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사앞에 모정도 없다
시트는 구겨져 있고 베개도 푹 패어 있었다. 조 해리슨은 창문을 살펴보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으나 높아서 아이들이 창문을 넘어 잔디밭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죠?”
“새벽 네 시예요. 지난 밤 9시에 침대에 데려다가 재우고 새벽 4시에 또 확인을 했어요.”
“그렇다면 새벽 4시 이후에 행방불명이 된 것이겠군요.”
“당연히 그렇겠죠.”
엘리스 크리민스는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조 해리슨과 샘을 흘겨보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조 해리슨은 엘리스 크리민스와의 대화를 모두 기록했다.
조 해리슨은 아이들의 방문이 밖으로 빗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빗장은 대부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상례인데
아이들의 방만 밖에 설치되어 있었다. 빗장을 잠가버리면 아이들이 밖으로 나올 수없는 것이다.
“이건 왜 밖에 설치되어 있지요?”
조 해리슨이 엘리스 크리민스에게 물었다.
“그건… 에디가 밤중에 먹을 것을 찾으러 냉장고에 가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잠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거실을 돌아다녀요”
엘리스 크리민스는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조 해리슨은 자세하게 조사했다. 살인이나 유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본서의 지원을 받아서 72번가 일대를 수색하는 한편 아이들을 본 목격자가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리스 크리민스의 아이들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샘 경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협박전화를 받은 일이 있습니까?”
조 해리슨이 엘리스 크리민스에게 물었다.
“없어요.”
그렇다면 유괴사건도 아닌 모양이었다. 두 아이를 동시에 유괴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엘리스 크리민스의 남편 에디 크리민스가 집으로 달려왔다. 그는 아이들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분노하여 부인과 크게 언쟁을 벌였다. 그는 엘리스 크리
민스 부인이 남자들과 정사를 벌이는데 방해가 된다고 아이들을 죽여 버린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엘리스 크리민
스 부인은 남편의 말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당신은 인간도 아녜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남자들을 끌어들일 때 아이들 방문을 밖에서 잠그는 여자야.”
조 해리슨은 엘리스 크리민스 부인에 대해서 상세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6세였고 남자 친구들이 많았다. 남자 친구들은 대부분이 그녀와 섹스를 하는 정부들이었다. 엘리스 크리민스는 에디 크리민스를 상당히 미워하고 있었다. 에디 크리민스도 미인인 아내가 남자 친구들이 많다는 이유로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때 부부였고 아이들까지 낳고 살았으면서도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다.
7월14일 오후 2시, 아이들의 사건 신고를 받는지 6시간 만에 네 살짜리 딸 미시의 시체가 퀸즈가 163번가의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아이는 마치 잠이 든 듯이 죽어 있었다. 잠옷 차림이었다. 그러나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어서 죽을 때 상당히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상이 전혀 없잖아?’
아이의 시신에는 흉기로 살해된 듯한 상처가 없었다.
“질식을 한 것 같은데….”
경험이 많은 샘 경사가 말했다.
“목을 조른 흔적이 전혀 없는데요.”
조 해리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입을 잔뜩 벌리고 있어. 숨을 쉬기 어려웠기 때문이야.”
조 해리슨은 어린 소녀의 죽음을 보자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아이는 외상도 없고 목이 졸린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질식을 한 것은 베개나 비닐로 덮어씌워 살해를 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에디 크리민스는 딸의 시체를 끌어안고 비통하게 울었다.
경찰은 미시 크리민스의 시체를 부검했다. 그 결과 샘 경사의 추측대로 질식사로 판명되었고 위 속의 음식이 하나도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엘리스 크리민스의 진술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엘리스 크리민스는 새벽 4시에 미시를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했으나 미시의 위장에 있는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4시 이후에 살해된 것이 아니라 밤 9시에서 12시 이내에 살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식물은 두 세 시간이 지나면 위 속에 있는 강력한 위산의 작용으로 인해 완전히 소화가 되는 것이다.
단순한 행방불명사건은 이제 살인사건으로 발전했다. 뉴욕경찰의 베테랑 형사들이 즉시 투입되었다. 형사들은 조 해리슨과 샘 경사가 1차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사 크리민스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에디 크리민스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는 아내 엘리스와 별거 중이었기 때문에 여자를 사귀고 있었다. 그 애인이 에디 크리민스의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게다가 그는 딸 미시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엘리스 부인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형사들은 엘리스 크리민스를 의심했다. 조 해리슨은 형사들과 함께 엘리스 크리민스 부인의 조사에 참여했다.
“왜 내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죠?”
엘리스 크리민스 부인이 표독하게 외쳤다.
“부인의 진술이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조 해리슨은 엘리스 크리민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난 사실을 말했어요. 그런데 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아요? 아이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의심까지 한다는 말이에요?”
“부인이 새벽 4시에 아이들을 보았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해요?”
“미시의 위속에 들어 있는 음식물이 소화가 전혀 안됐어요. 그러니까 4시에 보았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응하면 되지 않습니까?”
“난 절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는 응하지 않겠어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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