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 깡패가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
신동협 병장은 말없이 벙커를 나왔다.
벙커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타오르는 한낮의 열기만이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수송부 벙커 뒤편에는 많은 병사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공팔, 고래잡이 포수 맹도기, 헤비급 복싱 선수 양대철 등 손무삼 패거리들이 모여서 벙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왜들 그러냐?”
인사계 강 상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부관 신록 중위가 나타났다.
“개미허리와 부두 깡패가 맞붙는다며? 그냥 두면 한 놈은 꾀꼬닥 할거야, 말려야 되지 않겠어”
“말려서 될 일이 아니오, 가만히 계셔.”
고래잡이 포수 맹도기가 부관을 보고 말했다.
건너다보이는 통신반 벙커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한참 후 누군가 벙커 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개미허리 김 하사였다.
그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병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뭘 봐 임마, 날아가는 파리 보지라도 봤어? 공팔 가봐, 꼬봉이 찾는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어슬렁거리며 휑하니 취사반으로 가 버렸다.
손무삼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 통신반 벙커로 달려갔다. 인천부두 깡패두목 손무삼 하사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어떻게 당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외부로 드러나는 상처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동을 하지 못했다. 손 하사는 그 때부터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앓아누웠었다.
그날 밤 미군 58공병대가 적으로부터 기습을 받았다. 앙케로 가는 19번 도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적의 공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곧 사단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포대에 나돌기 시작했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더구나 7중대에 파견된 유종석 병장이 매복 중 부상으로 후송되자 개미허리 김 하사가 그 후임으로 헬기를 타고 A포대를 떠났었다.
개미허리가 소속된 7중대의 벙커 안은 목욕탕 속의 한증막처럼 후텁지근하고 답답했다. 끈 적하고 진득한 기름 같은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 내렸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휴대용 모기약을 잔뜩 몸에 처발랐으나 모기는 허벅지를 물었다. 모기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보지만 지독한 놈들은 모포를 뚫고 또 피를 빨았다.
무더위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벙커 지붕 위에는 매복을 나간 전우 이외의 병사들이 올라앉아 잡담을 하며 더위를 시키고 있었다.
검은 벨벳 같은 장막을 드리운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잔별들이 흰 모래알처럼 흩어져 졸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 은하수를 베고 누운 십자성이 얼굴을 내밀자, 병사들은 두더지처럼 벙커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남호구 병장은 야전용 전화기를 목침대 위에 올려놓고 머리에 베고 누웠다. 방카 C유 같은 끈적끈적한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전화기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는 더위 때문에 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야전용 전화기의 벨이 울기 시작했다. 남호구 병장이 전화기를 베고 자는 것은 긴급한 명령 때문이었다. 그는 잠에 취한 채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너 누구냐?”
느닷없이 위압적인 음성이 튀어 나왔다.
“맹호, 7중대 남호구 병장임다.”
남호구 병장은 차갑고 냉랭한 음성에 놀라 재빨리 대답했다.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 치고 반가운 소식이 없었다. 돌발적인 사고나 작전명령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준비됐냐?”
상대는 조급하게 서두르며 신경질을 부렸다. 어물쩍하다가는 날이 새면 조인트가 묵사발이 될 것이다.
“준비 완료.”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 벙커 속에서 준비는 무슨 놈의 준비.
남호구 병장은 대답부터 하고는 목침대 위에 벗어둔 상의 호주머니 속에서 볼펜을 뽑아 들었다. 목에 끼고 있는 수화기를 타고 땀방울이 쪼르르 흐르며 팔꿈치를 따라 팬티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금방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남호구 병장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언제나 M16 소총에 탄띠와 정글화를 함께 묶고 총 끝에는 철모를 씌워 두었다. 비상시에 총만 들고뛰면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작전명령 맹호 A호, 귀 부대 출발시간 04시 52분, 좌표 240339 842663, 출동 인원 140분의 6.”
남호구 병장은 명령을 재빨리 넓적다리에 적은 후에 야광 시계 바늘을 흘긋 바라보았다. 03시 59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중대는 기갑연대 연병장으로 집결을 해야 했다.
“이상!”
전화가 끊어지자 남호구 병장은 어둠 속에서 목침대 밑을 더듬어 랜턴을 찾아 들었다.
랜턴의 스위치를 누르자 어둠이 걷히며 눈앞이 밝아졌다. 그는 재빨리 러닝셔츠로 불빛을 가리고 사타구니 사이를 비춰 보았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넓적다리 위에 황급히 갈겨쓴 볼펜 글씨가 나타났다.
이제 중대는 분초를 다투며 출동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팬티 바람으로 중대 지휘소로 달려갔다.
“중대장님, 작전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뭐, 뭐라고?”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던 불독 박동수 대위는 야전용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랜턴 불빛으로 남 병장의 넙적 다리를 비춰 보았다. 불빛에 누런 색 팬티 사이로 시커먼 불알과 거웃이 나타났다. 중대장은 갑자기 소리쳤다.
“야 당번, 전 부대 비상!”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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