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길 위의 행복(1)

“했지, 벌써 악수까지 했는걸.”
“아들이 뭐라구 그럽듀, 지두 이름난 건달이 될팅께 그르케 키워줍슈, 합듀?”
권 상사는 농조로 계속 야기죽거렸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다른 때와 달리 ‘꼬부랑말’처럼 건너왔다. 그러나 차 일만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웬일인지 그의 희학질까지도 그날만큼은 넉넉하게 받아들여졌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건너다본 아이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여전히 자는 모습이었다. 흰 싸개 밖으로 내민 얼굴은 태어날 때와 변함없이 눈을 감고 있었으며, 달라진 것이라고는 이따금 먹을 것을 찾는 투로 입을 옴질거리다가 배내 웃음을 웃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웃는 모양이 보면 볼수록 염 은옥을 닮은 것 같아 자꾸만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염 은옥의 어머니는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것은 몇 달간 떨어져 있던 딸을 만났다
는 기쁨보다도 마침내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게 되었다는 데에 대한 감사 기도였다.
그녀의 기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먼발치로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주여’를 연발하였으며, 병원에서 끓여준 미역국을 염 은옥이 마다하지 않고 구역꾸역 삼킬 때에도 ‘주여’를 연발했다. 차 일만이 멋쩍어 해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 생명도 주님이 예비하여 주신 거야.”
결국 권 상사가 나서서 만류해 보았으나 그녀는 그것조차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 일만은 염 은옥의 얼굴에 생기가 돌자 그런 것쯤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방안에 들어앉아 성경책을 펴놓고 큰 소리로 읽고 있어도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병원을 찾은 ‘뺑끼’가 뭐 저런 노인네가 다 있느냐고 빈정거리면 오히려 그를 나무랄 정도였다. 사흘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신생아실을 기웃거리곤 하던 그는 어느새 아이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정말 예쁘지?”
그는 빈정거리는 ‘뺑끼’를 향해 딴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그가 강 승길을 아주 잊은 것은 아니었다. 호사다마라고 하지 않던가. 방심한 사이 불시에 급습을 당한다면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 행복이 산산조각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그는 그게 불안했다. 사방이 훤히 터진 곳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염 은옥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은 ‘날 잡아 잡수’하는 꼴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런 관계로 권 상사는 결국 빗속을 뚫고 도착한 날부터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차 일만은 안주머니에 무기를 숨긴 채 병원을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옛날 배짱 다 죽었구만, 아이 새끼 하나 때문에.”
“내 아이야, 임마.”
“누가 아니래? 그렇다고 그렇게 죽치고 있냐?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짜샤.”
“내 아이니까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 돼.”
‘뺑끼’가 가시고기 같다고 비아냥거렸으나 차 일만은 화를 내지도 않았다.
결국 사흘 만에 ‘뺑끼’가 보다 못해 들고 온 것은 ‘산후 조리원’이라는 처방전이었다. 사방이 틔어 있는 병원이 그처럼 불안하다면 그곳으로 염 은옥을 옮기자는 것이었다. 그곳은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사방이 막혀 있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강 승길이라고 해도 낌새를 챌 수 없다는 것이 ‘뺑끼’의 설명이었다.
“사흘밖에 안되었는데, 산모를 그렇게 막 옮겨도 될까?”
“그건 걱정하지 마, 짜샤. 아, 이 세상에서 아이는 그 여자만 낳아봤냐!”
“그래도 아직은 몸이…….”
차 일만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 방법이 최선책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그도 부정하지 않았다. 다 끓인 죽사발을 막판에 엎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 일만이 동의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염 은옥은 선선히 응낙하였다. 그렇게 하세요. 어디이면 어때요. 병원에서는 원래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라고 하지만, 괜찮아요. 더구나 이젠 몸 상태도 정상이라고 하니까…….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결정하자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저녁 무렵 시간에 맞춰 미역국을 한 차례 먹고 난 다음 퇴원 수속을 마친 염 은옥은 서둘러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가방은 권 상사가 들었다.
