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8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었다. 555조 8천억 원 규모의 2021년도 나라 살림살이 구상을 밝히는 중요한 연설이었다. 내년 예산과 관련 국정운영 구상 등을 함께 밝히는 일정이자 국민 역시 관심을 가지는 뉴스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를 강조하기도 했고 ‘협치’를 절실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시정연설은 뒷전으로 밀렸고, 야당 원내대표의 몸수색 논란이 온 뉴스를 뒤덮고 여야 공방의 주된 이슈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연설 이전 통상 대통령과 국회 지도부 간의 사전 간담회가 있지만, 주호영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경호처가 주 대표가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몸수색을 해서 야당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 경호처는 ‘원내대표가 정당 대표와 동반 출입하는 경우에는 관례상 검색을 면제해왔지만 주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주요 요인의 입장 후에 홀로 도착했기에 지침대로 검색했다’ 고 원칙에서 벗어난 경호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야당의 반발은 여전하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경호처의 ‘지침준수’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시정연설의 목적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하는 중요 일정임을 고려한다면 모든 것은 대통령의 시정연설의 내용과 메시지가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지는 게 제1의 목적이다.
더구나 내년 예산은 어차피 국회에서 특히나 야당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야당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와 절차상의 배려는 그 어느 때보다 고려됨이 필요했다. 대통령 경호에 ‘정무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안전이 제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대통령 시정 연설은 소기의 목적 달성이 중요하기에 ‘경호의 원칙’보다 ‘야당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중요했어야 한다.
결국, 대통령 시정연설은 모양새를 구긴 셈이다. 야당은 그렇지 않아도 특검을 비롯하여 요즘 정치 현안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상태이다. 야당의 ‘반발’과 ‘대여투쟁’의 빌미를 준 것이다. 향후 강력한 예산 투쟁을 예고한 셈이기도 하다. 야당 역시 555조 8천억원에 달하는 국가예산에 대한 대통령의 구상을 밝히는 시정연설은 뒷전에 두고 너무 본말이 전도된 ‘과잉경호’를 부각시켜 정치 쟁점화 하는 것도 그리 책임감 있는 제1야당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1代 국회 개원연설 이후 104일 만에 다시 국회를 찾았고 시정연설은 2017년 취임 이후 4번째이다.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켜 내겠다는 대통령의 ‘위기에 강한 나라 구상’과 555조의 예산심의를 앞두고 ‘협치’를 강조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빛을 못 봤다.
의도되지 않은 단순한 ‘과잉경호’가 오히려 ‘위기에 강한 나라’가 아닌 ‘야당에 강한 대통령’, ‘협치’가 아닌 ‘정쟁’을 촉발시키고 말았다. 융통성 부족한 청와대의 과잉경호는 쿨하게 유감을 표해야 하고, 야당도 보다 큰 자세로 알뜰살뜰한 나라 살림을 살피는 데 집중했으면 바람이다.
前 청와대 행정관 및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