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화코리안 드림의 슬픈 죽음

“아니요.”
“차츰 배워야 할 거야. 한국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숙소는 어디에요?”
“여관이야.”
“여관?”
“당분간 나하고 함께 있어.”
알렉세이 신이 타티아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타티아나는 가만히 손을 빼냈다.
타티아나는 이태원에 도착한 뒤에 이틀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이태원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알렉세이 신과 함께 밤이 되면 술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불과 이틀 동안 술집을 전전하는데도 쪽지가 날아오고 웨이터들이 한국인들과 합석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이제는 할 수 있겠지?”
사흘째 되던 날 알렉세이 신이 물었다.
“네.”
알렉세이 신은 한국인 남자들과 술자리에 합석하면 팁으로 5만 원 정도를 받아서 그 중 2만원은 소개를 한 웨이터에게 주라는 것과 2차를 나간 뒤에는 3분의 1 정도의 금액을 웨이터에게 주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웨이터들에게 일일이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해서 어떻게 하죠?”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자 타티아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 몸짓 발짓으로 해.”
알렉세이 신의 말에 타티아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타티아나가 알렉세이 신의 연락을 받고 이태원 한 술집에 나간 것은 서울에 도착한지 나흘 뒤의 일이었다. 타티아나는 러시아여자들 셋과 함께 한국인 셋이 술을 마시는 나이트클럽의 룸으로 들어가 술을 따르고 춤을 추게 되었다. 남자들은 위스키를 물처럼 마셔댔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드카를 물처럼 마시지만 한국인들은 위스키를 잘 마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 이러는 거지?’타티아나의 파트너인 한국 남자는 옆에 앉은 타티아나의 어깨를 끌어안기도 하고 둔부를 쓰다듬기도 했다. 타티아나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더듬는 한국 남자의 손이 몹시 낯설었다. 러시아에서는 술을 마시면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만지는 일이 없었다.
술자리가 파하자 한국인들이 5만원씩을 팁으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2차 제의가 들어왔다. 그녀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웨이터가 통역을 해주어서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그녀들에게 30만원씩 주기로 하고 2차를 제의하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타티아나의 파트너인 한국인 남자는 30대 후반으로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그를 따라서 이태원 인근에 있는 작은 호텔로 들어갔다.
알렉세이 신의 말대로 한국인 남자와 타티아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한국인 남자는 호텔에 들어가자 타티아나에게 무엇이라고 열심히 말을 했으나 타티아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백치처럼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한국인 남자가 먼저 옷을 벗었다. 타티아나도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몸짓으로 의도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남자가 그녀에게 몸을 실어왔다. 타티아나는 한국인 남자를 받아 안은 채 그의 어깨 너머로 우두커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남자 경험’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낯선 동양인을 자신의 몸속에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런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일까?’
타티아나는 한국인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관계를 하고 있을 때 엉뚱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타티아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한국인 남자들은 금발의 백인 여자들을 좋아했다. 그녀는 한 달 만에 3천 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돈은 웨이터와 알렉세이 신에게 떼어주는 돈을 공제한 액수였다. 러시아에서는 2년이 걸려도 만질수 없는 거액이었다. 타티아나는 그 돈을 모두 하바로프스크로 보냈다.
타티아나는 한국인들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출 때 한국인 남자들이 그녀의 몸을 만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타티아나는 그런 일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몸을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이상 한국인 남자들이 몸을 더듬는 것을 탓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그녀의 둔부를 만지거나 가슴을 만지는 일이 낯설기만 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자신의 몸을 한국인들에게 팔았다. 타티아나는 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좋아했다.
타티아나는 알렉세이 신과 잘 어울렸다. 알렉세이 신은 그녀에게 방을 얻어주고 러시아에서 온 다른 여자들을 관리하는 일까지 맡겼다. 타티아나가 스물다섯 살이나 되었고 그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 온 여자들은 대부분 그녀보다 나이가 어렸다.
“이상한 계집애들이 있는데 한 번 알아봐.”
어느 날 알렉세이 신이 타티아나에게 말했다. 타티아나는 그 무렵 한국말까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여자들이야?”
“응.”
알렉세이 신의 말에 타티아나는 그녀의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들을 만나보았다. 그녀들은 엘레나와 나탈리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인터걸들이었다. 그녀들은 놀랍게도 관리자 없이 독자적으로 이태원에서 활약 하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그녀들과 술을 마시면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영역에서 일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흥! 우리는 누구에게도 소속되어 있지 않아. 네가 간섭할 필요 없어. 오히려 네가 여기에서 떠나. 너는 우리 보다 늦게 왔으면서 왜 영업구역에서 장사를 하는 거야? 여기는 네 구역이 아니라 우리 구역이야.”
엘레나가 타티아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엘레나는 러시아에서 치과의사를 했으나 치과의사 수입이 서울에서 몸을 팔아서 버는 돈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아 인터걸로 나선 여자였다. 치과의사가 인터걸로 나섰을 정도로 당찬 데가 있는 여자였다.
“이젠 우린 구역이야!”
타티아나도 단호하게 말했다.
“누구 맘대로! 우리 구역을 뺐으려고 했다가는 피를 봐야 할 걸!”
엘레나가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 아이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아요.”
타티아나는 알렉세이 신에게 보고했다.
“뭐야?”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아요.”
“이 계집애들이 매서운 맛을 봐야겠군.”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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