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밸리 제6회
킬러 밸리 제6회
  •  기자
  • 입력 2008-04-17 10:41
  • 승인 2008.04.17 10:41
  • 호수 729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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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메오네 집에 좀 다녀오자.”

공팔이 정문 초소에 근무 중인 황정수 병장에게 말했다.

“안 돼 임마. 이 자식은 아침부터 시작이야.”

“잠깐이면 돼.”

“임마, 몸 푸는데 몇 시간 하는 놈 봤냐?”

“좋아, 다음 일요일에 내가 사지.”

“정말?”

“그래 임마.”

“약속 꼭 지켜야 돼.”

“알았어.”

“순찰은 걱정 마, 내가 알아서 길 테니까. 조심해.”

“걱정 마.”

공팔은 메오네 집으로 갔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메오가 물었다. 그녀에게 이렇게 새벽부터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고객은 주로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오침 시간에 찾아오는 병
사들이었다.

“호아는 어디 갔어?”

“빈케 갔어.”

“밥 먹어.”

메오가 젓가락을 내밀며 공팔에게 권했다. 메오와 렁 녹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안남미 밥과 채소를 넉(간장)에 찍어 먹고 있었다.

“렁 녹이 보고 싶어 왔어?”

메오가 물었다.

“그래.”

젓가락으로 밥을 먹던 렁 녹이 공팔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미안함, 안타까움과 부끄러움.

“아침부터 하고 싶어?”

메오가 공팔에게 물었다.

“하고 싶어.”

“해녀기둥서방은.”

“부대에 있어.”

“같이 오지 그랬어, 밥 먹게.”

“너 싫대.”

“피이, 거짓말!”

“야, 나 좀 보자.”

공팔은 밥을 먹고 있는 렁 녹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일어서지 않으려 했다.

공팔은 그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벗게 했다. 그녀가 주저하며 망설였다. 공팔은 그녀를 달래며 속옷을 벗게 했다. 공팔의 짐작한 대로 그녀의 성기는 엉망이었다. 공팔이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냐고.

렁 녹이 말했다. 닥토에서 황소 같은 흑인 병사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그때부터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공팔이 그녀에게 항생제를 주었다. 그녀는
이걸 먹으면 낫느냐고 물었다. 공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새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동그란 이마, 포도 알 같은 깊이를 모르는 눈동자, 오뚝한 코와 빨간 입술. 아직도 덜 핀 앳된 꽃.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하나님이 아주 공들여 만든 예쁜 꽃이었다. 천사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몹쓸 병에 걸리다니.

마치 그녀의 나라 베트남처럼….


건방진 놈

-당치않게 젠체하며 주제넘은 놈-

“무슨 일이야?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지?”

포대에서 신고를 하고 SIG (통신반) 막사에 들어서자 정글복을 입은 병장이 거만하게 물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구부정한 어깨, 매부리코에 하얀
피부, 그리고 앞뒤가 톡 튀어나온 짱구 머리.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가 바로 공팔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상원 병장이었다.

“제법인데.”

공팔은 비웃는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동협 병장은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꼽고 기분 나쁘지만 어쩌겠나? 여긴 전쟁터이고 그는 전입 고참인 걸.

더구나 신동협 병장은 어제 밤의 일로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를 포함한 신병들은 어제 아침 08시에 퀴논 항구에 도착하여 사단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바로 기갑 연대에 배속이 되었다. 더위에 지친 신병들은 저녁도 굶은 채 밤늦게 판자로 엉성하게 지은 지상 막사로 안내되었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팽팽한 긴장감과 피곤에 지친 신병들은 막사 바닥에 쓰러져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따르륵 따르륵’ 하는 LMG 사격 소리와 함께 총탄이 지상 막사의 판자 조각을 요란하게 때리며 지나갔다.

“비상, 기습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찢어지는 듯 한 비명을 질렀다. 신동협 병장은 잽싸게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무판자로 지은 지상 막사는 총탄
으로부터 엄폐물이 될 수가 없었다.

막사 앞마당에는 붉은 예광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던 신병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어젯밤 늦게 도착한 신병들은 이곳의 지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병사들은 정신없이 교통호로 뛰어 들었다. 막사 뒤편에는 거미줄처럼 교통호를 파놓았다. 신병들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그리고 월남에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월남에 차출되었을 때 차라리 탈영하는 편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지옥 같은 공포의 밤이 밝았다. 적군이 물러가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아침 식사를 생전 처음 보는 씨레이션을 받았다. 신병들은 씨레이션 깡통을 따는 법을 몰라 구경만 하고 있었다. 누군가 씨레이션 상자 바닥에 있는 따개로 깡통을 따기 시작했다. 깡통을 처음 따 보는 병사들은 손목 힘이 약해 깡통을 쉽게 딸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친 신병들은 현지 적응 훈련을 받기 위해 수색 정찰을 나갔다. 그러나 정찰 중인 일개 분대가 적의 기습을 받자, 연대에서는 바로 자대로 배치시켜 버렸다. 신동협 병장은 A포대의 무전병으로 배속되었다. 그런 일로 신동협 병장은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재학 중에 입대했나?”

공팔이 다시 물었다.

“예,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기선 그런 엉터리 영어가 안 통해, 에헤헤.”

‘이것 봐라, 자식이 사람을 놀리고 있잖아. 같은 병장인데.’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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