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중대가 키가 큰 관목 숲을 빠져 나오자 갑자기 눈앞에 갈대로 뒤엉킨 늪지대가 나타났다. 7중대가 전진하고 있는 오른쪽 저 멀리 안개 속에는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킬러밸리의 산 그림자가 검은 장막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곳은 7중대의 작전 구역 밖이었다.
7중대는 2열 횡대로 산개 하여 늪지대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김영길 중위의 1소대가 소총을 머리 위에 치켜들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허우적거리며 건너고 있었다.
M16 소총수는 80발의 실탄과 수류탄 3개, LMG 사수는 100발의 실탄을 휴대하고 있었다. 대인 살상용 크레모아는 분대별로 3개씩 휴대하고 M79 유탄 발사기와 타식 조명도 가지고 있었다. 중대의 기본 장비치고는 대단한 화력이었다.
중대가 늪 속을 통과하여 다시 울창한 관목 숲에 집결하자, 머리 위로 요란한 폭음과 함께 수송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을 가린 밀림 사이로 이슬비가 내렸다.
“변 일병, 이기 뭐꼬? 해가 쨍쨍 나는데 우째 요래 비가 오노?”
임태호 상병이 신기한 듯 물었다.
“낮은 구름이 지나가겠지요.”
변을수 일병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흠흠, 이게 무슨 냄새지?”
변을수 일병이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가랑비가 내리자 무슨 약제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경유일까?
“야 임마가 와 이리 똥개 맨쿠로 낑낑 그래 쌌노? 변 일병, 니 뭐 잘못 묵었나?”
임태호 상병이 야유하듯 이죽거렸다.
“비에서 냄새가 나요.”
변을수 일병이 젖은 군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자슥, 가랑비에서 무슨 냄새가 나노?”
임태호 상병이 코를 쿵쿵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이거! 이기 그 기다.”
“그게 뭔 데요?”
“V. C들이 정글 속에서 양식할라꼬 농사 안 짓나. 그걸 미군 아이들이 비행기로 휘발유를 확 뿌려 불 찔러 뿌리는 기라. 고라면 콩들이 뭐 묵고 살겠노?
배가 고파서 정글 속에서 안 기나오겠나 그자? 식량이 없는데 지들이 우째 숨어 있겠노. 그기 미군들 작전인기라.”
“임태호, 니 또 구라치제, 그거 어디서 들었노? 내사 마 그런 말 몬 들었다.”
가랑비 속에서 씨레이션 비스킷을 먹고 있던 권영준 병장이 비웃으면 말했다.
“5중대 정 상병이 그라는데 저거 지역에도 V. C들이 식량 할까봐 미군들이 헬기로 논에다가 기름을 뿌리고 화염 방사기로 확 싸질러 뿌렸다 카던데. 분명히 그래 말했다꼬.”
“빙신 자슥, 아무리 미군들이 돌대가리지만 우째 이 너른 정글을 비행기로 기름을 뿌리고 다 태우겠노? 말도 안 되는 소리.”
권영준 병장은 임태호 상병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라면 전마들이 뿌리는 기 뭐꼬?”
“비행기가 빵구가 나서 기름이 새는 긴지 누가 아노, 히히히…….”
그랬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7중대가 작전 중인 지역에서는 비행기가 살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미군들은 약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약제에 경유를 섞어서 살포하고 있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풋갓 비행장에서 이륙한 미군 비행기는 빈케를 중심으로 앙케 지역에 많은 량의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를 뿌렸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대다수의 병사들은 임태호 상병처럼 미군들이 베트콩의 거주 지역의 논밭의 작물을 태우기 위해 기름을 살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땐 그렇게 알고 있었다.
중대가 밀림 지역을 빠져 나오자 어느새 시계 바늘은 1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대의 강렬한 태양이 키가 큰 갈대밭을 용광로처럼 후끈하게 달구어 놓았다. 조금 전 밀림 속에서 가랑비에 젖어있던 군복은 어느새 땀으로 뒤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두터운 방탄조끼 속으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정지, 그 자리에서 20분간 휴식!”
병사들은 나무 그늘에 누워 방탄조끼를 베고 휴식을 취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사들은 탄띠에 매달아 놓은 수통을 베고 누웠었다. 병사들이 누울 때 수통은 멋진 베개가 되었다.
그런데 6중대 무전병이 그것을 베고 누워 사고를 친 뒤부터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탄띠에는 4개의 수통과 M16 실탄, 그리고 엑스밴드에는 2발의 수류탄이 달려 있었다. 어떤 병사들은 크레모아도 달고 있었다. 그 재수 없는 무전병은 베고 있던 탄띠에 걸어 놓은 수류탄의 고리를 잠결에 손가락이 걸려 뽑은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무전병과 같이 누워있던 분대는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털 털털…
갑자기 중대의 머리 위로 H21 헬기가 불쑥 나타났다.
“헤이, 깜둥이 잘 지냈어?”
임태호 상병이 철모를 벗어 흔들자 헬기의 옆구리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던 흑인 기총 사수가 하얀 이빨을 활짝 드러내며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병사들은 두 손을 흔들며 답례를 보냈다.
7중대는 아직도 사기가 왕성한 상처받지 않는 호랑이였다. 작전이 개시된 지 벌써 일주일, 현재까지 중대는 전과도 없고 피해도 없었다. 이대로 라면 연대장의 뜻에 꼭 맞는 작전이 될 것 같았다. 인근 양쪽 측면에서 작전을 펴고 있는 6중대와 8중대가 대대에 전과를 보고하는 무전을 청취할 때마다 중대원들은 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남의 나라 전쟁에서 전과보다는 희생이 없다는 게 더 잘하는 작전이지.
인근에서 작전 중인 6중대는 적 사살 6명과 중화기를 포함해서 13정의 무기를 노획했으나, 사병 3명이 전사하고 부상자도 다수 있다고 했다. 6중대는 중대원 모두가 격정적인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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