“그려유, 시방은 형편이 좀 껄쩍지근하니께 그냥 형님덜 말씀대루 옮기두룩 허세유. 허지먼서두 둘째 조카를 낳으실 때는 지가 꼭 이 시상에서 지일루 좋은 곳에서 낳으실 수 있두룩 헐티니께 걱정마세유.”
‘뺑끼’의 말대로 ‘산후 조리원’은 조용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은 이따금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 외부 방문객조차 드문 곳이었다.
“어때? 괜찮지?”
‘뺑끼’가 설레발을 쳐댔다. 차 일만은 비로소 얼굴을 폈다. 이런 정도라면……. 사층 건물을 모두 쓰는 게 아니라 삼 층과 사 층만을 사용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곳에 숨어있을 것이라고는 천하의 강 승길이라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었다.
아이는 보채지 않는 편이었다. 자지러들게 울다가도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젖을 먹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세 잠들곤 하였다. 변도 좋았으며, 붉은 반점이 온 몸을 뒤덮었던 태열도 목욕을 시키면서부터는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 염 은옥의 어머니는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했다. 주님이 주신 아이야……. 차 일만은 젖내가 가시지 않은 아이를 안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머니의 말처럼 아이의 심장 박동소리에서 알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산후 조리원’은 병원과 달라서 아이를 아무 때나 볼 수 없었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다람쥐 제집 드나들듯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렸으나 다른 산모들의 눈치가 보인 뒤부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큰 방에 모여 출산 뒤의 체형을 되찾기 위해 운동할 때 마주친 산모들의 눈빛이란 사납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께 좀 진득허니 기둘리슈.”
권 상사는 푸념을 해대는 차 일만에게 오히려 ‘퉁짜’를 놓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뺑끼’도 마찬가지였다. 미끼를 비롯한 낚시용품과 일용잡화가 진열된 가게에 앉아파리를 날리던 그는 차 일만에게 이제 앞으로 보기 싫도록 볼 텐데 뭘 그렇게 촐싹대느냐면서, 그럴 시간이 있으면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까 궁리나 해두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아이 이름은 지어놨어?”
“아니, 아직은…….”
“야, 임마. 애 아버지가 되어가지고 아직 그것도 못해놨냐.”
‘뺑끼’는 혀끝을 찼다. 그러다가도 그는 낚시꾼이 부르면 절룩거리며 달려가 배를 끌고 호수에 설치된 좌대로 달려가곤 하였다.
집은 만족스러웠다. 비바람이나 가릴 정도면 족하다고 여겼으나 그 집은 그런 규모가 아니었다. 지붕도 기와가 의젓하게 얹혀 있었으며, 블록으로 쌓아올린 벽이기는 하였으나 이미 도배까지 새로 마친 세 개의 방은 한 살림을 차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 집은 ‘뺑끼’의 집과 처마를 마주하고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며, 비교적 지대가 높은 곳에 터를 잡아 늘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이점까지도 있었다. 여차하면 배를 타고 건너가 홍천 방면이나 춘성 쪽으로 ‘도바리까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짜아식, 제법 눈썰미 하나는 있군.”
집 앞으로 제법 널찍하게 자리잡은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던 차 일만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뺑끼’가 새삼 고마웠다. 이 정도라면 한두 계절이 아니라 이삼 년 ‘짱 박혀’ 있어도 거뜬할 것 같았다.
“이 정도라믄 딴 맘 묵지 말구 이곳에다가 뿌리를 박아두 괜찮을 듯 싶은디유?”
권 상사도 놀라는 얼굴이었다.
차 일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그럴까. 한창 더운 철이었으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더운 줄도 몰랐다.
수시로 불어대는 서늘한 바람이 땀이 솟을 사이를 주지 않고 있었다.
염은옥과 아이가 그 집에 온 것은 닷새 뒤였다. 유난히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그날, 아이는 비로소 처음 ‘차 건태’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룰 건(建), 클 태(泰). 그 이름은 차일만이 며칠 밤을 꿍꿍 앓으며 지은 이름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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