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팔이 그렇게 보내는 돈은 많은 고아들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또 부대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났다. 공팔이 송금하는 돈을 수신하는 사람은 미모의 과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공팔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공팔은 돈에 환장한 놈이었다.
정재만 병장의 이야기는 인천 부두 깡패 출신 손무삼 하사로 이어졌다.
손무삼은 목이 어깨에 달라붙은 아주 천하게 생긴 작자였다. 톡 튀어나온 개구리눈에 고릴라처럼 눈두덩 이가 흉측하게 불룩한 모습, 딱 벌어진 어깨와 땅딸막한 작은 키는 천성이 범죄자의 얼굴이었다. 그는 입대 전에 레슬링을 했다면서 자기가 출전하여 승리한 경기에 대해 떠벌리고 다녔다.
연병장이나 좁은 지하 벙커 속에서 툭하면 몸을 홀딱 뒤집으며 재빨리 일어서는 레슬링의 기본 동작을 보여주며 힘자랑을 하곤 했다. 그런 행위는 일종의 자기 과시와 다른 병사들에게는 위협을 주는 일이었다.
우람한 체격에 비해 제비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는 몸동작은 그가 오랫동안 프로 레슬링을 했으며 그 부분에서는 뛰어난 선수였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대다수가 조금씩 체력을 단련한 병사들이었다.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 쿵후 등 다양한 운동을 한 병사들이 많았다.
태권도 2단 정도는 운동을 했다고 말을 꺼낼 형편이 못 되었다.
병사들이 손무삼 하사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레슬링이 겁이 나서가 아니라, 그의 잔인하고 고약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매사에 행동이 잔인하고 무서웠다.
손무삼은 부대 내의 다양한 인물들을 규합해서 개미허리 김이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와 인사조차 나누려 하지 않았다. 개미허리 김이수가 재파월을 해서 포대로 돌아 왔을 때 그는 손무삼 일당에게‘난, 네가 하는 일에 개입치 않겠다.
너도 내가 하는 일에는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협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손무삼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개미허리를 따돌리고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개미허리는 지난 번개 작전에서 5중대로 파견이 되어 목숨을 잃어버릴 정도로 위험을 당했다고 한다. 개미허리는 지금도 그가 5중대로 파견된 것이 손무삼 일당의 장난으로 믿고 있었다.
작전이 종료되고 자대로 귀대했을 때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공식 보직은 태권도 교관이었다.
그는 남들이 모두 늦잠을 자는 이른 새벽에 기상하여 신병들을 데리고 태권도 기본 동작을 가르쳐야 했다.
실재로 포대에서는 태권도 훈련과 아침 점호가 없었다. 밤새도록 사격한 포수들이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는데 누가 태권도 훈련을 하겠는가? 불만에 가득 찬, 자칭 태권도 19단인 개미허리는 식당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밥을 먹으로 오는 병사들에게 억지로 소금을 먹이거나 쓸데없이 일등병들의 팔의 급소를 잡아 비명을 지르게 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소외된 자의 화풀이였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주부터 깊은 밤중에 꼭 한 번씩 목검을 돌리며 막사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20cm 길이의 작은 단검, 니스를 칠해 윤이 반짝반짝 나는 작은 목검.
단검이 회전하며 깊은 밤중에 우는소리는 소름이 쪽쪽 끼치도록 섬뜩하고 기분이 나빴다. 병사들 사이에는 개미허리가 곧 손무삼 일당을 징계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았다. 오늘 아니면 내일쯤일까?
신동협 병장은 혼자서 벙커 속에 엎드려 모처럼 집에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는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쳐드니 개미허리 김이수 하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뭐하냐?”
“보면 몰라.”
그 동안 두 사람의 비슷한 군대 밥그릇 수와 고향이 경상도 북부지역이라 쉽게 친해졌다. 그리고 금방 친구가 되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계기는 신동협 병장이 장몽두리의 이야기를 했을 때 개미허리는 펄쩍뛰며 반가워했다. 신동협 병장은 개미허리에게 장몽두리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이 급속히 가까워지자 인천부두 깡패가 은근히 신동협 병장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젯밤에 개미허리는 말했다. 인천부두 깡패를 더 이상 그냥 둘 수는 없다고 했다. 번개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인천부두 깡패를 징벌하고 싶어 했다.
“자리 좀 비켜.”
개미허리는 생글생글 웃으면 말했다. 그의 몸에는 섬뜩한 한기가 돌고 있었다.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는데 손무삼 하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김 하사, 나 보자고 했어?”
부두 깡패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러닝셔츠만 걸친 그의 우람한 상체의 근육은 긴장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너한테 진 빚을 갚아야 갰어.”
개미허리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좋아! 나도 원하는 봐야.”
부두 깡패가 깐깐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 부디 쳤다. 부두 깡패의 시커먼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았다. 그는 자기의 격정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개미허리의 얼굴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하얀 덧니를 활짝 들어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 냉소를 띄우며 손무삼을 비웃기 시작했다.
“난 말이야, 돼지 같은 비계 덩어리만 보면 구역질이 나. 왝왝왝! 에헤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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