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

적탄을 막고 아군의 사격을
위해 만든 화포진지
A포대의 FDC(상황실)는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젖어 있었다.
“볼륨을 더 높여.”
장덕진 중사가 나직이 속삭였다.
신동협 병장이 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이빨을 깨물었다.
포대는 이번 맹호 A호 작전에서 4개 중대를 지원하고 있었다. 포대의 무전병 4명이 작전 중인 각 중대와 보이스 무전을 열고 교전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6중대 담당인 신동협 병장이 무전기의 볼륨을 조금 높였다. 갑자기 쏴아 하는 잡음과 함께 음어가 아닌 평어가 튀어 나왔다. 작전 중 평어는 금지사항이었다.
“더 내려가 임마! 니 죽을래? 빨리 내려가 임마, 쏜다 쏜다. 깟땜 양코야!”
헬기의 소음과 함께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포대장 반복어 대위가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물었다.
“뭐야? 신 병장!”
신동협 병장이 다급하게 교신을 시도했다.
“여긴, 벽돌장 하나. 갈매기 육은 응답하라. 무슨 일인가, 우 상병?”
6중대에서 곧 응답이 왔다.
“이 씹할 자식이 안 내려가잖아, 저 밑에는 묵사발이 나는데…”
이어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6중대 2소대가 갈대로 뒤덮인 바위투성이의 산중턱에 랜딩을 시작했는데 소대원 절반이 뛰어 내리는 순간 매복하고 있던 V. C가 집중사격을 한 모양이다.
헬기 조종사 알렌 소위가 기겁을 하며 그만 공중으로 붕 떠버린 것이다. 곽종락 하사가 약이 올라 펄펄 뛰며 조종사를 죽인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에이 씹할! 뭐가 이래? 새끼들 대가리 위에 내렸잖아, 미치겠네.”
열린 무전기 속에서는 악을 쓰는 소리와 총성이 뒤범벅이 되어 튀어 나왔다.
포대장 반 대위의 눈알이 붉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그는 느닷없이 고함을 냅다 질렀다.
“전 포반장, FDC 집합!”
부관 신 중위가 쏜살같이 벙커를 뛰어 나가며 복창을 했다.
“전 포반장, FDC 집합!”
포반장들이 황급히 벙커 속으로 모여들었다. FDC 벙커 속에는 포대장 반 대위, 부관 신 중위, 보좌관 최 중위가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우고 조금 전에 헬기로 출발한 각 중대와의 무전을 청취하고 있었다. 5중대 담당 무전병인 김상한 병장이 보고했다.
“5중대 전원 무사 랜딩, 현재 교전 없음.”
“좋아, 계속 감시.”
포대장 반 대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5중대와 7중대의 무전병은 볼륨을 낯 추고 무전을 청취하고 문제가 된 6중대만 무전기의 키
를 크게 열어 놓고 있었다.
“31번 헬기 랜딩 중 추락! 화재 발생, 사망 2명 부상자 다수.”
6중대 무전병이 요란한 총성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보고했다.
“들었지, 6중대가 묵사발 나고 있어, 전 포대 사격 준비!”
포대장 반 대위가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자 부관과 포반장 들은 쏜살같이 벙커를 뛰어 나갔다. 포대는 순식간에 비상이 걸리고 명령 소리가 빗
발치며 병사들의 복창 소리로 가득 찼다.
“나, 6중대장인데 포대장 바꿔라.”
6중대장이 무전기를 통해 포대장을 찾았다. 신동협 병장이 눈으로 반 대위를 쳐다보았다. 반 대위가 키를 잡았다.
“심 대위 나야 나, 거긴 상황이 어때?”
“개판이야! 한마디로 개판이야. 초장부터 당했어. 비겁한 새끼들이 랜딩 하는 순간 덮쳤어. 헬기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 모두 당했어. 그것도 모두 고참들이야. 우리는 재수 없게 그 새끼들 대가리 위에 랜딩 했어.”
“어이 심 대위, 정신 채려! 지금 어디 있나?”
포대장이 무전기의 키를 잡고 물었다.
“갈대밭인데 대가리만 들어도 벌집이야. 씹할, 미치겠네.”
“심 대위, 사상자는?”
“임마, 대가리도 못 드는데 어떻게 알아? 애들이 다갔어, 나도 죽는다. 씹할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으흑흑!”
6중대장은 눈이 이미 뒤집혀 있었다.
“야, 심 대위!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고. 자네 애들은 고참들이야. 쉽게 당할 애들이 아냐. 무전병 바꿔, 빨리!”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반 대위가 악을 썼다.
“야, 우 상병 들리나? 몸은 괜찮나?”
“예, 포대장님!”
