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 7회
킬러 밸리 제 7회
  •  기자
  • 입력 2008-04-24 10:36
  • 승인 2008.04.24 10:36
  • 호수 730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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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협 병장은 화가 나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성명 구상원, 계급은 병장, 군번 11……. 군번은 나보다 느린데 진급은 더럽게 빨리 했구나. 새카만 쫄다구가 겁대가리 없이 고참을 놀려? 내가 먹은 콩나물 대가리는 네 놈의 두 배는 될 거다.’

신동협 병장은 약이 바싹 올랐다.

‘구만리 38교의 군대 밥이 얼마나 짠맛인지 보여줄까?’

신동협 병장은 인상을 쓰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공팔은 금방 기가 죽으며 눈길을 피했다.

쌔앵, 쌔앵.

갑자기 등 뒤에서 금속성의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 왔다. 신동협 병장은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말라깽이 하사가 무엇인가 빙빙 돌리며 막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마다 금속성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리는 제재소에서 나무를 켤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몹시 거슬리게 했다. 마치 날카로운 이빨로 머릿속의 신경조직을 갈가리 물어뜯어 찢어 놓는 것만 같았다.

“신병이 왔다며, 이 친군가?”

신동협 병장은 거수경례를 했다.

“맹호, 신고합니다. 병장…”

“어허, 그만 그만!”

말라깽이 하사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고향은?”

“영줍니다.”

신동협 병장은 말라깽이 하사를 유심히 보았다.

키는 1m 70cm 정도, 독사처럼 삼각형 얼굴에 쌍꺼풀진 동그란 눈, 생글생글 웃을 때마다 하얗게 드러나 보이는 가지런한 이빨, 아직도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웃음소리가 끝날 때마다 입 언저리가 위로 올라가며 비웃는 듯 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만심과 긍지로 가득 차 있는 칼날 같은 콧날, 호리호리한 몸매와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가느다란 허리를 갖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물 하사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부하들의 말 한마디에 얼굴이 붉어지는 단풍 하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군대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몸놀림이 빈틈없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대다수 병사들은 인간적인 여유와 행동에 어느 정도 빈틈이 있었다.

그러나 말라깽이 하사는 전혀 그런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짐승 같은 몸놀림을 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조심해야겠군.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이런 친구가 가장 재미가 적고 위험한 놈이야. 마치 구만리 38교에서 만난 장몽두리 같은 놈이지.’

신동협 병장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그때 통신반장 정 중사가 벙커로 들어서며 말했다.

“어이 김 하사, 올빼미가 당했어. 누굴 보낼까? 10분 후에 오뚝이가 오기로 했는데, 누가 갈 거야?”

“올빼미가 죽어요, 어떻게?”

말랑깽이 하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수색 중 저격, 그 자리에서 꽥꼴락이야.”

“이런 병신, 안테나를 접으라고 그만큼 일렀는데… 바보 같은 놈!”

말라깽이 하사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신동협 병장은 V. C의 저격병들이 정글 속에서 제일 먼저 안테나를 표적으로 무전병을 저격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통신의 두절로 적을 고립시
켜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지역에 돌입하면 바로 안테나를 꺾어 저격을 피해야 했다. 말라깽이 하사와 정 중사는 막사 속 병사들의 얼굴을 빙 둘러보았다. 무전병들은 숨을 죽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길을 애써 피하려 했다. 그건 신동협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난 아냐, 방금 왔다 말이야. 처음 온 신병을 어떻게 작전 지역에 보내겠어? 이곳 지리도 아직 모르는데…’

신동협 병장은 입 속에서 자꾸만 ‘안 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 상병, 6중대 어때?”

말라깽이 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었다. 우영구 상병은 말없이 전투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포탄 박스로 만든 사물함을 열고 개인 소지품을정리하고 간단하게 유서를 썼다. 그리고 손톱깎이로 머리카락의 일부와 손톱을 잘라 편지 봉투 속에 넣고 봉했다. 그는 말없이 전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헬기를 타고 6중대로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 말라깽이 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전사자의 사물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물함 속에는 윈스톤 담배 한 보루, 전기다리미(귀국 선물용) 한 개, 정글복 두 벌, 국방색 팬티와 러닝셔츠 두 벌, 한 묶음의 편지와 봉투, 여러 가지 색깔의 씨레이션 곽 담배, 노란 색 커피 봉지 열 개, 야전용 모기약 세 병, 돛단배가 그려진 로션 한 병, 씨레이션 깡통 열 한 개, 버드와이저 맥주 한 캔, 막사를 떠나면서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서 넣어둔 유서 한 통 등이 들어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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