴 답니다.
저는 고향이 대전이고요, 1남 2녀 의 막내딸이랍니다. 그러나 버릇이 없는 막내라고 흉보지 마세요. 대전에는 오빠가 엄마를 모시고 있고 저는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모두 교회에 다녀요. 혜원도 물론이고요.
수 맹호께서는 주님을 믿지 않으세요?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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