“좋아! 새끼들 기부터 죽이자, 좌표는?”
“좌로 229341,우로 342579.”
“거긴 어딘가?”
“전방 30m 갈대밭!"
“알았다, 편지 간다.”
반 대위가 전화기를 들었다.
“부관, 들었지? 좌로 229341 우로 342579. 일 포! 하나바알, 발사!”
포대장 반 대위가 전화기로 직접 명령을 내리자, 벙커 밖의 지휘소에서 신 중위의 우렁찬 복창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들려 왔다.
“하나바알 발사!”
“꽝!”
포수들은 이미 6중대가 묵사발 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6중대는 그들의 지원 중대였다. 포수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명중! 계속 요망.”
“알것다. 수고!”
“전 포대, 좌로 229341 우로 342579. 포탄은 철갑탄, 준비이, 쏴아!”
꽈꽝꽝!
하늘 가득히 거대한 기관차가 쉭쉭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 같았다. 포대는 순식간에 포연과 먼지 속에 잠겨 버렸다.
FDC는 포사격이 끝나자 깊은 정적 속에 잠겨 들었다. 병사들은 한바탕 잔치가 끝난 뒷마당처럼 썰렁한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7중대 담당 무전병인 권석동 병장이 무전기의 볼륨을 조금 높였다. 그는 개미허리와 입대 동기생이었다.
“여긴 좌표 342629.”
“개미허리 김 하사구나.”
포대장 반복어 대위가 몹시 반가워하며 무전기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싫어하더니 오늘은 몹시 반가운 모양이었다.
권석동 병장이 조용히 물었다.
“거긴 상황이 어떤가?”
“야자수 그늘 밑에서 중대 휴식 중.”
신동협 병장은 그 목소리가 개미허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할매네 집 부근인가?”
“그렇다, 본 대는 목하 취침 중.”
“취침?”
“그래, 우린 휴양 왔어. 연대장님이 지난번 작전 때 수고 많았다고 특별히 봐 준거야.
“팔자 좋구나, 아주 부럽다. 6중대는 지금 난장판이야.”
“우리하고 게네들하고 같냐? 이름부터 다르잖아, 7중대!”
“좋아 김 하사, 이동시 교신 요망. 난, 언제 할매네 집에 가보나?”
“넌 안 돼 임마, 미성년자는 출입금지야. 우린 여그서 한 달쯤 지낼 거다. 작전이 끝날 때 꺼정 푹 쉴 거다.”
무전기가 죽었다.
“야 7중대, 팔자 한번 늘어졌구나. 허허허…….”
포대장이 모처럼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부관에게 물었다.
“할매네 집 부근이면 정확히 어디쯤인가?”
“3번 교량 건너 외딴 곳에 있는 술집입니다, 콩까이가 다섯 명이나 있는데 애들이 모두 끝내줘요. 생각만 해도 서는데요.”
부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부관, 혼자만 가기야? 나만 빼고.”
“다음번에 제가 모시지요, 포대장님!”
부관 신 중위가 능청을 떨며 웃었다.
#공팔
용감한 병사는 순간에 살고
비겁한 병사는 영원에 죽는다.
공팔 구상원 병장의 시커먼 엉덩이가 불끈 힘을 쓰자 계집은 죽는소리를 하며 고함을 질렀다. 공팔은 마치 작은 스피츠를 올라탄 덩치 큰 불도그와 같았다.
불도그처럼 시커먼 공팔의 몸집이 희고 연약한 계집애의 엉덩이를 찍어 누르자 스피츠는 죽는다고 깨갱거리며 울부짖었다.
어느새 콩까이의 하얀 두 다리는 공팔의 허리를 레슬링 선수처럼 조여들고 있었다.
“으음.”
공팔은 콩까이가 몸을 조여 올 때마다 신음소리를 토하며 몸을 떨었다. 도대체 요렇게 조그마한 계집애의 몸뚱이 어디에서 이렇게 강한 색정
적인 힘이 솟아나는지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녀의 혀끝이 뱀의 그것처럼 입 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계집애의 가는 허리가 훌라후프를 돌릴 때처럼 좌우로 흔들리자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파도처럼 철썩거렸다.
공팔의 앙상한 손바닥이 계집애의 젖가슴을 움켜쥘 때마다 그녀의 애끊는 울부짖음은 한낮의 열기를 더욱 달구고 있었다. 공팔의 목덜미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계집애의 얼굴 위로 빗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계집애의 혓바닥이 공팔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핥고 있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는 마치 몽롱한 꿈에 빠진 중독자와 같았다. 계집애의 이름은 렁 녹으로 몸집이 작고 아담한 아가씨였다.
<다음호에 계속>
김범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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